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노래 중에 그리 알려지지 않는 것으로 가수 본인이 크게 아낀다는 <기억이란 사랑보다>가 있다. 가사는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라는 주제 속에 그 기억이 하는 많은 슬픈 일들을 나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내가 갑자기 가슴이 아픈 건 그대 내 생각하기 때문이죠” 노래대로만 된다면 그 기억은 그래도 행복한 것이다.
그럴 리 없다고 애써 그 행복을 만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추억하는 모든 사람은 그 행복 뒤에 쓸쓸한 현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추억을 찾아나서는 일들을 주저하게 된다. 그런데 사랑비는 그 많은 중년들의 추억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어쩌면 마음에 걸렸던 혜정에게 따귀를 맞은 것이 좀 더 용기를 내게 해줬을지도 모른다. 혜정은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사랑은 누가 말리면 더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게 된다는 것을.
윤희는 인하에게 짧게 지난 32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고맙다고 한다. 추억을 끄집어내게 해줘서. 그 추억이 현실이 되게 해줘서 고맙다고 한다. 인하는 아무 말 없이 옅은 미소로 윤희의 고백에 화답한다. 그렇게 그들은 32년 만에 마주보며 웃었다. 비로소 인하와 윤희는 서로에게 솔직하고, 사랑에 용기를 내게 됐다.
준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사람이 하나의 엄마라는 사실 때문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아버지를 설득하건 못하건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아버지의 첫 사랑이 하필이면 하나의 엄마인 것이다. 못 마시는 술에 취해 무모하게 시비를 걸어 주먹다짐까지 한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일단은 그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다. 그래서 하나와 근사한 데이트를 하면서 애써 아버지의 일에 태연한 척 하려고 했다. 그런데 데이트를 마치고 화이트 가든에 돌아왔을 때 문 앞을 서성이는 아버지를 보고는 준은 외면하려 했던 현실을 직면하게 되고, 하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도망치고 말았다. 어디쯤에선가 멈추고는 다짜고짜 하나에게 헤어지자고 한다.
그렇게 인하와 윤희가 거의 불가능한 일을 현실이 되게 했는데, 그만 자식들의 사랑이 위협받게 됐다. 참 기구하다. 32년이란 세월에 묻어두었던 사랑이 기적적으로 다시 찾아왔지만 위태롭다. 운명이 인하와 윤희에게 허락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