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하다. 그리고 그럴 줄 알았다. 하이킥3 짧은 다리의 역습 역시도 못된 버릇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왜 지금까지 좋아했었는지, 매일 이 시트콤의 다음 내용을 기다렸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무시당한 기분을 다시 느꼈거든요. 속을 줄 알고, 그런 전개와 에피소드가 꼭 다시 반복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알고도 당하는 허탈함. 하이킥의 이번 에피소드는 그런 불편함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김병욱 PD를 비롯한 제작자들에게 한번 따져 묻고 싶을 정도의 내용이었어요.
박하선과 서지석의 엇갈린 러브라인은 결국은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루저의 삶에 애착을 보여주고, 의외의 조합을 즐기는 김병욱 PD라고 해도 박하선과 고영욱의 그림은 그리 오래갈 것처럼 보이지 않았거든요. 어떻게 꼬여버린 인연을 다시 풀어 가느냐. 근래 하이킥이 집중했던 이야기 선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될듯하면서도 되지 않고, 이어질듯 하다가 엇갈려버리는 이 두 선남선녀의 관계 회복이 이 시트콤의 메인 스토리가 되어 버렸으니까요.
그리고 결국 이 두 사람의 키스신과 박하선의 눈물로 결국 해피엔딩으로(물론 이조차도 좋은 끝을 바라지 않는 제작진의 취향 상 잠정적인 결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이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감동의 키스신으로 마무리된 에피소드는 앞으로 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이루어질까 어떨까 하는 조바심이 아니라 두 매력적인 캐릭터 사이에서 벌어지는 알콩달콩 러브스토리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부풀려 놓았거든요. 이제 이야기의 초점을 두 연인 이외의 다른 등장인물들에게 집중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서지석이 이별을 뒤로하고 공항을 나서며 어이없는 자동차 사고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보며 그나마 아쉽지만 납득하던 마음마저 불쾌함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이 모든 상황이 또 다시 꿈이라고 돌려버릴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용종 수술에서 깨어나 서지석이 박하선을 품에 안으며 언제나 곁에 있을 것이라는 마음 고백을 연발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애틋함이 아닌 짜증이었습니다. 그들의 절절함을 표현하는 방식이 꼭 이런 어이없는 반전이어야 했는지 전혀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짧은 시간에 캐릭터들을 확고하게 정립시키고, 그들 간의 관계를 절묘하게 이어붙이는 능력. 남녀 간의 감정을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서로간의 사랑을 응원하도록 부추기는 힘. 우리 안의 문제를 바라볼 것을 요청하고 짐짓 비꼬기도 힘을 내라며 격려하기도 하는 시선. 김병욱 PD를 비롯한 하이킥 시리즈 제작진이 가진 미덕은 독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들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마음대로 농락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것처럼 갑자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런 불쾌한 에피소드는 작품에 대한 오만정을 다 떨어뜨립니다. 그렇게 기대를 받던 커플의 탄생이 이렇게 짜증나는 상황에서 결정되다니, 마치 엉망진창의 막장드라마를 본 것 같은 씁쓸함만 남는 반전이었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