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가 먼 동쪽 제국의 황제인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방문한 여러 도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마로치아. 쥐들의 도시기도 하고, 제비들의 도시이기도 한 그런 양면성을 지닌 이상한 도시다. 지금의 “마로치아는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이고 게걸스러운 쥐의 입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서로 빼앗아 먹으려고 하는 쥐 떼들처럼, 답답한 지하도로 달려가는 도시”다. 그런데 쥐의 세기가 끝나고 제비들의 세기가 시작된다. “잔인하고 비열한 쥐들의 지배 아래, 자주 모습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 속에서 이미 제비들의 도약이 준비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마로치아에 호시절이 다시 오는 모양이다. 폴로는 칸에게 저 신비의 도시 마로치아의 변화상을 담담하게 보고한다.

이탈로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쓴 마로치아 이야기는 놀랍게도 소설 속 가상의 도시 묘사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실의 나라 한국 상황에 환상적으로 어울린다. 이 땅 바로 지금의 지경을 절묘하게 빼닮았다. 잔인하고 비열한 쥐들의 지배가 빠르게 막 내리고 있다. 약탈적 권력의 지배에 지친, 삶을 불안케 만드는 광폭한 권력을 거부한,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을 통해서다. 민주를 원하는 주민들의 투쟁을 통해서다. 사회를 보호하고 정치를 실천코자 하는 인·민 대중들의 직접적이고 집합적인 행동을 통해서다. 분명하게, 영원할 것 같던 겨울공화국도 이제 끝이 보인다. 정권 초기 가히 파시즘적인 수준에 이르렀던 으스스한 폭력의 호기도, 말기에 이르러 크게 시들해졌다.

부정의 고발이 시작되었고, 세력의 와해가 거의 폭발 수준이다. 비열한 쥐 권력의 퇴락. 금방이라도 등 따스한 봄날이 올 것만 같다. 강남 갔던 제비들의 귀환과 이들의 날쌘 도약이 그 결정적 신호다. 그 전에는 좀 채 모습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일제히 날고뛰기 시작했다. 기필코 정권을 되찾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반드시 정권을 바꾸겠다며 결기를 다진다. 지난 정권 때 지겹도록 보았던 면상을 드러내면서, 흩어졌던 선들을 다시 맺고, 비어있던 포인트들을 새로 찍는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왁자지껄 패를 모은다. 그럴듯한 이름으로 세를 과시하고, 필요한 것들을 잽싸게 접수하며, 과감하게 판을 새로 짜려든다. 그 모양새는 진짜 ‘제비들의 도약’이라는 말로 가장 적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 박원순 서울시장 등 민주통합당 지도부가 18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신임지도부 및 민주진보통합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엄혹한 겨울공화국을 어디선가 따뜻하게 보내고 돌아오는, 저 제비 군의 힘찬 도약을 보시게! 강남에서 돌아 온 저 제비 양의 매끈한 자태도 보시라! 맘껏 뽐내는 제비 떼의 잽싼 날개 짓은 가히 탄복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봄의 전령사이기에 행동거지가 딱 알맞다. 한결 같은 가벼움으로 고공을 가르며, 요리저리 먹잇감을 잘도 찾아낸다. 처마 밑에 안전하게 둥지를 다시 틀고, 짹짹거리는 식구들의 입속을 챙긴다. 사람들은 다시 찾아준 제비들에게 환호를 보내고, 이들이 까부는 희망의 노래에서 감동을 얻는다. 혹시 흥부에게와 같은 복 씨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그 이전 체험에 비춰 망상에 불과한, 그런 헛된 기대를 품기도 한다. 겨울 추위에 굳은 몸을 나른하게 풀어 줄, 벅찬 정권교체의 봄날을 기원한다.

아뿔싸. 봄을 가져다준 게 제비들이라는 망상을 갖는다. 그 전과 다른 새 봄날이, 저 재주 좋은 제비 때문에 가능하리라는 착각에 빠진다. 어찌할까. 그 터무니없는 환상은 훨씬 더 깊은 환멸만 가져다 줄 뿐인데. 끝날 수 없는 재민주화의 봄은 결코 처마 밑으로 다시 날아드는 저 제비들이 만든 게 결코 아닌데. 저리 신나게 비약하는 무리들이 언제 신자유주의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한 적이 있는가? 한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책임지려한 바 없고, 이전의 무능과 배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바 없지 않은가? 그런 집단이 다시 봄날의 도래를 노래하면서 저리 떼로 설쳐대는 것을 보면서, 마치 자신이 진보의 대표이고 자유의 화신인양 목청 높이는 것을 보면서, 제비라는 고상한 표현도 어쩜 과한 게 아닐까?

쥐의 세기가 끝나는 건 좋은 일이나, 제비의 세기로 되돌아갈지 모른다는 불안이 남는다. 자본의 지배는 강화되고, 신자유주의 공포는 지속되며, 그래서 삶의 고난은 더욱 심각해진다. 제비처럼 날지 못하는 땅위 잡인들의 세상이 그러할 테다. 그렇기에 제비들이 전하는 봄날 소식으로 들뜰 수만은 없는 겨울공화국의 끝자락이다. 자연의 순리, 역사의 진보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반복. 칼비노에게 물어보자. 그래서 마로치아의 미래는 어찌 되었는가? 오, 위대한 여행가 폴로씨. 제비들의 세기가 끝나니 다시 끔찍한 쥐의 세기였던가? 쥐들의 지배로 돌아갔나? 역사란 그렇게 쥐와 제비의 반복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쥐들이 바삐 구멍을 찾고, 제비들이 하늘을 가른다. 박쥐들도 설친다. 마로치아의 전설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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