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인턴기자] 23일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 기습 철거를 시도했다. '26일까지 철거'를 못박은 서울시는 앞서 기억공간 내 물품을 정리하기 위해 진입을 시도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는 유가족 측이 강하게 반발하자 철수했다.

유가족은 서울시의 기습 철거에 대비한 농성에 돌입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이날 서울시는 공문을 통해 유가족 측 요구를 거부하고 기습 철거에 나섰다.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이유로 오는 26일까지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하자 유가족은 ‘세월호 기억공간’에 대한 협의체를 구성할 것과 공사 기간 동안 광화문 광장 주변에 ‘세월호 기억공간’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공사 이후 광화문 기억공간을 재설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식수, 표지석 등 상징물 설치는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미디어스는 22일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서울시의 자세 변화를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하고 있다"면서 "우리 요구안을 서울시가 수용한다면 세월호 기억공간을 자진해서 철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유가족이 철거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기억을 지우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인터뷰는 23일 서울시가 기습 철거 시도에 나서기 전인 22일 진행됐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23일 세월호 기억공간 앞에서 유경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서울시의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 시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미디어스)

세월호 기억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

세월호 기억공간의 변천사부터 소개해야 한다. 2014년 7월 단식농성을 천막도 없이 시작했다. 이후 서울시가 인도주의적 차원에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천막을 일부 설치해줬다. 이때부터 박근혜 정부가 끝날 때까지 농성장 성격이 강했다.

2016년 늦가을 촛불혁명 때는 기억공간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다짐하는 장소가 됐다. 촛불혁명 기간에 감당도 안 될 만큼 많은 시민이 기억공간에 들렀다. 시민들의 평가는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기억공간이 버텨주고 있어 여러 어려움에도 촛불 시민이 모일 수 있었다’였다. 촛불혁명을 거치며 기억공간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마음을 나누는 장소를 넘어 민주주의 역사 의미를 공유하는 장소로 시민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의미는 세월호 참사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과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의미로 확장됐다.

2019년 7월 서울시의 제안으로 세월호 기억공간은 지금과 같은 목조건물로 리모델링됐다. 원래 분향소가 있었는데, 리모델링하면서 영정들은 모두 빼고 엄마들이 아이들과 피해자들 사진에 꽃누르미로 작품을 만들었다. 입구 쪽에 시민들이 편하게 와서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코로나 이전까지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행사와 시민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는 행사를 계속해왔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가치를 담고 있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시민단체들이 연대성명을 발표했다

최근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반응했다. 과거에 시민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족협의회 측에 먼저 연락해 조언을 구했다면 이번에는 전혀 그런 과정이 없었다. 시민들이 먼저 소식을 듣자마자 자발적인 연대성명에 들어갔다. 기억공간은 유가족뿐 아니라 시민들의 공간이다. 이 공간을 지우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행위라는 데에 의견을 함께한 것이다.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26일까지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시는 의도적으로 상황을 왜곡하고 있다.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사업 시작 전부터 공사가 시작되면 철거하기로 유가족 측과 합의했고 지금은 실행하는 행정적 절차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애초 재구조화사업이 광화문광장에 어떤 시설물도 건축하지 않는다는 것을 유가족도 알고 있다며 꼭 원한다면 표지석이나 식수 설치를 검토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완전히 잘못된 주장인데, 첫 번째는 공사할 수 있도록 기억공간을 비켜주는 것은 합의와 약속의 대상이 아닌데 약속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공사를 시작하면 당연히 비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있었다. 처음 박원순 시장이 계획을 알려줬을 때 세월호 기억공간은 진상규명과 유가족들이 동의할 때까지 자기가 책임지고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공사 이후 광화문 광장에는 어떤 시설물도 들어가지 않을 계획이니 세월호 기억공간을 어떤 형태로 유지할지 논의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가족들도 만족하고 시민들도 만족하고 서울시도 만족하는 방안이 뭐가 있을까를 한번 깊이 있게 같이 서로 제안하면서 의논을 합시다가 약속이었다.

