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통령은 거의 취임 일성과 마찬가지의 연설에서 자신을 코미디 소재로 삼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오픈 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을 칭찬하기 전에 이 발언은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발언에는 대통령을 희화한 풍자와 해학이 금지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한국의 여당에서는 심심찮게 코미디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그것이 외압으로 작용했던지 여당을 불편케 한 개콘 코너들은 하나둘 문을 닫게 되었다.

대통령 풍자, 표현의 자유 등은 한국에서 사문화된 권리에 불과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하디흔한 자동차 폭파장면 때문에 무한도전에게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정이 국민의 기본권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들이다. 전 국민을 분노케 하고 또 조소케 한 개그콘서트 최효종에 대한 강용석의 형사고소 역시도 권력과 그 주변의 기득권자들에게 표현의 자유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에 불과하다.

이번 일에 대해서 SBS와 MBC 뉴스 앵커들이 강용석 의원을 향해서 직격탄을 날렸다. 물론 후련하고 통쾌한 반격이었다. 뉴스앵커가 간만에 앵무새가 아닌 자기 생각을 말하는가 싶은 정도로 기특했다. 또한 최효종에 대한 고소를 적극적으로 처리해야 할 KBS는 타 방송사보다 늦은 반응이긴 했지만 코미디에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강수를 꺼내들었다. 물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반응들이 당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용석이 한나라당에서 제적당하지 않았다면 가능했던 대응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그것보다도 최효종이 고소당한 것과 무한도전이 징계받는 것이 내용적으로는 다를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효종 건에만 선택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뭔가 찜찜하다. 강용석은 비록 철밥통 국회의원 동료들에 의해서 국회의원 직을 지켜낼 수 있었지만 한나라당에서 제적당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인척관계이긴 하지만 권력과의 끈은 떨어졌다고 볼 수도 있고, 레임덕의 한 현상일 수도 있다.

어쨌든 최효종에 대한, 틀린 말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던 풍자에 대한 방송사들의 최효종 구하기는 일단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태도가 상대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방통심의위가 무한도전에 대한 징계가 표적심사가 아니라고 발끈했다지만 그런 반응을 보는 국민입장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가 대부분이다. 방통심의위를 검색하면 관련검색어로 무한도전, 무한도전징계가 뜨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차량 폭파장면을 문제 삼았지만 무엇보다 이번 방통심의위의 징계가 안타까운 것은 그때의 무한도전은 일본의 독도침탈야욕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드라마에 허용되는 표현이 왜 예능에는 불가하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가 없다. 예능 다시 말해서 버라이어티는 코미디를 기반으로 하겠지만 그 안에서 드라마나 뉴스도 할 수 있다. 설혹 코미디라 할지라도 드라마와 다른 기준을 가져야 할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원성이 자자한 막장 드라마에는 뒷짐 진 자세면서 무한도전에는 유독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민감하고도 과잉된 반응이다. 물론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지만 방통심의위가 유독 무한도전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다는 일반적인 인상을 주고 있다면 항변 이전에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방송사들의 보도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최효종이 억울하다면 무한도전은 더 하다. 방송에 번번이 방통심의위를 의식한 정지화면과 자막을 챙겨 넣어야 하는 무한도전의 고충은 직접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최효종 구하기에 열심인 방송사들이 왜 무한도전이 겪는 검열과 제재에는 수수방관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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