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가진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는 이 드라마의 원작을 구입해서 읽거나, 조금만 발품을 팔고 부지런히 검색만 한다면 이 이야기의 결말을 모두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각색이 덧붙여질 것이고, 다소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 전체의 얼개와 그 마지막이 완전히 바뀌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그렇기에 해를 품은 달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연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 하며 굳이 이미 알려진 내용을 들추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살피며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흐름만을 살펴보아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결코 아름다운 해피엔딩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휜과 월은 갈라진 운명의 길을 다시 합치고, 왕과 무녀의 구분을 넘어서고, 수많은 방해와 고난을 극복할 수도 있습니다. 빼앗긴 휜의 옆자리를 월, 아니 연우가 되찾고 젊고 현명한 왕과 왕비가 다스리는 가상의 조선을 그리며 마무리될 수도 있습니다. 해품달이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면 이 두 남녀 주인공의 결합이야말로 유일한 정답일 것이에요.

하지만, 과연 훤과 월이 본시 제자리를 찾아 함께 사랑을 이루는 결말이 그려진다고 해도 이것이 깔끔한 해피엔딩이라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마무리될 수 있을까요. 아니요. 절대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이번 12화의 내용은 해품달이 보여주는 사랑이란 결코 모든 것이 아름다워 질 수도, 전부 다 긍정할 수만도 없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비굴하며 일그러진 것이라는 것을 소상하게 보여 주었으니까요. 그것도 각기 다른 인물들. 양명, 중전, 공주의 세 입장을 차례로 그 내면까지 소개시켜주면서 말이죠.

양명은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자입니다. 욕망할 수 없고, 소유할 수 없고, 의지할 수도 없습니다. 왕에게 가장 위협적인 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충성해야 하는 자. 그렇지만 너무나도 무력한 인물. 그런 양명에게 연우는 유일하게 가지고자 했던 욕망이자 소원이었고, 연우와 똑같은 모습으로(뭐... 그렇다고 칩시다.) 다시 나타난 월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되찾고 싶은 또 한 번의 기회입니다. 하지만 연우를 휜에게 보냈던 것처럼 월을 향한 사랑은 또 다시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그런 그에게 휜과 월의 사랑을 응원하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 결과야말로 최선의 것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중전에게 휜은 가지고 있지만 가지지 못하는 끊임없는 갈급함입니다. 국모의 자리는 남편에 대한 아내의 욕구 같은 당연한 내면의 욕망조차도 절제할 것을 요구하고, 작은 발언, 조그만 행보조차도 권력의 비정함과 위험함에 의해 통제되고 가다듬어집니다. 이런 감옥 같은 궁궐에서 그녀의 사랑은 의지할 곳을 잃고 삐뚤어지고 왜곡되어 버립니다. 연심을 품었지만 응답받지 못하고, 결국 다른 곳을 향해 있는 님의 연심을 이용해 몸뚱이라도 품으려 하는 그녀의 행동을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그녀가 훤과 월의 사랑을 응원하며 행복하라고 깔끔하게 승복할 수 있을까요?

공주는 또 어떻습니까. 어쩌면 해품달에서 가장 순수하고 강렬하고 지고지순한 연정을 품고 있는 사람은 바로 이 철부지 공주님입니다. 지아비 허염을 향한 이 애틋함은 그 어떤 장애물도 가로막지 못합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행복한 이들의 삶은 그녀가 허염을 얻기 위해 했던 외면과 침묵 때문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습니다. 그 과거의 잘못이 발각된다면 과연 허염은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그 가정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공주의 사랑은 휜과 월의 결합을 위해 결국은 깨어져야만 하는 사랑입니다. 해품달의 해피엔딩이란, 결국 공주에게는 비극의 시작일 뿐이에요.

아시겠나요? 해품달의 사랑이란 ‘모두가 좋은 것이 좋지’라며 다 같이 행복하게 끝나는 동화 속 해맑은 결론을 결코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도리어 나의 사랑은 누군가의 눈물, 아픔, 괴로움 덕분에 가능한 것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죠. 결국은 욕망과 질투, 괴로움과 견딤의 격돌이 해품달이 다루는 사랑이란 감정입니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깔끔한 해피엔딩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들의 마음에 상처가 나는 과정을 가슴 아프지만 똑바로 바라보고,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뿐이죠. 지극히도 냉정하고 노골적인 사랑이야기. 누구도 양보할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한 운명적인 사랑. 해품달은 바로 이런 드라마입니다. 이 지독함이, 용서없음이, 그럼에도 결국은 경쟁하고 희생시키고 쟁취하는 이 지독한 사랑이야기가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인지도 몰라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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