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직업은 무엇일까요? 임기를 1년 남기고 레임덕에 허덕이는 대통령? 길을 걷다가도 모르는 아줌마에게 등을 얻어맞는다는 막장 드라마의 악역 배우? 편리한 대로 법의 잣대를 맘대로 운용하는 똑똑하신 엘리트들? 욕먹어야 하는 사람도, 욕밖에 안 나오는 상황도 많은 요즘이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최대 안티 부대를 몰고 다니는 직업군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가장 억울한 손가락질을 받는 직업이죠.

황새 황선홍의 아버지는 엄청난 욕을 얻어먹는 아들 때문인지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박주영은 실력과 실적과는 상관없는 종교 세레머니 때문에 무엇을 해도 욕을 먹기 쉬운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그나마 월드컵의 영웅 안정환 같은 극히 일부의 예외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 고독한 골잡이들은 단 한 번의 실수, 한 경기에서의 부진에도 지옥까지 떨어지는 듯한 비난과 손가락질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 골 결정력 부족이라는 팀 전체의, 혹은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한 개인의 책임으로 매도하는 손쉬운 공격 대상인 셈이죠. 영광의 화려함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보다는 이 이상의 어두움을 감당해야 하는 전 국민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동국이란 이름은 이런 애증의 상징입니다. 그의 커리어는 엄청난 공격을 온몸으로 감내하며 뛰어온 한국 국가대표 골잡이의 전형적인 삶이었고 팬들의 사랑보다는 원망과 분노, 비난과 질책의 대상이었던 적이 더 많았습니다. 독일과 영국에서의 해외 진출 실패,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입은 부상, 몇몇 경기에서의 저조한 활약,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던 명분 살리기 식의 등용이 이어지며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욕을 먹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국내용이라는, 잘해봐야 아시아 예선에서나 쓸 만하다는 비아냥거림으로 한 선수의 능력은 물론이고 인격까지도 난도질당했던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 이면에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은 좀처럼 주목하지 않습니다. 고작해야 20대 초반의 성장기인 선수를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청소년, 올림픽, 국가대표를 모두 소화할 것을 강요하며 몸이 망가질 정도로 혹사시킨 협회의 무책임함. 부상으로 절룩거리던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도 아시안컵을 호령하며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의 명성을 떨쳤던 위용. 그런 몸으로 도전했어야 했던 독일 진출의 배경. 여전히 그 당시의 과부하 때문에 부상의 위험을 달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헌신. 국내 리그를 호령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영국으로 향했던 용기. 그리고 다시 돌아와 이젠 노장의 나이에도 팀의 중심으로 우승컵을 차지한 성과는 모두 부인하거나 모른척합니다. 그저 히딩크가 외면했었고, 월드컵 본선 때 보여준 것이 없고, 해외에선 벤치만 달구다 왔다는 몇몇 사실만을 되풀이하며 손가락질 할 뿐이었죠.

웃음의 에이스는 알고 보면 허당인 미대형이었습니다. 든 만능인 쉐프 이선균도 멋있었습니다. 차가운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친근하기 그지없던 장우혁의 소탈함도 빛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가 1박2일 절친 특집에서 가장 반가웠던 사람은 이 상처투성이의 스트라이커였습니다. 필드 위에서의, 혹은 인터넷 댓글이나 술자리 농담거리에 등장하는 이동국이 아니라 그저 인간으로서의,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떳떳한 30대 대한민국 남자로서의 그를 만난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겁고 기쁜 일이었거든요. 침착하면서도 성실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책임지는 인간 이동국의 모습은 그간 하나의 상징, 허상, 화풀이 대상이었던 그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만약 1박2일이 아니었다면 이 진중하고 소심한 남자의 풋풋함을 이렇게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개인 광고판이 되기 십상인 평범한 토크쇼에서의 구구절절한 자기 설명의 몇 마디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3주간의 여행에서 전달해 주었거든요. 거침없이 물에 뛰어 들면서도 변명 한 마디 하지 않고, 그간의 패배를 맘속에 담아 두면서 족구 게임 하나에도 긴장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초대해준 고마움을 담아 선물을 준비하고, 전 국민이 자신을 욕했었던 개인에겐 지옥 같았을 그 시절을 넓은 아량으로 품어줍니다. 그를 심심풀이삼아 비난했던 모든 이들에게 이동국이란 남자의 맨얼굴을 살짝 소개해준 3주. 그래서 자신에게 향했던 손가락질이 머쓱해지게 만들었던 활약이었습니다. 오랜 안티들에게 가한 통쾌하고 멋진 그만의 복수극이었어요.

그를 아끼며 부활을 인도해준 은사 최강희 감독이 여러 잡음 끝에 국가대표 감독이 되면서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태극마크를 다시 달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쩜 우리는 다시 월드컵 예선에서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라이언킹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부진한 경기, 어떤 실수 때문에 또 다시 욕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의 영역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왔고, 그 역시도 다치고 상처받는 감정을 가진 너무나도 평범하고 성실한 남자입니다. 너무나 많은 비난과 상처에도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우리의 국가대표입니다. 1박2일은 이 단순하지만 잊기 쉬운 소중한 사실을 그와 함께한 여행을 통해 차분하게 알려 주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는 1박2일은 마지막까지 너무나도 소중한 선물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직도 전 왜 이렇게 멋진 프로그램이 막을 내려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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