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프로그램의 생명력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기점은 시청률의 하락이나 몇몇 멤버나 구성원의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지는, 그렇게 가시적으로 파악이 가능한 사건사고의 순간이 아닙니다. 언론에서 흔히들 떠들어대는 그런 식의 논란이나 위기설은 금세 또 다른 곳에서 터져 나오는 일들로 묻히거나, 제작진과 출연진이 힘을 합치는 절치부심의 노력과 기발한 발상으로 시청자들의 호응과 신뢰를 되찾는 반등으로 만회가 가능한, 그야말로 위태로운 기회니까요.

오히려 프로그램이 붕괴와 폐지를 불러오는 진정한 문제는 바로 동력과 명분, 아이디어와 발전의 상실입니다. 더 이상 이 프로그램이 다른 경쟁 방송들과 차별성을 가질 변별력이나 개성이 사라지고 왜 이 방송이 계속 지속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찾아올 때 시작된다는 거죠. 매번 어디선가 본 아이템들이 반복되고, 바꾼 것이라고 내놓은 것들도 별다른 호응을 받지 못하는 쇠퇴의 반복. 지금이야 그동안 쌓아온 인기와 시청자들의 정으로 어떻게 겨우겨우 유지가 되는 것 같이 보여도, 이런 활력이 사라져버린 프로그램에겐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일요일 저녁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큰 위기에 처해 있는 프로그램은 바로 남자의 자격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면서 자신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기 자리만을 맴돌고 있는 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김성민의 대형 사고로 인한 불미스러운 퇴출, 이정진의 연기 전업을 위한 하차, 담당 PD와 핵심 제작진의 종편행으로 인한 교체, 새로운 멤버들의 적응 실패까지 연이은 가혹한 문제들은 이 프로그램의 활력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남자의 자격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미덕들은 사라지고, 잘나가는 익숙한 꼭지들만 조금씩 손을 보며 반복하는 식상함만 계속되고 있거든요.

매년 반복했던 친구들과 함께 한 송년특집, 무한도전에서 이미 시도했던 식스팩 특집, 몇 번이고 되풀이 했던 친구와 함께하는 꼭지들. 최근 남자의 자격이 방송했던 내용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미 방송했거나, 혹은 다른 프로그램들 (특히 그들의 본류인 무한도전으로부터) 차용해 온 소재들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발명 특집 역시도 꼬꼬면으로 대박을 쳤던 라면 특집의 범주, 일반인의 일상에서의 발견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그다지 다르지 않아요. 나오는 사람들만 조금씩 다르고, 약간의 양념만 가미될 뿐이지 그 내용이 그 내용인 쳇바퀴돌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그저 멤버들의 힘, 그들의 캐릭터와 개인 역량에 의지해서 어떻게든 내용을 끌고 나가고 있지만 그 힘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이 주에 걸쳐 방송된 워너비, 혹은 멘토 특집 역시도 이번이 세 번째인 상담 컨셉의 반복입니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특별 강의, 형님이라며 학교를 찾아갔던 1대1 고민 상담, 그리고 이번 특강 역시도 동일한 것의 자기 복제였어요. 남격만이 가진 연륜과 경험의 나눔이라는 그들만의 강점이 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그냥 똑같은 형식의 방송이 너무나 자주,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은 제작진의 역량과 고민의 부재를 지적할 수 없어요. 그러니 강의의 내용이나 질도,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 울림의 크기도 점점 더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우린 이런 남격 멤버들의 인생이 전해주는 감동과 지혜를 벌써 세 번이나 접하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처음 특강 때는 늙은 광대의 비애와 의지를 강하게 전달해주었던 이경규나 위대한 탄생의 멘토로서의 기운을 그대로 연결하며 따스한 형님의 충고를 말해주었던 김태원의 말도 이번 방송에서는 그 빛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냥 식상한 이야기의 반복, 혹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이야기의 나열이었으니까요. 그나마 제작진을 구원해 준 것은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보여준 김국진의 따스한 위로,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의 비애를 절절하게 보여준 윤형빈의 솔직한 토로였습니다. 그리고 이들 개개인의 빛나는 역량에 비해 실제로 제작진이 했던 것은 거의 없었어요. 부끄러운 제작진과 빛나는 출연진. 이번 특집을 요약하면 딱 이 말 밖에는 떠오르지 않아요.

이런 식의 포맷 베끼기와 자기복제의 반복, 그리고 출연진에게만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의존은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남격이 가진 장점은 여전히 강렬합니다. 그들이 아니면 이야기하기 힘든 아저씨들의 버라이어티. 조금은 활동력이 부족하고, 파격과 기발함이 모자라지만 시청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작은 도전을 권유하는 느긋한 발걸음. 그리고 인생의 깊이와 지혜를 나누며 짐짓 넉살과 여유를 부리는 약간은 비어있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남격의 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남자의 자격은 그런 미덕보다는 과거의 잘나가는 것들만을 반복하며 그동안 쌓아놓은 재산들을 스스로 까먹고 있습니다. 김국진의 이야기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을 전해 주었지만, 그런 작은 성공에 만족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점점 더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위기는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되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