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망설임 끝에 인하는 마침내 자기 마음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그 정도로 도저히 견디지 못할 열망. 그 열망으로 인해 스스로 타 죽어버릴 듯한 사랑. 그쯤은 되어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에게는 너무 늦은 고백이었던 것도 피할 수 없는 아픔이기도 했다.
윤희에게 드디어 입을 뗀 인하는 그 둘이 선 아름다운 풍경과 쏙 어울리는 고백을 했다. 하도 아름다워서 한 번 들었을 뿐인데도 단번에 외워질 정도였다.
이 정도 고백이면 시 한 편이나 다름없다. 또 그때에는 이 정도의 시심은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딱히 말로 근사하게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숱한 날 혼자서 상대에게 한 말을 하고 또 했을 테니, 이 만큼의 근사한 고백은 오랜 마음 졸임에 대한 훈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것을 마음에 오래 담아두다 보면 어느새 한숨이 되고, 그 한숨은 다시 시가 되는 법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휘휘 돌아가게 만든 다리처럼 인하와 윤희는 참 먼 길을 돌아 겨우 서로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곳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인하의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그들은 묵혀왔던 사랑을 나눌 시간이 충분치 않다. 그렇게 또 애를 먹이고, 속을 태웠던 것도 이 바보 같은 사랑의 피할 길 없는 행보일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나와 춘천역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막차마저 떠난 후. 당황스러운 그들에게 역 근처 민박이나 여인숙쯤을 운영하는 아주머니가 접근해 자고가라고 유혹한다. 보통은 그렇게 치명적인 추억의 역사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지극히 순수해 손 한 번 잡는 것도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마는 인하였기에 유혹을 뿌리치고 동해안으로 가는 심야열차에 오른다.
그리고 텅 빈 동해바다에 나란히 앉아 그들은 그림보다,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되었다. 바다를 마주보며 그들은 볼에 가볍게 키스하는 행복까지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행복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러브스토리의 내용이 그렇듯이, 많은 사람이 진부하다고 손가락질 하듯이 윤희에게는 몹쓸 병이 있을 것 같다. 진짜 아픈 사랑은 긴 세월을 함께한 후의 이별이 아니라 제대로 뭔가 하지도 못하고 맞는 이별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