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슬픈 사랑이야기, 모두를 그 애절함과 먹먹함에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그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조각은 무엇일까요. 서로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절망과 장벽. 피와 증오로 점철된 양 집안간의 격렬한 대립, 시공간의 거리에 의해 벌어진 불가능에 가까운 소통과 만남의 어려움, 인종과 문화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 귀천의 다름이 만드는 하나 될 수 없음. 이 모든 넘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려움이 바로 비극을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파죽지세의 시청률 상승을 보여주고 있는 해를 품은 달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런 비극을 만드는 장치들을 총동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는 사극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들을 매우 적절하게 배치시키고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이유들을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어딜 감히 이들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점점 더 늘어만 가지만, 그런 고통이 더욱 더 강력해지면 강력해질수록 시청자들은 그 사랑을 응원할 수밖에 없거든요. 휜과 연우의 사랑은 너무나 비극적이기에 너무나 강렬해요.

과연 해품달처럼 신분의 격차를 강조한 사극이 있었을까요? 추노 속 노비의 삶이 보여주는 모멸감과 소상함도 있었지만, 해품달이 보여주는 낮고 천한 것에 대한 비하는 직접적이고 훨씬 더 감정적입니다. 사람을 눈앞에 두고 단순한 부적일 뿐이라며 도구로 취급하고 왕의 생존을 위해 대신 저주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낮은 자를 살리고 죽이는 생사여탈의 권리가 윗사람에게 있음을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그렇기에 더더욱 권력에 집착하며 노골적으로 다투고 쟁취하려 합니다. 밟아야 살아남는 추악함. 아랫것들에 대한 끊임없는 멸시와 모멸은 해품달이 그리는 조선시대의 자연스러운 풍경이에요.

이렇게 결코 뒤처질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권력 다툼은 해품달의 갈등을 잉태시킨 시작입니다. 왕을 사이에 둔 대왕대비와 영의정을 위시한 권문 세력과, 허염과 연우 집안으로 대표되는 사림 세력의 대립은 중전 간택을 두고 벌어진 저주와 음모의 소용돌이를 거치며 두 연인의 이별을 만들어 줍니다. 작게는 양 집안의 대결, 보다 크게는 결국 어떠한 세력이 왕의 옆에서 힘을 확보하는가를 둔 추악한 힘겨루기이죠. 이들의 대립에서 관용과 용서, 화합과 어우러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저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는가만이 결과로 남는 잔혹한 파워게임이죠.

그리고 이런 격돌 속으로 무속의 차별까지 끼어듭니다. 신과 접하는 존재, 필요에 따라 가장 날카로운 칼이자 제일 든든한 방패의 역할을 하는 무기. 하지만 권력자는 물론이고 일반 천민에게조차도 멸시와 모멸을 당하는 가장 낮은 신분의 무녀라는 자리는 해품달이 품고 있는 또 다른 비극의 조각입니다. 왕과는 말조차 섞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는 무녀의 자리는 두 연인 사이에 상상하기 힘든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지존인 휜과 부적인 월의 관계는 그냥 왕에게 붙어 있는 부적에 불과해요.

게다가 월은 주술과 약에 의한 죽음의 충격으로 기억마저 잃어 버렸습니다. 순간순간 떠오른 기억을 자신의 신기로 치부해버리며 사랑의 기억을 상실해버린 그녀는 연인을 되찾기 위한 실마리마저 너무나도 희미합니다. 이 때문에 두 연인의 사이에서 흘러버린 시간이 만든 격차마저 더더욱 절절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외형과 신분만이 변해 버린 것이 아니라, 그나마 붙잡으며 조금씩 다가가며 찾아가야 할 출발점인 과거의 기억까지도 소멸해버렸으니까요.

거기에 삼각관계, 그것도 핏줄이 얽히고 섞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두 왕자들은 모두 연우를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이 사랑에는 왕권이, 형제간의 우의가 겹치며 주위를 어지럽힙니다. 게다가 그 연우의 오라비를 공주가 사랑합니다. 새로운 중전은 연우를 잊지 못하는 왕을 연모하고 질투합니다. 이들의 사랑은 그 화살표가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엇갈리고 외면하고 포기하면서 파열음을 만들어내고 슬픔과 괴로움, 집착과 고통을 생산해 냅니다. 다른 모든 상황을 배제하고, 그저 이들 사이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한 갈등과 슬픔이 뿜어져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수많은 비극의 조각들이 전혀 억지스럽지도, 과장스럽지도, 넘치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엮기면서 두 남녀 주인공 사이의 사랑을 방해하고 갈라놓고 괴롭힙니다. 시청자들은 이 무수한 장애물들이 원래 있었던 것처럼 받아들이지만, 그 엄청난 장벽의 두께를 절감하며 더욱 더 이 사랑이야기에 매료되고 응원의 함성을 보내는 것이죠. 이야기의 힘, 설정의 중요함을 이 드라마처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사랑, 이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기대하며 그 구원을 바라도록 만드는 힘. 해품달의 진정한 인기 비결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어준 일등공신은 바로 훌륭한 원작과 그것을 더욱 더 애절하게 만들어준 제작진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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