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향해 몇 발자국의 걸음만을 남긴 1박2일이 가지고 있던 미덕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들과 함께했던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여행을 통해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대리 체험하는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숨겨져 있던 여러 비경들을 소개받았고, 다양한 맛거리들에 군침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평범한 이웃 동네 형, 동생, 아들 같이 다가오며 친근함을 과시하기도 했고, 지독한 복불복 게임 덕분에 터져 나오는 웃음으로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었죠. 고생과 수고를 마다 않는 출연자들과 제작진의 노력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비좁은 땅덩어리라고만 생각했던 공간을 얼마나 신나게 돌아다닐 수 있는지를 매주 차근차근 설명해주던 이 프로그램은 여행 그 자체가 가진 모든 매력들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마무리하는 골목의 바로 앞에서 나영석 PD와 1박2일은 색다른 여행을 제안합니다. 공간은 서울입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입니다. 천만 명의 사람이 살아가는, 여행이 아닌 생활의 터전입니다. 이전에도 몇 차례에 걸쳐 서울 나들이에 나서기는 했지만, 그 방향은 사뭇 달랐던 것이죠. 이 익숙한 풍경을 선택하면서 그들은 이전처럼 사람들과 어우러지면서 우리네 삶의 틈새를 들여다보지도,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의외의 발견을 외치며 특이한 명소를 재개발하지도 않았습니다. 경복궁. 학교에서의 교육을 통해서도, 요즘은 대세가 되어버린 장르인 사극을 통해서도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한 곳으로 우리를 이끌었던 곳이죠.

포인트는 시간이었습니다. 1박2일이 떠난 여행은 공간이 아닌 시간으로 떠난 되새김질이었던 것이죠. 유홍준이라는 걸출한 타임머신과 함께 이 5명의 여행자들은 경복궁이라는 친숙하지만 사실은 잘 모르고 있던 것들에 현미경을 들이댑니다. 이전에 그와 함께했던 시간 여행이 경주라는 나름의 떠남과 함께했던 시간과 공간을 포함했던 여행이었다면, 경복궁을 들여다 본 이번 주 한국의 미를 찾아 떠난 시간은 보다 집중적으로 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선조가 남긴 것은 무엇이었는지, 우리의 감성 속에 공유되어야 했던, 하지만 지금은 망각하거나 폄하하고 있는 가치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바라보자고 말을 건넨 것이죠.

여행의 인트로를 장식했던 소개 영상처럼 조금은 장황하고 진부한 나라사랑 강조가 살짝 들어있기는 했습니다. 다큐와 진배없는 유홍준 교수의 설명이 흐름을 조금 방해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무식한 다섯 형제들의 좌충우돌 여행에 갑자기 격조와 지식이 넘쳐흐르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니 어떤 이에겐 약간은 낯설었을 수도 있겠죠. 잔뜩 웃을 준비를 하며 주말 오후의 예능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조그만 웃음 장치들을 제외하고는 유물들을 정면에 배치시켰으니 가끔은 교양 프로그램을 보는 것만 같은 인상을 받을 수도 있는 특집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나 둘씩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에 쉽사리 시도하기 힘든 대형사고였죠.

경복궁의 넓은 경내를 돌아다니며 곳곳에 숨겨진 것들을 찾아다니는 이들의 걸음걸음마다 기쁘게 같이 답사 순례를 떠날 수 있도록 작은 미션들을 숨겨주고, 너무 진중하지 않도록, 너무 가볍지도 않도록 호흡을 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잔재주들을 과하게 부리는 것보다는 과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곳들을 설명하고자 했던 1박2일의 우직한 정면돌파는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중요한 가치, 진정성과 함께 그 힘을 획득합니다. 나PD와 1박2일의 사람들은 그저 알려주고,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줄 수 있는 감동과 발견의 기쁨의 힘을 믿고 있었다는 거죠.

이 특집을 통해 이제 1박2일은 대한민국에 속한 어떠한 공간도 어떠한 시간도 시청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렀음을 자신감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시간과 역량, 경험과 소통의 방식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집대성한 초대형 선물세트,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치를 뽐내는 화려한 이별 인사, 저에게 이번 경복궁 답사의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런 쿨한 이별 앞에서 어떤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요. 이 다음의 여행, 그 이상을 뛰어 넘는 무언가를 바라게 하면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힘. 1박2일만의 이별 방식은 바로 이런 것이었나 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담아내고자 했던 나 PD의 야심이 놀랍고, 그를 비롯한 제작진의 역량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들은 정말 멋진 여행꾼들이에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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