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광고판매대행법안(미디어렙법)의 연내 입법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민주통합당이 연내 미디어렙 입법 처리를 둘러싸고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합의한 미디어렙 법안 처리와 관련된 합의사항을 철회했다. 민주당이 연내 입법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틈을 타 한나라당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현재 조중동 종합편성채널이 직접 광고영업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우왕좌왕은 한나라당에게 합의사항을 철회하는 호기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소속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은 27일 전재희 문방위 위원장 방에 모여 미디어렙 법안 처리와 관련해 이 같이 결정하며 성명을 발표했다. 한나라당 문방위원 일동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민주당 의총에서 여야 합의안을 깬 것은 민주당의 상습적인 ‘합의깨기’로 볼 수밖에 없으며 이 같은 행태가 계속된다면 향후 여야간에는 어떠한 합의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나라당의 이런 행태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말에도 한참 못 미친다. 민주당의 우왕좌왕에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합의사항을 깨는 것은 ‘방송광고 시장의 정상화와 중소방송의 안정적 운영 등을 위한 입법과 지원정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그들의 얘기와 앞뒤가 맞지 않다. 방송광고 시장의 정상화가 바람이었다면 합의 파기보다 연내 입법에 매진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역시 한나라당은 종편뿐이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지금까지 일관되게 미디어렙 법안의 입법과 중소방송 지원 대책 마련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말 뿐이다. 한나라당이 중소방송 지원 대책 마련을 원했다면 민주당과의 합의 파기는 섣부른 행위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한나라당이 미디어렙법안 입법과 중소방송 지원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볼 수 없다. 합의 파기가 이를 증명한다. 한나라당에겐 종편뿐이었다.

속내는 종편뿐인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협상 파기의 모든 책임을 돌렸다. 그렇게 이야기할 수도 싶겠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렙 협상에 응한 것은 민주당 때문이 아니다. 민주당은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군소방송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뿐이다. 종교 지역방송이 한 몫한 결과다.

종편만 있는 세상, 서울에 있는 중앙방송만 있는 세상이 아니다. 더구나 미디어렙의 근본취지인 여론 다양성은 서울 MBC의 생존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군소 지역방송, 종교방송, 신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한국 사회 여론의 다양성이다. 하지만 연내 입법을 가로막는 민언련과 최민희 씨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민주당은 이에 휘둘렸다. 패권에 집착하는 행태는 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겠는가?

지금은 누구를 탓하기도 힘든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기억하지 않아 문제다.

손바닥 뒤집듯 합의 사항을 파기할 수 있는 정치권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또 다시 뒤집는 상황을 기대할 뿐이다.

연내 미디어렙 입법 불발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싶다. 민언련과 최민희 씨에게 휘둘린 민주당, 이를 호기로 삼은 한나라당은 역사의 죄인일 수밖에 없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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