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슬픈 사랑이야기, 모두를 그 애절함과 먹먹함에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조각은 무엇일까요. 서로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절망과 장벽. 피와 증오로 점철된 양 집안간의 격렬한 대립, 시공간의 거리에 의해 벌어진 불가능에 가까운 소통과 만남의 어려움, 인종과 문화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 귀천의 다름이 만드는 하나 될 수 없음. 이 모든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려움이 바로 비극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파죽지세의 시청률 상승을 보여주고 있는 해를 품은 달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런 비극을 만드는 장치들을 총동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사극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들을 매우 적절하게 배치시키고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들을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어딜 감히 이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가지만, 그런 고통이 더욱 더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시청자들은 그 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없거든요. 휜과 연우의 사랑은 너무나 비극적이기에 너무나 강렬해요.
이렇게 결코 뒤처질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권력 다툼은 해품달의 갈등을 잉태시킨 시작입니다. 왕을 사이에 둔 대왕대비와 영의정을 위시한 권문 세력과, 허염과 연우 집안으로 대표되는 사림 세력의 대립은 중전 간택을 두고 벌어진 저주와 음모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두 연인의 이별을 만들어 줍니다. 작게는 양 집안의 대결, 보다 크게는 결국 어떠한 세력이 왕의 옆에서 힘을 확보하는가를 둔 추악한 힘겨루기이죠. 이들의 대립에서 관용과 용서, 화합과 어우러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저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는가만이 결과로 남는 잔혹한 파워게임이죠.
게다가 월은 주술과 약에 의한 죽음의 충격으로 기억마저 잃어 버렸습니다. 순간순간 떠오른 기억을 자신의 신기로 치부해버리며 사랑의 기억을 상실해버린 그녀는 연인을 되찾기 위한 실마리마저 너무나도 희미합니다. 이 때문에 두 연인의 사이에서 흘러버린 시간이 만든 격차마저 더더욱 절절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외형과 신분만이 변해 버린 것이 아니라, 그나마 붙잡으며 조금씩 다가가며 찾아가야 할 출발점인 과거의 기억까지도 소멸해버렸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수많은 비극의 조각들이 전혀 억지스럽지도, 과장스럽지도, 넘치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엮기면서 두 남녀 주인공 사이의 사랑을 방해하고 갈라놓고 괴롭힙니다. 시청자들은 이 무수한 장애물들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그 엄청난 장벽의 두께를 절감하며 더욱 더 이 사랑이야기에 매료되고 응원의 함성을 보내는 것이죠. 이야기의 힘, 설정의 중요함을 이 드라마처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사랑, 이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기대하며 그 구원을 바라도록 만드는 힘. 해품달의 진정한 인기 비결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어준 일등공신은 바로 훌륭한 원작과 그것을 더욱 더 애절하게 만들어준 제작진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