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타이밍. 의도한 것이든, 우연의 일치였든 간에 시간만으로 본다면 K팝스타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찾기 어려웠을 겁니다. 길었던 예비 선발 과정을 마치고 본격적인 출발이라고 해야 할 TOP10의 생방송 무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동시간대의 경쟁자들은 모두 1박2일 시즌 2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불안함, 나는 가수다처럼 내부 정리와 사내 분규로 인한 휴식이란 각자의 자체적인 문제들과 싸우고 있으니까요. 1박2일의 압도적인 지배력이 사라진 일요일 저녁 예능 전쟁터에서 단번에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타이밍. 지금 K팝스타가 획득한 기회는 결코 흔한 것이 아닙니다.

첫 생방송을 시작하며 준비했던 미션의 선택 역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실력, 참가자들의 개인사에 대한 외면으로 일관했던 K팝스타는 첫 번째 음악 미션으로 각자의 인생사를 설명할 수 있는 노래를 선택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들의 선곡 내력을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었고, 시청자들이 도전자 모두의 노래 속에서 또 다른 감정이입과 응원의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죠. 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력만큼이나 사람이 좋아서 열광하고 그 결과에 집중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 좋은 조건과 설정에도 불구하고, K팝스타의 첫 생방송 무대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더군요. 다른 누구의 탓을 할 것도 없이,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자체적으로 준비했어야 할 기본적인 미덕과 강조점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예선전부터 수차례 지적되었던 것과 같이 차곡차곡 쌓아온 문제들이 한꺼번에 폭발해 버렸고, 시청자에게 친근감을 유도하고 거리감을 해소하려 했던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난 결과는 도리어 반발만을 불러왔습니다. K팝스타로서는 앞으로의 대장정을 앞두고, 가장 안 좋은 출발을 한 셈이에요.

전체적인 문제는 속도감과 긴장감의 상실입니다. 윤도현은 좋은 공개 프로그램 진행자임에도 그의 수더분한 장점은 격렬한 경쟁을 이완시킬 수는 있지만 서바이벌의 잔인함과 숨 가쁨의 정도를 세련되게 조율하기엔 너무 요령이 부족합니다. 생방송이기에 시간 배율과 분량 조정 때문에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깔끔하게 정제해 각 마디를 나누고,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기엔 아쉬운 진행자란 것이죠. 실제로 그가 방송 내내 건넨 진행 멘트 중에서 시청자들과 심리적인 밀당을 하면서도 전체적인 호흡을 조절했던 것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슈퍼스타K 60초의 남자 김성주가 가진 역량과 장점을 확연하게 드러내는 차이였어요. 물론 이런 아쉬움은 갑자기 등 떠밀리듯이 진행 마이크를 잡게 된 위대한 탄생의 박미선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지적입니다. 서바이벌 생방송 진행은 아무나 맡는 것이 아니에요.

이런 진행의 미숙은 쓸데없이 늘어지는 등장 소개 영상, 산만하고 정돈되지 못한 어설픔을 보여준 보조 MC 붐의 경험 부족, 정돈되지 않고 각각의 시간배율도 되지 않아 부산스러운 심사위원들의 평가 덕분에 더더욱 지루함을 더해주었습니다. 누가 살아남을 것인지, 과연 어떤 무대를 보여줄 것인지 순간순간이 기대되고 흥분되어야 하는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고 지겹게 느껴졌던 것은 이런 전체적인 호흡의 강약 조절 실패 때문입니다. 밥상을 잘 차려주어야 하는 제작진의 준비 부족, 혹은 생방송 서바이벌 경쟁을 해보지 못한 SBS 제작진의 경험의 미숙이 가져온 문제점이었죠.

그래도 노래만 잘 부른다면야, 출연자들의 무대만 훌륭하다면야 이런 불편함과 미숙함은 단번에 해소될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K팝스타는 다른 어떤 오디션 프로그램보다도 우월한 재능들이 몰려 있다는 기대와 평가를 받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실제 이들의 무대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첫 생방송 무대를 치른 나이 어린 재능들이기에 분명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하긴 합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을 감안한다고 해도 실망스러움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이전의 과정에서의 모습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부족한 실력으로 첫 무대를 장식했으니까요.

이런 실망감은 선발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물론 제작진들이 자초한 일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솔로가수를 선별한다면서, 이들에게 주어졌던 선곡 혹은 미션들은 너무나 많이 외국 곡에 의지했습니다. 더불어 그에 특화된 도전자들이 각광을 받고 선택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되짚어 보건데, 지금까지의 인상적인 무대들 중에서 국내 가요를 부르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도전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 가요에 대한 이해나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재능들. 그런 상황에서 90년대의 곡을 소화하라는 첫 미션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리 만무했죠. 거기에 미숙한 편곡, 엉망인 음향 조건까지 겹치면서 원곡의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렸어요.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사고는 마지막에 터져 버렸습니다. 다른 모든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극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던 오뚝이 이정미가, 가장 부정적이고 논란의 중심이 되어 있는 김나윤과의 마지막 선택 기로에서 탈락해버렸습니다. 각각의 출연자들에게 스토리텔링을 부가시키며 시청자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했던 제작진의 의도는 이 결과 한방으로 완전히 망가져 버린 것이죠. 비록 김나윤의 무대가 심사위원단의 평가에서는 앞섰지만 교포 발음으로 노래가 아닌 치어리딩을 선보인, 차라리 대형사고와도 같은 무대를 보여준 그녀의 실력이 과연 이정미를 누르고 생존할 만큼의 것이었는지는 의문이에요.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첫 방송에서 발견된 미숙한 부분은 경쟁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보완될 것이고, 논란과 불만은 어쩌면 또 다른 면에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K팝스타의 첫 생방송은 엄청나게 많은 과제를 남기고 마무리되었습니다. 소문난 잔치를 홍보한 것까지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잔칫상에는 별것이 없었단 거죠. 일요일 밤의 1인자가 될 수 있는 지금의 좋은 환경은 결코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런 호기를 놓쳐버린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K팝스타 자신의 한계 때문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