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범죄와의 전쟁은 우선 최민식과 하정우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솔깃한 영화다. 이런 영화는 개봉 첫날을 노리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명불허전 처절한 혹은 잔혹한 연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최민식-하정우 라인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완벽하지 못했던 부산 사투리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연기와 카리스마로 덮어줄 수 있을 정도의 흠이었다.

우선 영화는 실제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역대 범죄와의 전쟁은 진짜 범죄의 심각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정권이 국민의 시선 돌리기를 위한 이벤트임을 완곡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 전제가 충분히 전달되어 끝까지 메시지로 남기 위한 부연 설명이 없었던 것은 아쉽지만 이 영화는 정치보다는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일제 단속 속에서 벌어지는 진성 건달과 반달(건달도 아니고 일반인도 아닌 존재)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 초점을 맞췄다.

그저 수입업자들에게 삥이나 뜯던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최익현이 건달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헌데 최익현은 유달리 족보를 따지는 사람이다. 당연히 족보 따지기에 일가견이 있다. 그런 남다른 실력으로 세관을 떠난 후 생활의 터전을 잡게 된다. 주먹이라고는 써본 적도 없이 졸지에 조폭들 사이에 행세를 하게 된 것이다.

주먹들 속에 머리 쓰는 사람이 없다는 데서 최익현의 역할은 나름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그렇지만 건달들 사이에 있지만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인 반달인 것이다. 최익현에게 그런 수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어쨌든 탁월한 솜씨로 최형배 조직의 보스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누구보다 족보를 따지는 최익현이 정작 자신에게 결여된 족보의 흠결을 알지 못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영화 대부나 친구가 건달들에게 교과서처럼 복습의 대상이 되듯이 범죄와의 전쟁은 교과서까지는 아니어도 참고서 정도는 될 수 있는 영화다. 건달세계에 대한 선입견 없는 사실 문법으로 그려간 이 영화에서 감독은 관찰자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거리두기가 다소 비겁하게 느껴지는 대목도 없지 않다. 건달과 검찰이라는 너무 한정적 공간에서 들여다본 탓에 범죄와의 전쟁 그 자체의 진실에 대한 진술이 부족한 것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