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실망감을 주었던 작가의 분발이 눈에 띄었던 9회였다. 브레인은 신하균이라는 배우의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워낙 신하균의 존재감이 큰 탓인데, 그러다보니 작가 또한 너무 신하균에 매몰된 느낌도 없지 않았다. 아무리 배우 하나가 좋아도 드라마는 많은 주조연의 조화로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는 빼어난 조연이 발굴되는 것은 이제 공식화된 일이기도 하다.

강하기만 한 이강훈은 속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다. 그의 약함, 그의 아픔은 그래서 그의 어머니를 통해서 표현되고 있다. 엄마를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대하지만 정작 낡은 신발에 맨발로 다니는 엄마의 뒷모습에는 허물어지고 마는, 그 역시 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진작 복선으로 남겨둔 바 있다. 9회의 대부분을 차지한 강훈의 엄마 송옥숙의 뇌출혈은 오래전부터 공들여 준비된 장면이다.

모든 재앙이 한 번에 몰려든 이강훈이란 남자가 안타깝다. 더군다나 최악으로 몰린 상황에 어머니마저 병으로 무너지게 된다면 이 남자는 더욱 불쌍하기만 하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위해서 이강훈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려야 했을 것이다. 작가가 이강훈을 위해 준비했던 마지막 고통은 사랑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자기 자신이 참 보잘 것 없고 초라하게 생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쉽사리 고백하지 못하고 생가슴을 태우게 된다. 누구나 경험해봤음직한 일이다. 연애감정이 이런데 그보다 백배 천배 더 큰 어미의 사랑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어미의 마음은 사랑 때문에 늘 죄인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이라는 감옥에 스스로 갇혀 자식에게 항상 미안하고 또 미안한 것이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것은 강훈의 어머니 송옥숙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했다. 아직 정확한 사연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때 강훈을 떠나야 했던 엄마였다. 다른 남자를 만나 딸도 낳았으니 이 엄마와 아들 사이에는 애증이 깊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은 죄인 같은데 이렇게 상처까지 가졌으니 이 엄마는 자식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판이다. 사경을 헤매는 그 순간까지도 아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을 숨겨야 하는 그 슬픈 마음이 너무도 아팠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 병이 찾아왔을 때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위로받고 싶은 것은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모성은 그 본능마저도 억누르고 자식의 걱정거리가 되지 않고자 발버둥을 쳤다. 엄마 송옥숙은 무의식까지도 아들 강훈에게 조금의 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절대적 의지는 신앙보다 더 강해 보였다. 의식이 돌아오고도 가장 먼저 왜 천하대병원으로 왔냐고 딸을 나무라는 것이 이 엄마였다.

처음에는 강훈이 그런 엄마를 위해 모른척했고, 나중에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는 말을 듣고서야 다른 환자에게 아들 자랑하며 편히 웃음을 짓는 엄마였다. 그러나 불안한 미소일 수밖에 없다. 뇌출혈은 김상철이 잘 수술로 치료했지만 3기의 뇌종양이 발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이강훈은 과거 자기 아버지를 실수로 죽게 한 의사가 김상철인 것을 알게 됐다. 이제 강훈은 불행만이 아니라 트라우마 탈출이라는 또 다른 무거움까지도 짊어져야 한다.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조차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이강훈이 겪고 있는 불행과 고통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버겁기만 하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비밀과 진실이 풀리면서 그 해소의 힘으로 엄마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것이 또한 강훈의 짐이다. 분노만으로 지난 고통을 보상받을 수 없는 강훈이다. 그러나 가볍게 놓아버릴 수 없는 오랜 고통과 화해를 강요받게 된다. 김상철 교수가 강훈의 엄마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최고조에 도달한 고난이 끝나고는 작가가 약속한 김상철과 이강훈의 행복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 희망으로 강훈에게 찾아온 마지막 고통을 덤덤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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