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이 시즌1 종영을 앞두고 어쩌면 가장 가깝고도 먼 서울 경복궁을 찾았다. 1박2일이라면 당연히 서울을 벗어나야 할 거라는 생각의 작은 반전이었다. 이동하던 차 안에서 가까운 곳에 아름다움이 있다며 반 1박2일적 발언을 한 유홍준 교수의 말도 일리가 있었지만, 가끔씩 서울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시청자에게서 찾을 수 있다. 서울사람만 보는 프로그램이 아닌 이상 서울은 서울 외 시청자에게는 아주 먼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는 지난 경주 여행에 이어 이번 경복궁 답사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했다. 문화재를 감상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경주 남산에서 부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했듯이 궁궐 역시도 그 사용자의 눈으로 바라볼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1박2일에 적용하면 시청자의 눈으로 여행지를 고른다면 서울을 빠뜨릴 수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1박2일의 경복궁 답사는 역사 좀 안다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을 것이다. 경복국의 역사적 기록과 의의에 대해서는 줄줄이 꿰고 있을지는 몰라도 광화문을 지나 근정문을 향하는 중간에 위치한 4마리 천록(하늘사슴) 중 하나가 혀를 내밀고 메롱~ 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본 이는 드물 것이다. 짧은 시간에 그 차이를 파악하고 발견한 이승기의 매서운 관찰력도 놀랍지만 궁궐에 숨겨진 흥미로운 파격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 이어졌다. 다리를 지나 근정문을 향하면서 이승기가 현판을 읽으면서 근정(勤政)의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한자는 대단히 기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정도로 이승기에 대해서 감탄한다고 하면 살짝 실례가 될 뿐이다. 중요한 사실은 칭찬하는 유 교수에 말에 으쓱해진 이승기의 말이었다. 한자 4급 자격증이 있다는 내용이다.

어떤 이유로 바쁜 스타가 한자 4급 자격증을 따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다섯 명의 멤버 중 가장 어린 이승기가 나머지 멤버들을 부끄럽게 한 것은 한자실력만이 아니었다. 경복궁으로 이동하던 중 이승기는 자랑스럽게 조선왕조 시호를 줄줄이 외웠다. 누구라도 중고등학교 시절 암기했을 내용이다. 타고난 두뇌가 명석한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을 정도면 때때로 그 내용을 되새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능이 방송 콘텐츠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알게 된 사실들은 연예인들이 생각보다 무식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연예인들이 학자들처럼 지식을 높이 쌓아야 한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한국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소양은 갖추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역사에 대한 상식정도는 갖고 사는 것은 연예인 이전에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태정태세를 외운다고 꼭 역사에 박식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작은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이승기를 칭찬하게 된다.

또한 뿌리깊은 나무가 주었던 감동의 여운이 여전한 지금 한자에 대해서 알라고 하기는 다소 어색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상용하는 말은 한자를 알아야 그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경복궁에 가더라도 여러 전각의 이름을 보고도 뜻을 모른다면 제대로 문화재 답사를 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성인들에게 근정전의 뜻, 교태전의 뜻을 일일이 알려준다는 것도 서로 간에 쑥스러운 일이다. 이승기에게는 그런 쑥스러운 일은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배우들이 장단음을 구분하지 못해 대사가 어색한 경우는 흔히 발견된다. 장단음은 바른 언어사용을 통해서 저절로 습득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단어의 정확한 뜻을 아는 것이 먼저다. 대사 속 단어의 뜻도 모르는데 거기다 장단음을 구분하라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인 것이다. 이승기는 비록 가수로 출발했지만 드라마, 예능을 모두 점령한 보기 드문 스타이다. 그 성공 뒤에 한자 자격을 따고, 태정태세를 외우는 작은 노력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기획사도 연예인에게 역사와 한자를 공부하라고 주문하지는 않을 것이다. 성형이나 혹은 몸매 관리하기도 버거울 지경일 것이다. 한국 연예인들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이승기 만큼의 지식이 아니라 이승기가 느끼는 필요를 닮으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승기가 갖는 필요는 연예인의 기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지적 인격체로서의 자존심이 아닐까 싶기 때문이다. 참 봐도 봐도 흐뭇한 청년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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