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혜인 기자] 한국 여성기자 10명 중 9명은 성희롱·성추행을 경험했을 때 침묵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화했다는 응답은 14.3%에 불과했다.

지난해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여성 기자 69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성 기자의 업무 실태 및 직무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최근 3년 동안 성희롱·성추행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여성 기자는 97명(14.0%)이었다.

성희롱 등의 경험에 노출되었을 때 얼마나 공론화하는지 질문한 결과 대다수인 511명(85.7%)은 침묵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론화했다는 응답은 83명(14.3%)이었다. 공론화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46.6%)였다. 이어 ‘당황해서’(20.2%), ‘취재에 방해될 우려’(14.0%), ‘승진 등에서 불이익 우려’(9.1%) 순으로 집계됐다.

공론화 이후 실제 불이익이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는 ‘불이익이 없었다’는 응답과 ‘심리적 압박감’이라고 답한 이가 각각 39명(31.5%)으로 가장 많았다. ‘악의적 소문‘(22명, 17.7%)’, ‘업무상 부당한 대우’(12명, 9.7%)와 ‘비난 혹은 따돌림’(9명, 7.3%)을 겪었다는 응답도 나왔다.

공론화 이후 회사의 대처를 질문한 결과, ‘행위자 징계’가 28.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대처법 교육’(14.1%), ‘윤리규정 등 정책 제정’(12.1%), '대처법 교육'(14.1%), '가해자 공개'(6.1%) 순이었다. 그러나 ‘조치가 없었다’는 응답도 25.3%에 달했다.

한국여성기자협회 '여성 기자의 업무 실태 및 직무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 (에세이집 '유리는 깨질 때 더 빛난다' 갈무리 )

여성 기자가 경험한 성희롱 중 가장 흔한 유형은 ‘성적인 이야기나 음담 패설을 들은 적이 있다’(959명, 복수응답)였다. 이 밖에 ‘미인이다 등 외모, 옷차림, 몸매 등을 언급해 불쾌했다’(769명, 복수응답), ‘이성 옆에 앉기, 러브샷, 블루스 등을 강요받았다’(448명, 복수응답), '신체를 접촉하는 행위'(319명, 복수응답) 등의 답변이 나왔다. 성희롱과 성추행 주체는 '취재원'(1180명, 복수응답)과 사내 상사'(1150명, 복수응답)가 주를 이뤘다. 추행이 발생한 주된 장소는 ‘취재원과의 회식’(42.5%), ‘사내 회식’(36.6%), ‘언론사 내부 사무실’(12.1%) 등이 꼽혔다.

다만 미투 운동 이후 여성 기자들은 기자 사회와 취재원의 성희롱 관련 행위가 다소 줄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기자들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줄었다’, ‘취재원들의 불필요한 신체 접촉이 줄었다’, ‘기자들의 성희롱 혹은 성적 농담이 줄었다’ 등의 답변이 나타났다. 여성 기자가 인식하는 성인지 감수성의 개선 정도에서 전반적으로 기자들의 점수가 취재원의 점수보다 높았다.

업무상 남녀기자 차별 크게 느끼지 못해... 54.8% 핵심 부서에서 근무

여성 기자들은 업무와 관련해서 남성에 비해 차별이 크지 않다고 했다. 1990년 한국여성기자협회가 실시한 조사와 비교했을 때 여성 기자가 차별을 느끼는 영역이 ‘부서배치’(1990년)에서 ‘승진’(2021년)으로 변화했다. 여성의 언론계 진출이 급증하면서 부서배치와 출입처 등에서는 차별이 줄었으나 기자로서의 능력에 대한 평가, 평가 결과로 볼 수 있는 승진 등에서 여전히 차별을 경험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조사에서 여성 기자가 가장 많이 근무한 부서는 조사·교열부(31.7%), 문화·생활부(24.4%)였다. 정치부(0.8%), 경제부(2.0%), 사회부(4.9%)로 세 부서의 근무자는 7.7%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조사 응답자 54.8%가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전체의 70.3%가 희망부서에서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희망하지 않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이유로는 ’남성 위주의 취재관행’, ‘인사권자의 성편견’ 등의 답변이 우세했던 과거와 달리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서’(22.8%)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여성 기자들은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로 ‘전망이 나은 업계로의 도전’(4.05점), ‘언론 산업의 혁신 부족’(3.97점), ‘언론인으로서 성취감·만족감 저하’(3.29점), ‘일과 가정의 양립의 어려움’(3.90)점 등을 꼽았다.

한국여성기자협회 CI

후배·동료·선배로서 여성 기자의 자질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물은 결과, ‘여성 기자도 남성과 똑같은 능력, 자질을 갖고 있다’는 문항에 가장 동의했다(4.50점). 다음으로 ‘중요 업무에 여성 동료와 여성 선후배를 적극 추천하겠다’(3.94점), ‘여성 동료와 한팀으로 일하고 싶다’(3.75점)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여성의 자질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언론사 내 여성 리더 부족 문제에 대해 응답자들은 '여성 기자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 편견'(3.57점), '인적 네트워크의 부족'(3.34점), '정치적 부족'(3.28점)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반면 '여성 기자의 자질 부족'(1.96점), '여성 기자의 업무 회피'(2.17점) 등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해당 조사는 창립 60주년을 맞은 한국여성기자협회가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에 의뢰 실시됐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마켓링크는 지난해 5월 25일부터 6월 9일까지 온라인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여성기자협회 소속 31개 언론사 기자 1464명 중 693명(응답률 47.3%)이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 결과는 한국여성기자협회가 발간한 에세이집 <유리는 깨질 때 더 빛난다>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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