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형식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재미는 두 개의 큰 기둥에서 뿜어져 나옵니다. 심사받는 사람. 그리고 심사하는 사람.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나와 대중 앞에 소개받는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이들의 기량이 점차 향상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매력에 빠지고 자연스럽게 편을 가르며 응원하는 동일화의 과정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핵심입니다. 이들 심사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다양한 개성과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 재야의 고수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대회로 어필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 것은 당연해요.

하지만 오디션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심사하는 사람입니다. 전문가의 권위를 부여받아 재능들을 평가하는 이들은 아직 출발점에도 서지 못한 새파란 후배들의 성장을 촉진하고 적절한 캐릭터를 부여하며 시청자들이 보다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연결점을 확보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맡습니다. 그리도 동시에 알곡과 찌꺼기를 자신들의 기준으로 선정하여 과감하게 제거해버리면서 어떤 때에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때로는 반발을 한 몸에 받으며 악역을 수행하기도 하죠. 그들의 평가 한 마디, 한 마디와 다음 단계로의 선발 여부야말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긴장감을 최고로 고조시키는 장치입니다. 누구를 선발하느냐의 여부와 함께, 누구에게 그 선발을 맡길 것인가가 프로그램의 성격을 완전하게 결정합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해요.

K팝스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역시도 바로 이 심사하는 사람들의 개성에 있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단순히 심사위원 개인을 넘어서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아이돌 기획사들이 가지는 장점의 일면을 이들 심사위원들을 통해서 살짝 엿볼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돌들이 과연 어떤 과정들을 걸쳐 훈련받아 왔고, 이런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단련을 받은 이후 참가자들이 얼마만큼의 성장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각 소속사사간의 묘한 경쟁을 부추기며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도하는 것이죠. 단 2주의 시간 동안 부리는 거대 기획사의 마법을 그들의 무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차이가 있었을까요? SM의 보아는 사실상 이번 K팝스타의 가장 큰 수혜자입니다. 그저 일본 한류의 선구자 정도로 인식되며 후배 아이돌들 사이에 끼기에는 관록이 있고, 한참 위의 선배들의 반열에 오르기에는 여전히 현역인 그녀의 애매한 포지션을 자연스럽게 신뢰할만한 아티스트로 자리잡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녀와 SM은 이런 두 경계 사이에 있는 보아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 훈련 과정을 보여줍니다. 회사의 전문 인력들을 활용하며 기술적인 부분을 커버하고, 보아는 조금 더 친근하게 후보자들과 대화와 상담을 맡으며 심리적인 자신감을 배가시키는 부분에 집중했거든요. 빠방한 지원을 받는 기획사의 따뜻한 큰언니. 역할 배분에 있어서도, 효과에 있어서도 보아의 전략은 매우 탁월했습니다.

반면 JYP의 박진영은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가장 강력하게 후보자들을 이끕니다. 스스로의 기준점을 명확하게 세우고 이들이 합격할 수 있는 최단거리의 길로 달릴 수 있도록 채찍질하죠. 그 와중에 참가자들의 의견이나 협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라오면 분명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박진영의 자신감과 전략은 다른 어떤 심사위원들보다 당당하고 확고합니다. 때문에 그를 쫒아올 수 있는 사람은 성공, 그렇지 못하면 실패라는 잔인하지만 명확한 구분이 가능한 것이죠. 참가자들에게 박진영의 계획은 절대적이에요.

하지만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조련방식은 바로 YG 양현석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본질이 바로 자신들이 키운 가수들의 또 다른 경쟁자를 만드는 과정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K팝스타는 거대 기획사들의 아이돌 발탁 오디션을 합동으로 방송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일종의 변형이니까요. 그렇기에 당연히 이들의 재능은 회사 식구들에게 새로운 위협이 될 수밖에 없고, 엄청난 도전과 동기부여가 되어야만 합니다. 양현석은 바로 이 점. 참가자들은 참가자대로, YG의 식구들은 또 그 나름대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일거양득의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평가 과정에서 그들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한 것이죠.

이미쉘을 소개하면서 툭툭 의도적으로 박봄을 자극합니다. 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지를 언급하고, 어떤 개성의 소유자들인지 소개해줍니다. 참가자들이 평가에 나설 때마다 빅뱅과 2NE1의 멤버들은 사장님이 틈만 나면 칭찬을 했다거나 어떤 부분에 대해 평가했었다며 사장님의 관심에 대해 말해 줍니다. 싸이나 타블로 같은 선배 뮤지션들도 분명 있지만 굳이 같은 또래의 아이돌 경쟁자들을 심사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세우면서 이들 양자 사이의 경쟁심을 묘하게 부추깁니다. 한쪽은 언젠간 저들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다른 한쪽은 지금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경계와 위협을 느낄 수 있도록. 이것이야말로 일타이피, 꿩 먹고 알 먹는 사장님의 조련방식이었어요.

재미있습니다. 단순히 참가자들 간의 경쟁이 아닌 소속사들 사이의 묘한 신경전이 오고 가는 것도 흥미로웠고, 분명하게 성장한 이들의 노력과 분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록의 선배들이 꾸미는 나가수의 무대를 압도할 수 있는 매력이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즐거움 속에 이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느꼈던 씁쓸함과 무서움이 공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실망스럽지만 꼭 존재해야 하는 소중함이 있는 나가수. 흥미롭고 매혹적이지만 불편하고 무서운 K팝스타. 일요일 오후 동시간대의 두 경쟁자는 이렇게 다른 가치와 매력을 가지고 시청자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만 본다면 승자는 단연 K팝스타입니다. 어쩌면 이런 승리가 현재 가요계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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