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지독한 인내의 산물이다. 북극을 출발해서 아마존, 아프리카를 거쳐 MBC 다큐팀은 지구의 또 다른 끝 남극으로 향했다. 총 제작기간 2년 중 300일을 혹한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얼어붙은 대륙에 머물며 신비와 감동을 다시 담아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MBC 눈물 시리즈를 볼 때면 죄짓는 마음이 된다. 먼저 그곳의 주인인 동물들에게는 뭔가 잘못을 빌어야 할 것 같은 심정이 들고, 카메라 앵글 뒤에서 고군분투했을 다큐팀들의 고생이 눈에 선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영하 40도에 그보다 훨씬 낮은 60도의 체감 온도의 환경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눈으로 보기에도 몸서리처질 정도로 추운 곳에서 새끼를 낳고, 기르는 남극의 동물들에게서 불가사의한 신비감을 느끼지만, 무려 300일이라는 시간을 견뎌낸 촬영팀의 인내와 끈기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였다.

돈 준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돈 낸다고 거저 볼 영상들이 아니었다. 물론 남극 다큐멘터리가 MBC가 처음이 아니다. BBC나 내셔널지오그라픽을 통해 본 기억들이 존재한다. 영상은 비슷할 수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좀 달라진다. 이미 눈물 시리즈에 학습된 때문인지 몰라도 남극의 눈물 프롤로그는 말 그대로 맛보기에 불과한데도 뭉클해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한순간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남극에 산재된 각국의 연구기지를 소개하면서 일본이 등장했다. 그들의 남극정복기를 소개하는 과정에 일본배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장면이 화면에 흘렀다. 잠시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일본이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남극대륙을 탐험한 것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일본의 문화적 특성을 다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 제작진의 동기를 의심하지는 않지만 굳이 많은 장면들 중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장면을 넣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만일 꼭 필요했다면 그 의미를 오해하지 않은 해설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때 흐른 내레이션은 패전의 슬픔을 운운했다. 일본의 설명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패전의 슬픔이 맞겠지만 일본군국주의의 피해자인 우리는 그것을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다. 일본의 주장을 해석할 수 있어야 했다. 그 해석이 불가능했다면 욱일승천기를 화면에 담는 것은 피했어야 했다.

당시 패전일본이 굳이 남극에 도전해야만 했던 이유와 이제와 새삼스럽게 그 의미를 되새기는 까닭은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어야 했다. 얼마 전 일본은 당시의 남극정복을 다룬 대작 드라마를 방영했다. 군국주의 일본을 그리워하는 우익적 시각이 느껴지는 드라마였다. 우리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장면을 통해 제작진이 일본의 입장을 홍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경솔하고도 무신경한 편집이었다. 이에 대해서 제작진의 해명과 재편집이 뒤따라야 한다. 작은 실수지만 그 파장은 300일의 고생을 헛수고로 만들 수도 있는 치명적인 후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제작진의 빠른 대처로 남은 다섯 편의 남극대륙 일기를 마음 편히 볼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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