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간발의 차로 정권은 바뀌었다. 다들 협치의 필요성을 얘기한다. 윤석열 당선자가 집권을 하더라도 여소야대라는 국면은 상당기간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형식이란 측면에서 서로 요구하고 강요하는 협치가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통치의 문법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협치가 절실하다.

예를 들면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다. 인사 문제와 더불어 ‘윤석열 정권’에서 가장 먼저 대립 구도가 만들어질 문제라면 이 대목을 꼽을 수 있다. 한쪽은 폐지만이 답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폐지는 절대 안 된다고 하며 맞서면 ‘협치’는 이뤄질 수 없다. 그렇다고 한쪽이 그냥 양보하고 마는 것을 ‘협치’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협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윤석열 당선자는 “역사적 소명을 다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과거 여가부가 감당한 역사적 소명이란 뭐고, 지금은 그런 게 없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는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여성의 지위가 과거에 비해 이미 상당히 향상됐으니 이제 여가부도 필요없다는 식의 주장은 단지 정치적 구호이거나 동어반복일 뿐이다. 부처를 없애는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 여가부가 실제 담당하고 있는 업무를 근거로 그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및 부위원장 인선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게 가능하다면 더불어민주당도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의 모든 주장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보다는, 사리를 잘 따져 여성가족부 담당 업무의 효율화를 최대화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절충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양대세력이 모두 ‘협치’란 차원에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합의의 결과에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국민들도 많겠지만 어찌됐건 여소야대 체제에서의 새로운 통치문법이 필요한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시나리오는 ‘윤석열 체제’가 오직 과거로의 회귀만을 지향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현상유지’의 정당성을 근거로 이를 반대하면서 현재의 합의 구조를 공전시키는 거다. 이 경우는 ‘협치’도 기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서로에 대한 반대로 자기 정당성을 보충하는 정치의 연장으로서의 ‘나쁜 양당체제’가 고착화 될 가능성이 커진다.

윤석열 당선자가 지역안배나 여성할당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주장을 거듭하고 있는 건 이런 미래를 예상하게 한다. 윤석열 당선자는 “국민을 제대로 모시기 위해서는 각 분야 최고의 경륜과 실력 있는 사람을 써야지, 자리 나눠먹기 식으로 해서는 국민통합이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과거의 지역안배나 할당제 등을 ‘자리 나눠먹기’로 본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나는 거다.

지역안배라면 대표적인 게 영호남 배분이다. 이건 여성할당이나 청년할당이 논의되기 훨씬 이전부터 작동하던 인사원칙인데, 특정 지역 출신이 권력을 독식한 게 불공정한 결과로 이어졌다는 개념이 반영된 거였다. 근래의 할당제도 주요 직책에서 ‘서오남(서울대, 50대, 남성)’ 편중 등을 극복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논의된 바였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윤석열 당선자의 ‘실력’ 개념은 이러한 개념이 고안되기도 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인데, 이걸 과연 합리적인 반응으로 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단지 실력있는 인사를 기용하거나 ‘시스템에 따라’ 작동하는 통치 방식을 유지하면 만사형통이라는 듯한 태도는 행정부형 리더를 지향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당선 기자회견에서 소통을 늘리겠다며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고 했고 언젠가는 ‘혼밥’을 하지 않겠다고도 한 것은 또다른 맥락이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다는 것은 곧 정치의 한가운데 선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협치건 할당제건 결국 정치의 수단이고 그 결과다. 행정부형 리더에 가까웠던 문재인 대통령의 부족함을 메우는 게 목적이라면 정치인형 리더가 돼야 한다. 그걸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 패배한 민주당의 사정은 좀 더 복잡해 보인다. 선거에 지면 책임론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는 게 대한민국 정치다. ‘윤호중 비대위’에 대한 박한 평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예고되었다. 첫째는 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니라는 점이고, 둘째는 반성과 쇄신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드는 형태라는 점에서다.

고민은 이해할 수 있다. 비대위라는 게 반드시 그 체제에서 모든 반성과 쇄신을 다 해야 할 필요는 없다. ‘김종인 비대위’가 워낙 익숙하게 각인돼 있어서 그렇지, 임시지도부 정도의 성격을 갖는 무색무취한 비대위가 오히려 일반적 사례에 가깝다. 비대위 체제로 선거를 치르는 게 불가피한 상황에서 선거 책임론을 헤집고 새로운 리더십을 발굴하고 합의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거다.

n번방 사건을 추적한 것으로 잘 알려진 박지현 씨를 공동비대위원장으로 하고 비대위 내 2030 비율을 크게 한 것은 현재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앞서의 비판을 피해가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2030세대에 해당하는 비대위원의 숫자가 아니라 실제로 이들이 맡는 역할이 무엇이냐는 거다. 지방선거에 국한해서 보자면 공천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실제적인 공천권 행사가 가능해야 하고, 그 결과를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이 가능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평가를 좌우할 것이다.

이런 효과가 아니라 일부 언론이 평가하는 것처럼 ‘이준석과 대비되는 효과’를 노린 결과라거나, 대선에서 눈물을 머금고 한 표를 던진 2030 여성들의 지지를 지방선거까지 끌어가보겠다는 것이라는 평가를 벗어나지 못하면 오히려 ‘2030 비대위원’ 카드는 소모적으로 활용되고 소멸하는 길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보다는 낫다’는 것을 단기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번 비대위 체제를 통해 쇄신을 보여주면 ‘윤석열 체제’도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협치’는 그러한 변화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협치’의 전제는 선의나 이상적인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변화’에 있다는 것이다. 양당은 0.7%p라는 격차에 불과한 대선 결과를 어떤 실질적 변화를 어떤 합의에 의해 도출해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