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불가사의를 안고 있다면 인도는 아직도 신분제라는 부조리를 안고 있는 나라다. 신분제의 폐해는 당연히 최하층 계급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에서 벌어진다. 인도에는 우리나라 천민보다 더 심한 푸대접을 받아온 계층이 있다. 바로 불가촉천민이라 해서 접촉하는 것조차 꺼리는 대상으로 인간이지만 실제로는 가축 이하의 취급을 받는 것이다. 최근 법률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금지했다고는 하지만 수천 년 이어온 오랜 관습은 아직도 그들을 가난과 절망에 가둬둘 뿐이다.

그런 인도 불가촉천민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인도 둥게스와리 아자드비가 마을은 최근 인도의 발전상과는 딴판으로 흔한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오지이다. 기본적으로 전기가 없으니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티비, 전화 등 흔하디흔한 문명의 이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네다. 아이들은 날카로운 채석장의 돌투성이 언덕을 미끄럼틀 삼아 뛰고 구른다.

세상의 극한직업은 모두 인도에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환경이니 불가촉천민이라고 특별한 정부의 대책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최소한 인도의 다른 지역 빈민들에게는 최소한의 기회라도 주어지지만 이들에게는 그 기회조차 막혔다는 것이 다르며, 그것이 이들을 누천년 이어온 차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인 것이다.

바로 그렇게 희망도 없고, 기획도 꽉 막힌 아자드비가에 19년 전 학교가 하나 세워졌다. 학비는 고사하고 수업을 하기 위해서는 점심 한 끼라도 학교에서 제공할 수밖에 없는 절대빈곤의 마을에서 조금씩 희망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 것이고, 그 싹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기적이 되고 있다. 그 기적의 현장을 SBS스페셜이 찾아갔다. 29일 방영된 <맨발의 아이들, 선생님 되다>는 인도 불가촉천민들의 기적을 소개했다.

학교가 세워지기 전 이 마을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구걸뿐이었다. 할 수 있다는 말 대신에 해서는 안 되는 것들만 주어진 이 아이들에게 학교는 변화의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희망이 금지된 이들에게 해방을 꿈꾸게 한 것은 바로 학교였고, 교육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은 멈추지 않고 다시 그들에게 피드백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은 기적이었다.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는 인류의 마지막 인권혁명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교 밖에서는 아직도 금지돼 있는 것들이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자타 아카데미에는 불가촉천민 아이들만 학교에 다니는 것은 아니다. 인근 양민 마을의 학생들도 많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는 천민과 양민의 구분 없이 똑같이 생활하고 있다. 이 작은 변화가 가져올 인도의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기적을 기대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는 수자타 아카데미의 독특한 선생님 때문이다.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자전거로 20분쯤 거리에 있는 분교에는 특별한 선생님들이 초등학교 저학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특별한 선생님들은 다름 아닌 수자타 아카데미의 중학생들이다. 광범위한 지역에 학교와 선생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고, 정식 교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마치 우리의 품앗이처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수자타 아카데미의 아이들은 아주 일찍부터 자기가 받은 교육과 기회를 자신보다 조금 어린 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배우고 있다.

이 나눔과 배움을 궁여지책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 필즉통은 어느덧 전통이 되어 천민지역 아이들에게 존경이란 단어를 알게 한 점은 법과 행정도 하지 못한 오랜 신분제의 구습을 깨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중학생 선생님들이 가르치면서 얻는 자각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보다 어린 동생들을 가르치면서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것, 천민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혁명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원조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인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기적은 단순한 원조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고작 중학교 1학년생이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것처럼 이 지역 사람들은 스스로를 돕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이 학교가 선 부지가 이 불가촉천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싸워서 최초로 소유한 땅을 기부한 것이라는 점이 이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더 나아가 인도의 버젓한 시민으로 번영을 누릴 충분한 자격을 가졌음을 말없이 증명하는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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