지금 서울시는 공사를 시작하면 유가족 측이 철거하기로 약속했다고만 얘기한다. 기억공간을 공사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백지화했다. 결국 세월호 지우기밖에 안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만약 서울시가 26일 철거 이후 1년 정도 공사를 더 해야 하니 이 기간 동안 어떤 방법이 있을지 논의하자고 제안을 하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서울시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세월호 기억공간(미디어스)

오세훈 시장 면담을 요청하지 않았나

박원순 시장이 돌아가신 이후에 여러 차례 서울시와 접촉했다. 서울시가 처음에는 기존 논의대로 할 것처럼 얘기하더니 시간이 지나자 거절했다. 서울시 측은 세월호 기억공간이 시장이 정무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직원들끼리 결정할 수 없어 새로운 시장이 오면 다시 얘기하라는 입장이었다. 4월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자 여러 차례 면담 요청을 했지만 지금까지 답이 없었다. 결국 7월 5일 총무과에서 미팅을 하자고 해서 갔더니 26일까지 철거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서울시와 논의된 것은 없었나

지난 15일 갑자기 서울시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세훈 시장 측이 비공개로 소수의 유가족들과 면담하자고 해서 17일 만났다. 오 시장이 그동안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제안 혹은 절충안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26일까지 철거하라는 기존 입장만 고수했다. 그 자리에서 유가족 측이 오 시장에게 요구한 것은 기존 서울시가 약속했던 것처럼 광화문광장 조성 이후 세월호 기억공간을 어떤 형태와 방식으로 운영할지 논의할 협의체를 만들어 달라는 것과, 기억공간을 광화문 광장 주변 외곽에 이전해서 임시 운영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 두 사안에 대한 답을 23일까지 달라고 했다. 지금까지 답은 안 왔고 20일 다시 공문을 보냈다.

기존 형태의 기억공간을 유지해달라는 입장은 아닌 것 같다

맞다. 광화문 광장에 지금의 기억공간 형태로 재설치해달라는 게 아니다. 이전 박원순 서울시장도 광화문 재구조화 공사를 하면 광장 위에 어떤 시설물도 들어설 수 없다는 게 방침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와 민주주의를 기억할 수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자고 했다. 유가족 측의 입장은 굳이 건물 형태가 아니더라도 광장에서 함께 마음을 나누고 안전한 세상을 다짐할 방법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은 해치마당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자는 구체적인 제안도 했다. 유가족 측은 꼭 광화문 광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우리는 광화문 광장 옆 세종로 공원은 재구조화사업 대상지가 아니기 때문에 기억공간을 그쪽으로 옮겨도 좋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민주당에서 기억공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과 대선 주자들이 입장을 내는 것이 놀라우면서 한편으로 걱정됐다. 사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취임한 날 면담 요청을 했는데 전혀 답이 없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연락이 왔다. '세월호 기억공간'이 정치공방의 소재로 사용되다 사라져 버릴까봐 걱정이 됐다. 과거에도 여러 차례 세월호가 정치공방화돼 국민들의 혐오감과 짜증의 대상이 됐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송영길 대표를 만나 처음 한 얘기가 "나서줘서 고맙지만 기억공간 문제가 정치공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송 대표는 흔쾌히 동의했고 기억공간을 지키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 당장은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과 대화하는 것에 집중하겠다.

서울시는 26일 철거를 강행할 것 같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세훈 시장이 유가족 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26일 철거를 못 하게 막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철거는 목조 건물을 뜯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공간 안에 있는 아이들과 희생자 사진들, 전시물, 기억 물품을 지우는 것이다. 서울시가 그것을 창고에 옮겨놓겠다는 것인데, 그런 대우는 받을 수 없다. 순진한 것일지 모르겠지만 서울시의 자세 변화를 마지막 순간까지 기대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서울시가 26일 강제로 철거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공사 일정상 강제철거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요구안을 서울시가 수용한다면 자진해서 26일까지 철거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부담이 있더라도 강제 철거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 일단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24일부터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1인 시위를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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