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 치열한 이번 수목극 전쟁은 우여곡절이 많다. 작품의 퀄리티를 떠나서 최고의 화제작 해를 품은 달의 핵우산을 피하기 위해 KBS와 SBS는 수모를 감수하며 온갖 눈치를 다 봐야만 했다. 특히 KBS의 적도의 남자를 위한 배려는 눈물겨울 정도였다. 그럴수록 더킹 투하츠의 이승기, 옥탑방 왕세자 박유천에 비해 티켓파워에 자신이 없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포문을 연 수목극 전쟁의 미래는 적도의 남자에 가장 큰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싶다. 태양의 여자로 호평을 받았던 작가 김인영의 미스테리 터치가 초반부터 기대감을 높이고 있으며, 드라마 스페셜로 오래 내공을 닦은 김용수 PD의 의욕적이고도 감각적인 연출도 화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적도의 남자를 해품달의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케 하는 이유는 거센 아역 폭풍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해품달 아역돌풍의 주인공 임시완이 등장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여린 외모에 엄포스를 곧 따라잡을 것만 같은 이현우의 분노와 절규가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거기에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우수에 찬 모습도 소년의 연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깊이가 엿보였다.
적도의 남자의 소재는 크게 새로울 것은 없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복수, 거기에 출생의 비밀까지 한 남자가 겪어야 할 최대한의 고통과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 어차피 드라마 소재가 전혀 새로울 수 없다는 현실 속에서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라 할 수 있다. 적도의 남자의 어떻게의 첫 단추는 이현우를 비롯한 아역들의 호감 속에 잘 꿰어지고 있다.
임시완이 달콤한 외모답게 우선 로맨틱한 면들이 부각된 반면, 이현우는 유명한 쌈꾼답게 털털하고 남자다운 면이 강조되었다. 얼핏 영화 친구의 준석이와 상택이를 떠오르게 하지만 아마도 배경이 부산이라 더 그럴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 풋풋한 소년들의 우정이 깊어갈 즈음에 닥쳐온 불행은 이들의 미래를 아주 큰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말았다.
그 죽음으로 인해 김선우(엄태웅, 이현우)는 길러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친아버지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무거운 운명의 굴레를 쓰게 된다.
이렇듯 무겁고 처절한 분위기 속에서도 사건과 인물들을 엮는 솜씨가 매끈해서 몰입을 자극하고, 특히나 그 실마리를 풀어줄 아역들의 열연과 호감 때문에 적도의 남자는 기대 이상의 사고를 치게 될지 모르겠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