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분기에 방영된 SBS 뿌리깊은 나무는 4분기는 물론 2011년 최고의 드라마였다. 한석규가 대상 소감으로 말한 것처럼 대본, 연기 그리고 연출까지 3박자를 고루 갖춘 명품드라마였다. 그래서 새해에 동시에 출발하는 3사 드라마 중에서 부탁해요 캡틴은 더 기대를 갖게 했었다. 한국에서 드문 항공 드라마라는 점에서 호기심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을 넘어 분노를 금치 못할 무리수에 신종 막장 드라마의 탄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항공분야는 전문분야이면서 동시에 일반인에게 대부분이 가려진 비밀스러운 분야이다. 그나마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접촉이라도 하지만 조종사는 공항에서 겉모습을 보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그래서 조종사란 직업을 다른 드라마라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드라마 첫 회를 통해서 드러난 것은 그 호기심을 채워주기는커녕 개연성 없는 사건, 사고로 일관해 방송사고나 다름없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시청자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요법이 첫 회에 필요한 것은 이해하지만 해도 너무 한 과도설정은 전혀 제어되지 않았다. 구혜선의 부모인 이휘향과 김창완이 줄초상 나는 과정은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러울 정도로 무리수 자체였다. 대략의 스토리는 감을 잡을 수 있다. 기장 지진희는 부기장 시절 실수로 인해 만삭의 임산부를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그 일로 인해 당시 기장이었던 김창완마저 교통사고로 줄초상이 나게 됐다. 그 부부의 딸이 구혜선인데, 7년 후 항공사에서 기장과 부기장으로 서로를 모른 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 부기장 구혜선이 아주 엉망진창이다. 비행기 이륙 준비를 위한 버튼도 몰라서 객실 전원을 끄는가 하면, 관제사에게 괜한 분노를 쏟아 붓는다. 급기야 착륙 후 승객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관제사 멱살을 흔들기까지 한다. 이런 다혈질에다가 실수투성이의 구혜선을 기장 지진희는 경멸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지만 결국 과거의 일들을 알게 되면서 죄책감, 보호본능, 사랑 등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비행기 조종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실제로 부기장과 관제사가 그렇게 핏대를 올리며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그다지 싸울 일도 아니었는데 구혜선을 문제아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억지로 몰아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또한 관제사가 관제탑 데스트에 커피를 올려놓았다가 쏟아버리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렸다. 있을 법한 일이 아니라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은 일이 분명하다. 설혹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관제탑에는 그런 상황을 대비해 포터블 무전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장이 라이트를 들고 관제탑을 벗어나는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부탁해요 캡틴은 개연성 없는 상황들을 억지하면서 조종사와 관제사 모두를 단번에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이토록 드라마 분위기를 다 망쳐버린 원흉은 햠량 미달의 대본이다. 전문분야 드라마는 사극의 고증보다 더 철저한 공부가 필요하다. 그것은 작가만이 아니라 연출 역시도 마찬가지다. 대본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상황의 개연성을 갖추는 것이 연출이 할 일이다. 그러나 부탁해요 캡틴 1회에서 보인 작가의 무리수를 지적하고, 개선하지 못한 연출의 무지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첫 회의 과도한 설정과 무리수는 시청자 관심을 끌려는 과한 의욕을 다스리지 못한 실수일 수도 있다. 또한 조종사 스토리가 좀 더 지켜볼 가치도 있다는 점에서 미련도 남는다. 수백 명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조종사란 직업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