▲ 통합진보당 비대위원장이 된 강기갑 의원(왼쪽)과 모든 언론에 의해 '공공의 적'으로 호명된 구당권파의 이석기 당선자(오른쪽)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파문 사태가 3주차에 접어들면서도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이 선거를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로 결론내리면서 그 선거로 선출된 모든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는 합리적인 권고안이 제출되었으나, 구당권파 측에서 이를 ‘실체없는 의혹제기로 인한 당권파 죽이기’로 받아들이고 이석기 당선자와 김재연 당선자의 사퇴를 거부한 탓이다. 현실적으로 당내의 어떤 절차를 통해서도 두 사람을 강제로 사퇴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공방이 지리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수사를 반대하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그런 가운데 오늘 아침부터 검찰이 통합진보당사 및 선거를 담당한 인터넷 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검찰의 중앙당 ‘침탈’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통합진보당에 우호적일 수 없는 진보신당 논평조차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면 이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이며 “검찰의 막가파식 정당 압수수색은 성급하고 위험”하다 규정했을 정도다.

이러한 반응은 진보진영 특유의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의 태도를 보여준다. 그러나 원론적으로 말한다면 통합진보당 문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반대할 명분은 별로 없다. 공당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은 법이 규율할 수 있는 영역이고, 통합진보당은 법이 규율하기 이전 정치적 해법을 도출해 내는 데 실패한 상황이다. 구당권파들은 그간 진상조사위 보고서가 ‘정황’만을 제시했을 뿐 ‘물증’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해 왔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확고한 ‘물증’을 다수 잡아내는 것은 진상조사위가 가진 조사권한으론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붙어있는 투표용지’와 같은 확고한 물증에 대해서도 ‘풀이 다시 붙었다’ 따위의 납득하기 힘든 반박을 거듭해 왔다. ‘부정의 물증 내지 정황’이 있다 하더라도 누가 했다는 증거가 밝혀지지 않는 이상 ‘부정이 아니라 부실’이며 자신들이 책임질 수 없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살해된 사람이 엄연히 있는데 살인범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살인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논리를 펴온 셈이다.

