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룰라 멤버 고영욱 사건은 다른 어떤 연예인 관련 사건보다 질이 나쁘고 심각하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고영욱의 행위지만 그 이전에 고영욱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도 미성년 출연자의 신상정보를 건네준 PD의 공범이나 다름없는 행위도 반드시 추궁해야 할 일이다.

프로그램 출연을 목적으로 밝힌 신상정보를 PD가 사적으로 유포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비극적 사건을 가능케 한 일이라는 점에서 결코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 경찰이 조사한 바로는 ‘고씨는 우연히 본 사전녹화 영상에서 A양을 발견했다. 이어 담당PD에게 연락처를 받아 A양에게 "가수 고영욱인데 연예인을 시켜주겠다"며 먼저 연락해 만나자고 했다’고 한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제는 일상이 돼버린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에 대한 조작논란 때문에라도 방송사에서는 출연자들의 정확한 신상정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연예인들의 헌팅 정보가 돼버린 것은 끔찍한 일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일반인 출연자들의 신상정보 유출이 이번 한 번만 벌어진 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번처럼 상대가 미성년자여서 성폭행 여부와 관계없이 처벌이 가능했으니 사건화됐지만 그렇지 않은 피해자(?)들은 어디다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벙어리냉가슴을 앓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의 심각성은 이런 사례가 과연 고영욱 혼자만의 일이겠느냐는 의혹도 갖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번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 부산에서 슈퍼스타K 예선 신청자들의 서류가 그대로 버려져 문제가 됐었다. 아직 그 신상정보 유출로 인한 악용 사례가 없어 제작진의 사과 정도로 무마됐지만 이번 고영욱 사건과 맞물려 방송사의 일반인 출연자 신상정보 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상대 피해자가 연예인을 지망하는 소녀라는 점을 악용한 악질적인 범죄이다. 그러나 방송 주변에는 이렇듯 연예인 꿈을 안고 사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 번의 방송출연이라도 해보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그들 모두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다.

최근 각 방송사의 예능은 일반인 출연자들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해서 다양한 포맷의 예능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일반인 출연자들에 대한 철저한 정보관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일반인 출연자들을 활용해 시청률을 올리는 데만 혈안이 됐지 그들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는 일에는 무관심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서 드러났다.

이에 대해서 고영욱에게 피해자 전화번호를 건넨 PD가 외주 제작 쪽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는데, 정확한 사실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설혹 이번 일이 외주 쪽에서 외주에서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방송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일반인들이 촬영에 응하는 것은 외주 제작사가 아니라 방송사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방송사가 내부적으로나 혹은 외주제작사에 대해서 일반인 출연자의 신상정보 관리에 엄격한 태도를 보였다면 애초에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처벌받는 것은 고영욱 개인에 국한될지 모르겠지만 방송사의 책임도 결코 그에 못지않다는 뼈저린 반성과 함께 일반인 출연자 정보 보호를 위한 분명한 대책 또한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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