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도 불운도 그 결과가 다르다 해도 모두가 의도하지 않은 우연에 의한 우발적인 사건입니다. 행운도 불운도 본래는 다른 생각으로 출발했던 동기들, 아무런 예상도 하지 못한 상태로 발생한 변수, 때로는 완벽하게 동일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과 배경이 어떠하던지 간에 그런 여러 가지 사건들이 전혀 짐작하지도 못했던 조합으로 이루어질 때 완전히 다른 결과들을 만들어내거든요. 그리고 그런 우연히 나쁜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겹쳐진다면 사람들은 그런 불운이 단순한 운명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됩니다. 그 안에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믿고, 해명과 해결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나는 가수다가 조작방송으로 의심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어요.
매주 화제를 만들어내며 엄청난 인지도를 확보한 까닭에 착각하기 쉽지만, 지금의 나가수는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다듬어진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주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변화를 궁리하고, 조금씩 개선해나가기 위해 손을 보는 1년차 방송 새내기이죠. 현제 이 프로그램이 취하고 있는 여러 방식들은 제작진들의 고심 끝에 고안된 것들입니다.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어지는 평가 위원들의 코멘트, 밋밋했던 중간 평가를 살리기 위한 개그맨 매니저들의 번외 경연, 다음 라운드 출연자들의 참가 예고와 공연 방문 같은 요소들은 이후에 추가된 요소들입니다. 메인 디쉬인 공연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기 위한 제작진 나름의 노력인 셈이죠.
물론 논리적으로 분명 조작방송을 의심해볼만한 요소들이 많은 타당한 지적입니다. 옥주현이 출연하자마자 신입 도전자를 가장 유리한 7번에 고정 배치시켰다고 많은 비난을 받았던 우대 정책은 이번 라운드에서 사라졌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난번 신입생인 박완규 때부터이지만 그는 스스로 그 권리를 포기했죠.) 그리고 그 마지막 자리를 적우가 차지하면서 생존 안정권인 1라운드 2위를 기록했습니다. 자문위원 중 유독 적우에게 냉정한 평가를 했던 김태훈은 이번 경연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 대신 적우의 우호적인 평가를 했고 실제로도 팬을 자처한다는 김현철의 발언 비중이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별다른 친분이 없어 적우 혼자만 멀뚱하게 고립되었던 최종 순위 발표는 해당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한 사람씩 빠지는 것으로 바뀌었고, 감사와 소감을 말할 수 있는 기회도 2위인 적우에게밖에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여러 변화들의 덕을 제일 많이 본 사람이 적우라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어요.
탈락자를 선별하는 서바이벌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선택의 키는 시청자가 아닌 제한적인 청중 평가단에게만 허락됩니다. 출연자의 선발 역시도 대중의 선호나 요구의 반영이 제한적이죠. 시청자들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불통의 구조에선 매주 출연 가수나 경연의 순위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매 방송 이후 논란이 쏟아지며 가뜩이나 경쟁 콘셉트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출연 예비군인 가수들은 더더욱 이 프로그램 출연 결정을 꺼리고 있고, 좁아지고 있는 인력풀은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해 점점 더 무대의 질적 하락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