과거 민주노동당 내 논쟁에서는 이렇게 말이 안 되는 말을 무한반복하는 자주파들에게 그만 지쳐버려 평등파들이 문제를 발본색원하지 못하고 정파적 타협을 통해 넘어갔던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유령당원이나 미심쩍은 주민등록번호에 대한 진상조사위 측 문제제기에 대한 이정희 의원 측의 해명은 합리적이지만 선거인 명부를 제대로 검증해 보지 않는 이상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 것인지를 가릴 길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구당권파는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킬 것을 신당권파에게 요구해 왔다. 그런데 그들이 그러한 원칙을 스스로 들이밀었다면 검찰수사를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들이 ‘광범위한 정황’만으론 ‘부정’을 인정하지 못했다면 ‘정황’이 아니라 ‘물증’을 밝혀낼 수 있는 권한을 지닌 수사기관에 결론을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 오늘 아침 검찰이 통합진보당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그러나 구당권파는 오히려 검찰수사를 ‘악’으로 규정하고 그 검찰수사를 불러들인 것이 진상조사위와 신당권파라는 ‘물타기’를 시전할 가능성이 높다. 진보신당 측 논평이 “덧붙여 사퇴 거부 등으로 이 문제의 해결을 늦추어 결과적으로는 검찰조사까지 받게 한 빌미를 제공한 책임은 구 당권파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그런 ‘물타기’를 피하기 위함이다. 신당권파의 생각은 진보신당 측 논평과 비슷할 것이다. 즉 통합진보당 내 구당권파, 신당권파, 그리고 진보신당 측 까지도 검찰수사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판단은 그간 검찰의 행태에서 나온 측면이 크다. 검찰이 당원명부와 회계자료를 보고 유령당원 여부와 회계부정만 파헤칠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시기 검찰이 민주노동당의 당원명부를 가져가 공무원 및 교사의 당비납부를 처벌하려고 노력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교장·교감 등이 새누리당에 후원금을 낸 상황은 넘어가면서 말이다. 진보정당들은 국가기관이 당원명부를 가져갈 경우 다양한 종류의 부당한 탄압이 가능함을 확인하였고, 그것이 검찰수사를 비판하는 근거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반박한다 해도 적어도 그간 진상조사위의 조사권한이 미치지 못했던 선거 담당 인터넷 업체에 대한 검찰수사는 공익에 부합한다는 주장까지 반박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검찰수사가 가져올 수 있는 첫 번째 출구전략 및 난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논리가 아니라 ‘정서’이기 때문에 검찰수사는 통합진보당 사태에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진보진영 내부에선 검찰수사가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이라는 정서가 대다수이고 이는 진보정당의 지지층에도 널리 통용되는 것이다. 그간 신당권파는 당을 살리기 위해 적어도 이석기와 김재연의 사퇴를 요구해야 했지만 그것을 구당권파가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고뇌가 있었다. 신당권파는 구당권파에게 요구조건을 관철시킬 수단은 없으면서도, 여론상황에서 그 요구조건을 접을 수도 없는 지독한 딜레마 상황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수사를 계기로 신당권파와 구당권파가 함께 입을 모아 국가기관을 규탄하기 시작한다면 여론의 반전을 꾀할 여지가 없지 않다. 구당권파는 늘상 하던 대로 그들을 국가기관·공안기관의 피해자로 위치지을 것이고 신당권파 입장에서도 통합진보당 전체를 그렇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유익하다. 특히 신당권파 내부의 다수를 점유하는 NL진영인 인천연합과 울산연합의 경우 경기동부연합의 행태에는 비판적이지만 검찰수사에는 대단히 비판적임을 상기해야 한다. 결국 지지층의 여론도 3주나 지속되었던 ‘당권파 때리기’에 식상한 시점에 결코 좋아하지 않는 국가기관인 검찰 규탄으로 일부 정도는 이동하게 될 여지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구당권파가 신당권파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 숙이고 들어오면서 두 당선자의 사퇴문제를 한 명만 사퇴시키고 한 명은 남긴다든지 하는 식의 타협안을 도출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의 여론추이를 보면 ‘공공의 적’이 된 이석기가 사퇴하면서 청년비례대표 경선룰에 의해 당선된 김재연을 남기는 식의 타협안이 가장 합리적인 것일 게다.

이는 구당권파는 물론 신당권파에게도 소망스러운 상황일 수가 있다. 그리고 만약 이에 대해 참여당계와 진보신당 탈당파 등 신당권파 내 소수파가 반발한다면 다시 한번 NL과 비NL의 대립으로 전선이 이동하여 결국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의 재판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다음 행선지를 찾기 힘든 유시민·노회찬·심상정 등이 그 정도로 강단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분당에 대한 경고는 오히려 그들 비주류보다 당권파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따라서 이 사태에 대한 가능한 하나의 출구전략은, 검찰수사를 통한 반전으로 통합진보당의 문제가 봉합국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 검찰수사가 시작된 가운데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는 굳게 닫혀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검찰수사가 과연 구당권파의 소망대로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부정적인 관측도 존재한다. 검찰수사가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다 믿는 것은 벙커 밑에 숨어든 나치 독일의 지도부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의 죽음에 축배를 들었던 상황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검찰수사의 의도를 다각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 수사는 “통합진보당이 이번 주에도 변함없이 논란의 중심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각 정치세력의 유불리에 맞추어 다각적인 효과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는 새누리당은 임태희를 중심으로 ‘통합진보당 사태 방지법’을 제안한 후 국민참여운동을 독려하는 중이고 민주통합당은 지도부 경선 중인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수사에 새누리당의 정치행위를 여론적으로 지원하면서, 민주통합당 지도부 경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당 지도부 경선에서 현재 유력한 주자는 이해찬과 김한길인데 이해찬은 야권연대 유지론자이며 김한길은 파기론자다. 20일 울산지역 개표에서 김한길이 1등을 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것은 아직까지는 ‘이변’일 수 있지만 21일 부산지역 대의원투표 마저 김한길이 이기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부산은 친노의 땅으로 이해찬의 압승이 확실시 되지만 검찰조사가 야권연대 유지에 대한 친노들의 확신을 흔들 경우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가능성은 낮지만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해찬만 날아가는게 아니라 문재인까지 날려버리는 결과가 올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파기하고 안철수 영입을 통한 중도층 확보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나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손을 빌린 제명’이라는 두 번째 출구전략 및 난관

