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옆에 레고로 만들어진 황인기의 2017년작 <방금강전도>가 전시되어 있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천경자가 그린 여인의 얼굴과 마주한다. 그 곁에는 노랑 염색 머리에 짧은 반바지에 핸드폰이 한참인 장우성 화백의 <단군일백이십대손>이 있다. 88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나란히 한 조선 후기 풍속도 <까치호랑이>는 어떨까?

7월 8일부터 10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DNA: 한국 미술 어제와 오늘>에서 만난 작품들이다.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이 화제다.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던 대구 박물관조차 관람객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 미술을 통사적으로 되돌아보는 전시회를 마련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 주인상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미술 어제와 오늘’, 하지만 전시회는 그저 고려청자에서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의 백남준 작품을 나열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 한국미를 총체적으로 조감하기 위한 큐레이션을 위해 우리 미술사의 선구자 고유섭, 김용준, 최순우를 초대한다. 그중 김용준은 예의 '르네상스형' 존재로서 문장의 표지부터 매화도까지 작가로서도 전시에 한몫을 한다.

금동미륵반가상, 고려청자 등에 대한 혜안으로 우리 미술사의 초석을 다진 고유섭 선생, 고유섭 선생의 제자로 우리에게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베스트셀러로 더 친근한 최순우 선생, 그리고 <근원수필>의 저자로 익숙한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김용준 선생은 우리 미술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성스럽고 우아하면서도 통속적인

6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회는 이 세 사람이 정의한 우리 미술의 특징 중 4가지의 키워드로 전시를 구성했다.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성(聖), 성스럽고 숭고한 부문이다. ‘석굴암'부터 절의 단청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미술에 있어 종교적인 성스러움은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전시는 이런 종교적인 작품에 더해 고려청자의 완벽한 색상과 조형미를 예술적 '성스러움'으로 해석한다.

이런 고전적인 조형미는 분청사기의 문양을 추상적으로 고스란히 재현한 듯한 김환기로, 단청의 색들을 선명한 분할색면으로 이어받은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가 유영국으로, 자유분방한 아이들의 세상을 표현한 이중섭으로, 그리고 다시 2021년 조덕현이 석굴암 십대 제자상을 오마주한 작품으로 이어진다.

다음 부문은 아(雅), 맑고 바르고 우아하다로 정의된 영역이다.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로 대표된 우리 문화의 '졸박미'를 한국식 표현주의로 받는다. 여기서 말하는 '졸박미'란 소박하고 졸렬한 듯하지만 기교가 최대한 배제된 노자의 '무위자연'의 경지를 말한다. 추사 김정희의 문인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전시회는 7월의 작렬하는 열기를 식혀줄 듯한 정선의 <박연폭포>를 구상화 임봉희의 <외금강 비봉폭포>로 받고, 이를 다시 비구상 작품인 윤형근의 <청다색>으로 받는다. 그런가 하면 추사 김정희는 오랜만에 외출 나온 간송 미술관 전형필의 <방고사소요도>와 김용준의 <매화>에게 화답을 받고, 1986년의 작가 이철량은 수묵으로 도시의 아파트촌을 그린다.

우리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문은 바로 속(俗). 김홍도와 신윤복, 그리고 조선 풍속화로 대표되는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영역이다. 전시회는 또한 대중에게 알기 쉽게 불교를 전달하려 했던 불교 미술도 이 분야로 취한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 언론공개회에서 참석자가 백남준의 반야심경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통속적인 전통은 197~80년대 민족주의적 전통의 부흥을 통해 계승되었다. 마치 불교 미술의 현대적 재해석처럼 보이는 오윤의 <마케팅> 시리즈 등이 그 대표적 작품이다. 임옥상, 장욱진의 작품도 이런 전통의 연장선상으로 본다. 1978년작 김기창의 무녀도도 빼놓을 수 없다.

백남준의 작품으로 시작된 네 번째 전시실의 주제는 화(和), 조화로움과 통일이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보여지듯 가장 현대적인 매체와 가장 고전적인 주제가 작품을 통해 만난다. 레고와 자개로 만든 산수화처럼 말이다. 또한 앞서 전시된 성스럽거나 우아하거나 통속적인 영역의 공존도 다룬다. 석굴암의 본존상은 현대로 오면 예수가 되고, 신라의 금관은 이수경의 2021년작 <달빛 왕관 - 신라 왕관 그림자>라는 설치 조형 작품이 된다.

고아한 조선의 달항아리는 1957년도 이종우의 정물화 속 오브제가 되더니, 1975년 도상봉의 그림에서는 라일락을 담은 화병이 되어 나타나는가 싶더니, 백자의 선을 살리되 붉은색을 띤 도자의 모습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전통은 오늘에 이른다. 이번 전시는 말 그대로 옛것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 미술의 '전통'을 되새겨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새롭게 발굴된 컬렉션도 좋지만, 이렇게 우리가 익히 아는 우리 미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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