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치열한 이번 수목극 전쟁은 우여곡절이 많다. 작품의 퀄리티를 떠나서 최고의 화제작 해를 품은 달의 핵우산을 피하기 위해 KBS와 SBS는 수모를 감수하며 온갖 눈치를 다 봐야만 했다. 특히 KBS의 적도의 남자를 위한 배려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럴수록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 옥탑방 왕세자 박유천에 비해 티켓파워에 자신이 없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포문을 연 수목극 전쟁의 미래는 적도의 남자에 가장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싶다. 태양의 여자로 호평을 받았던 작가 김인영의 미스테리 터치가 초반부터 기대감을 높이고 있으며, 드라마 스페셜로 오래 내공을 닦은 김용수 PD의 의욕적이고도 감각적인 연출도 화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첫 회에는 아주 감성적인 노을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소년들의 우정만큼이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BGM에 불만을 표한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어린 김선우가 처음 등장할 때 깔린 음악이 에릭 클렙튼의 명곡 레일라라는 점은 놀랍고도 반가웠다.

적도의 남자를 해품달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케 하는 이유는 거센 아역 폭풍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해품달 아역돌풍의 주인공 임시완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여린 외모에 엄포스를 곧 따라잡을 것만 같은 이현우의 분노와 절규가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거기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우수에 찬 모습도 소년의 연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가 엿보였다.

또한 이보영과 임정은의 아역으로 등장한 경수진, 박세영도 서로 다른 분위기와 미모로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어 전체적인 아역들의 밸런스가 잘 맞춰진 것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다만 이현우 외에는 모두 실제로는 성인이라 아역이라는 말이 다소 민망한 점은 남는다.

적도의 남자의 소재는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복수, 거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한 남자가 겪어야 할 최대한의 고통과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 어차피 드라마 소재가 전혀 새로울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 할 수 있다. 적도의 남자의 어떻게의 첫 단추는 이현우를 비롯한 아역들의 호감 속에 잘 꿰어지고 있다.

특히 엄포스의 부활을 강력하게 예고한 무서운 아역 이현우의 열연은 적도의 남자를 해품달의 계승자로 만들어줄 일등공신으로 떠올랐다. 길러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실제 친아버지인 복잡한 출생의 비밀을 안고 성장하는 역할이다. 부산의 유명한 쌈꾼 이현우는 우연히 전교일등 임시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어 둘은 서서히 친구가 되어간다. 두 소년은 모두 편부 슬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임시완이 달콤한 외모답게 우선 로맨틱한 면들이 부각된 반면, 이현우는 유명한 쌈꾼답게 털털하고 남자다운 면이 강조되었다. 얼핏 영화 친구의 준석이와 상택이를 떠오르게 하지만 아마도 배경이 부산이라 더 그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 풋풋한 소년들의 우정이 깊어갈 즈음에 닥쳐온 불행은 이들의 미래를 아주 큰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어렵게 트럭행상을 하며 이현우를 키워준 아버지 이대연은 말기에 암을 발견하게 되자 그래도 친아버지인 김영철에게 선우를 맡기러 갔다가 실랑이 끝에 살해당하고 만다. 그런데 야산에 자살로 위장하는 하수인이 이현우의 절친이 되어가는 임시완의 아버지 이원종이다. 이원종은 아들에게 최고의 교육환경을 제공해주겠다는 김영철의 사탕발림에 결국 살인을 눈감아주게 되고, 자살위장까지 도맡게 되는 것이다.

그 죽음으로 인해 김선우(엄태웅, 이현우)는 길러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친아버지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무거운 운명의 굴레를 쓰게 된다.

이렇듯 무겁고 처절한 분위기 속에서도 사건과 인물들을 엮는 솜씨가 매끈해서 몰입을 자극하고, 특히나 그 실마리를 풀어줄 아역들의 열연과 호감 때문에 적도의 남자는 기대 이상의 사고를 치게 될지 모르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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