여기서 우리는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한 출구전략이 통합진보당내 사정 및 지지층 여론의 향방이란 맥락을 떠나 훨씬 더 거대한 맥락인 민주당의 선택과 맞물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보도는 서울신문의 토요일자 보도다. 서울신문은 복수의 신당권파 관계자들이 “첫째는 내부적으로 반드시 이·김 당선자를 사퇴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사퇴가 여의치 않을 경우 새누리당, 민주당과 힘을 합쳐 국회 차원에서 두 사람을 제명시키는 쪽으로 공조를 제안할 것”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서울신문은 민주당이 이러한 제안에 대해 “왜 우리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느냐.”라고 떨떠름했으며 야권연대 결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김한길은 야권연대 폐기론자로, 그가 민주당 대표로 당선될 경우 야권연대보다는 안철수 영입을 통한 중도층 공략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

통합진보당의 관계자들은 이 보도를 ‘오보’라 말하며 부인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물밑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기갑 비대위의 입장에서 이석기와 김재연을 무조건 사퇴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가능한 최후의 수단이 바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공조를 얻어 두 사람을 제명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조치는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당장 부인하는 것에서도 보이듯 여론의 후폭풍을 맞을 가능성이 적잖다. 야권지지자 층에선 통합진보당이 자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누리당과도 공조를 한다는 지점에서 부정적인 여론을 쏟아낼 수 있고, 진보정당 지지자 층에서도 통합진보당이 ‘동지’를 정리하기 위해 민주당에 구걸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비례대표 경선 부정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이런 식의 반응은 일종의 ‘진영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지지층의 정서에는 합리적이지 않은 부분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통합진보당 상황과 별개로 이는 민주당에 엄청난 고민을 던져주는 선택이다. 새누리당은 두 사람의 제명에 적극 협조할 것이 분명한 만큼, 결국 신당권파가 이런 제안을 할 경우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은 민주당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앞서 말했던 민주당의 고민인, “야권연대를 안고 갈 것인가, 파기할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의 선택지와 큰 연관이 있다. 만일 민주당이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와 연합하여 이석기·김재연을 제명할 경우 통합진보당은 지지율 반등을 꾀할 수 있고 민주당은 야권연대를 파기할 큰 명분 하나를 스스로 버리게 된다.

이 경우 민주당은 아직 좀 더 고민이 필요한 선택지에서 미리 결론을 내리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석기·김재연을 제외한 통합진보당 인사에 대한 보수언론의 색깔론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 검찰수사를 통해 무엇이 밝혀질 것인지, 대선 전 북한이 한번이라도 더 사고를 칠 때 통합진보당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당내문제를 해결할 역량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이 정당과 ‘운명 공동체’가 되는 것은 민주당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일 수가 있다.

민주당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지금 민주당 입장에선 통합진보당에 대해 ‘불가근 불가원’ 해야 할 처지다. 당장 야권연대 때문에 손해봤단 얘기가 당내에서 많이 나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또 같이 가야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추이를 지켜보며 판단해야 하는데 남의 당 일이라 함부로 비판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제명 공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선례가 과연 있나 싶다. 현재의 민주당 분위기로는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 이해찬은 야권연대 유지론자로, 그가 민주당 대표로 당선된다면 당권파 당선자 제명 공조에 나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합뉴스

그래서 이 문제는 다시 민주당 지도부 경선 문제로 돌아온다. 정치평론가 김민하는 이에 대해서도 “이해찬이 당권을 잡을 경우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놓고 야권연대를 유지하면서 연립정부 등을 논의할 가능성이 높고, 그런 차원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을 제어하기 위해 ‘제명 공조’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김한길이 잡을 경우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며 안철수 영입 등 다른 길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예측한다. ‘뜨거운 감자’이자 ‘모든 언론의 동네북’이 된 원내 3당 통합진보당 문제가 이번 주에도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당의 상황과 연결지어 살펴야 하는 중요한 문제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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