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뉴스를 보면 슬퍼지는 요즘이다. 해수부 공무원 피격 사건이 최근 쟁점화되는 것은 그중에서도 상당히 유감스럽다. 진상을 규명하고 유족들의 아픔을 덜어주는 방향이 아니라 여야가 서로 정치적 득실을 근거로 목소리를 높이며 대립하는 구도만 강화되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이 문제의 시작은 문재인 정권의 안이함이다. ‘자진월북’이라는 규정을 유족들이 불명예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를 성실히 설명하고 납득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것에 주력해야 했다. 유족들은 문재인 정부가 무성의한 대응을 했다고 보고 있다. 그런 무성의함에는 이유가 있을 거고, 그 이유란 떳떳하지 않은 데 있을 거라는 추정이 유족들이 갖는 불신의 원천이다.

물론 사건의 특수성이 있다. 북한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할 수 없고 조각난 감청 정보 등에 의존해 사태를 파악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진상을 파악하는 데 가장 신뢰성 있는 방식은 남북이 공동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이를 제안했다.

그러나 누구나 예상하였다시피 북한은 이 제안에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북한이 반응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제안하는 등 ‘액션’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체념이 상황을 지배했다. 사건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유족들은 고립되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관계된 문제를 안이하게 다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유가족과 법률대리인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게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대로 문재인 정권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했다는 식의 대북굴종론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런 주장이 성립하려면 해수부 공무원이 자진월북의 의도를 가졌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북한이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가 달라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시신을 불태운 행위는 자진월북 의도 여부와 관계없이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가 단지 대북관계를 의식해 사건을 축소 은폐해야 할 이유가 없다. 자진월북으로 상황을 규정한 게 아닌, 앞서 언급한 후속조치에 대한 비판이라면 또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상호 비대위원장의 ‘신색깔론’이란 지적도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잖아도 지금 국면은 야당 입장에서 피해의식을 갖기에 딱 좋다. 유족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법적조치에 나서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이재명 의원 관련 논란이나 이른바 ‘블랙리스트’, 각 부처의 대선 공약 개발 의혹에 대한 수사까지 묶어서 보면 사정정국을 조성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부에선 안 했는가”로 대표되는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까지 언행은 야당의 이러한 의심을 잠재우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좋을 게 없다. 불가피한 부분에 한정한 수사, 절제된 수사, 검사들이 좋아하는 말로 ‘찌르되 비틀지 않는’ 수사의 필요성을 말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보복’을 의심하지 않는다.

여야가 서로의 의도를 놓고 핏대를 세우기보다는 유족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에 주력해야 한다. 대통령기록물 공개 등에 더 적극적 태도를 가져야 하고 국가안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군사정보 등에 대해서도 제한적인 환경에서라도 유족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해야 한다.

특히 청와대와 군의 입장에 근거한 해경의 수사 방식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족의 문제제기로 드러난 해경의 수사방식은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대하는 전형적 태도를 연상케 한다. 이미 결론은 정해져있고 이 결론에 맞는 증거를 끼워맞추는 식이다. 비단 이번 사건 뿐 아니라 그간의 논란에서 보듯 이런 방식은 위험하다. 바로잡아야 한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결말은 현 정권과 전 정권, 여당과 야당이 이 사건을 실컷 이용만 하고 유족들은 의심을 해소할만한 충분한 근거를 찾지 못한 채 지금과 같은 상황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과거 ‘참사’ 피해자들 유족들도 마찬가지 경험을 하고 상처만 안게 된 사례가 많다.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쟁이 아니라 진상규명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