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정희]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에서 가장 가슴 뭉클했던 장면을 꼽으라면 후반부 쯤, 익준(조정석 분)의 집에서의 익준과 송화(전미도 분) 대화 씬이 떠오른다.

신원호 피디답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에서도 엇갈리는 사랑의 작대기를 보여줬다. 그 가운데 가장 안타까웠던 건 반지까지 준비했지만 석형(김대명 분)의 고백 앞에 자신의 마음을 꿀꺽 삼켜야 했던 익준의 사연이었다. 그렇게 송화와 엇갈린 익준은 결혼을 했고, 아내를 유학을 보내고 홀로 우주를 키우다 결국 이혼하게 된다. 늘 자신보다는 친구들을, 가족을 우선하는 익준. 그런 익준이 안쓰러운 송화가 익준에게 묻는다. “너는 너 자신을 위해 무얼 해주냐”고.

여전히 정성스런 익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그런 송화의 질문에 익준은 담담하게 말한다. “너랑 밥 먹고 차 마신다”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익준에게 송화는 가장 위안이 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익준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송화를 찾아가 고백을 '타진'해 보지만 송화는 거절한다. 오랜 친구와 어색해지는 게 싫다고. 다시 한번 익준은 자신의 마음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익준은 예전처럼 송화의 가장 친한 벗으로 남는다. 하루종일 수술에 지쳐 잠들었다가 물에 젖은 솜 같은 몸을 추슬러 속초로 돌아가려는 송화의 차 보닛 위에 친절하게 카페인, 디카페인 커피를 준비해 놓는다. 시즌 2 내내 부지런하게 송화와 밥을 먹는다. 정성도 이런 정성이 없다.

그런 익준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사랑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린 누군가를 사랑하면 관계의 성취를 통해 그 사랑의 대가를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한결같이 송화 곁에서 함께 밥을 먹고 송화를 웃겨주는 익준을 보면서, 사랑의 진정성에 대해 다시금 짚어보게 된다.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명시가, 한결같이 뜨거울 수 있냐고 다시금 묻는 듯하다.

속 깊은 오빠이자 친구 그리고 의사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그런데 익준의 진정성이 발휘되는 건 이성적 관계에서만이 아니다. 4화 엔딩, 드디어 익준은 동생 익순(곽선영 분)과 준완(정경호 분)의 관계를 알았다. 그런데 영국까지 유학을 가서 간에 무리가 생긴 동생이 99즈 준완과 연인 사이인 것도 놀라운 일인데, 헤어졌단다. 안 그래도 준완의 여자친구가 이기적이라고 말한 당사자가 익준인데, 그 이기적인 연인이 동생 익순이었다니.

그간 우리 드라마에서 이렇듯 동생과 가장 친한 친구의 연애와 이별을 안 오빠는 대부분 감정적인 태도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이른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행동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곤 했었다.

그런데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는 늦은 밤 홀로 앉아있는 익준을 비추고 만다. 그리고 익준의 일상에는 전혀 변함이 없다. 변함없이 준완을 대한다. 함께 밴드를 하고, 송화의 방에 모여 투닥거리고. 어쩐지 전보다 친근하게 대화를 하는 모습은 줄어든 듯하지만 결코 흔들림이 없다.

그렇게 익순의 부탁대로 준완에게 전혀 내색하지 않는 한편, 아픈 동생에겐 지극정성이다. 병원에 온 동생의 부탁대로 조용히 검사를 하고, 치료를 위해 고향에 내려간 동생이 회복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부지런히 돌본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그렇게 두 사람에게 한결같지만 속을 내비치지 않는 익준의 모습을 통해, 익준이 동생 익순은 물론 친구 준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우리는 알게 된다. 늘 드러내고 쏟아냄으로써 감정이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런데 반대로 드러내지 않아서 더 애틋하고 안타까운 익준의 마음을 통해 관계 맺음의 '관성'에 대해 되돌아보게 된다.

익준의 속깊은 태도가 또 드러난 건 의사로서 모습이다. 병원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현실적'이라는 데 공감을 할 만큼 친절하고 자상한 의사 익준. 그는 자신의 환자인 한 여성과 그를 돌보는 남편의 모습에서 이상함을 감지한다. 익준의 말에 따르면 자상한 보이지만 정작 내일 있을 아내의 시술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남편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심지어 남편은 차츰 회복하고 있는 아내의 보험과 관련해서도 무리하게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중환자였던 아내에게 밤마다 술을 먹고 폭력을 행사했던 남편. 그 상황에 분노한 장겨울(신현빈 분)이 환자 남편과 맞대응을 하다 나뒹구는 상황에, 익준이 미리 부탁해두었던 병원의 안전 요원들이 상황을 제지한다. 이미 익준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알렸고, 혹시나 모를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결국 장겨울의 대응은 익준의 안전장치로 인해 더 큰 불상사로 이어지지 않고 마무리된다. 환자 역시 그 상황을 통해 자신에게 '도움'의 기회가 있음을 깨닫고 도움을 청하는 한편 삶의 의지를 붙잡게 된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에서 익준은 씬과 씬을 이어주는 접착제처럼 '핵인싸'의 모습으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얼토당토않은 개그는 물론, '약방의 감초' 격으로 모든 상황의 분위기를 이끈다. 99즈 밴드 리드 보컬로서의 빼어난 가창력도 놓칠 수 없다. 가끔은 익준인가 조정석인가 누구인가 헷갈릴 정도로 배우 개인이 가진 발군의 역량이 매회 빛난다.

마치 축구장에서 화려한 개인기를 선보이는 메시나 호날두처럼 극을 이끌어 가는 익준. 하지만 그 화려한 연기 속에 진짜 빛나는 건 익준의 우직함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늘 한결같은 사람.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의 연애사 앞에 결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몫을 다하는 사람. 그리고 매 순간 의사로서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익준은 부박한 인간관계에 상처받는 세상에서 깊은 '위로'를 건넨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전하는 진짜 매력은 친구들의 정겨운 밴드와 시끌벅적 소동극 같은 상황을 넘어 그 안에서 진득하게 서로를 지켜보고 지켜주는 '관계'에 대한 진심이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