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남자는 참 묘하다. 작가 김인영의 전작 태양의 여자와 제목부터 드라마 전반의 느낌이 매우 비슷한데 시청률 추이마저 닮아 있다. 태양의 여자도 시작은 아주 낮은 시청률로 시작해서 끝날 때는 25%대의 대박 드라마 대열에 들어섰다. 적도의 남자도 그렇게 화려한 피날레가 가능할지에 대한 관심이 이 드라마 시청의 또 다른 흥밋거리다.
그렇지만 절망의 끝자락까지 밀렸다가 문태주의 도움으로 시력, 재력 모두를 이루고 화려하게 돌아온 엄태웅의 복수의 칼날에 꽂힌 시선만큼 뜨거운 관심은 없다. 그런데 화려하게 돌아온 이상 이준혁과 김영철에게 통쾌한 복수를 원하는 시청자의 기대에 정작 작가는 애써 외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13년을 절치부심 복수를 위해 준비한 선우보다 카메라 앵글은 주로 이준혁과 임정은에게 더 집중하는 모습이다.
도대체 왜 작가가 엄태웅과 이보영의 러브라인을 얼렸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드라마로 성공하려면 닥치고 로맨스 아니던가. 그걸 모를 리 없는 작가의 고집이 마음에 들지만 적어도 이유는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대답해줄 리도 없으니 나름으로 짐작해보는 길밖에 없다.
먼저 엄태웅이 이보영을 가까이에 두면서도 끝까지 아는 척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13년 간 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선우이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돌아와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소시효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자칫 준비한 시나리오 중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일을 전부 그르칠 수밖에 없다.
선우가 사랑과 복수를 동시에 하게 인위할 수도 있다. 다만 그렇게 한다면 시청자의 욕구는 채워지겠지만 지금까지 힘들게 끌어온 김선우라는 이름에 응축된 긴장감은 풀어지게 된다. 지금 당장은 선우가 지원을 가까이에 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심지어 기나긴 복수의 끝은 시청자의 예상과 전혀 다를 수도 있다. 그런 결말을 예감케 하는 몇몇의 단서가 있었다. 선우에게 경필의 편지를 잃어버렸다고 주지 않는 문태주가 그렇고, 현재 작가가 이준혁, 임정은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도 뭔가 다른 의도가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쯤에서 적도의 남자 첫 장면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진노식 회장에게 총을 겨눈 이는 이장일이었고 그 앞을 가로막은 이는 선우였다. 그것이 최후의 최후 장면이라고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이 드라마는 결말 지점부터 보여주고 시작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단지 선우가 적도에 가서 돈을 벌었다고 해서 이 질좋은 드라마의 제목을 적도의 남자로 붙였을 리는 없다.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작가라 만만히 예상할 수 없어 무엇 하나 단정할 수는 없지만 아직 선우의 친부가 누구인지 명확치 않은 것도 변수가 될 거라 보인다.
그러나 적어도 러브라인에 대한 기대는 유효할 거라 믿는다. 그 여자는 내 인생의 반이라고 했던 선우의 말 때문이다. 비록 결말이 시청자들 속을 후련하게 풀어줄 명징한 것이 아니라도 적어도 선우에게 지원마저 포기하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인간 군상의 타락을 뒤로 하고 적도로 떠나는 선우와 지원의 뒷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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