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자의 자격은 방황중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해답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죠. 그만큼 쉽게 풀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단순히 하나의 에피소드가 문제여서, 아니면 한두 명 멤버의 부진이나 실수 때문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에요. 낙숫물이 떨어지면서 생긴 구멍처럼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만들어진 문제거든요. 그렇기에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시간, 결국 시간입니다.
출발은 역시 제작진의 교체입니다. 남자의 자격을 만든 신원호 PD가 종편행을 선택한 이후, 그가 멤버들과 함께 구상했던 모든 기획들, 진행하고 있던 장기 프로젝트들의 뒤처리가 몹시도 애매해져 버렸거든요. 애초에 무리라는 우려가 많았던 하모니 두 번째 편, 청춘 합창단의 방송을 늦봄부터 무려 가을 초까지 무려 9회에 걸쳐 끌었던 이유 중에는 어찌 보면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고 여기저기 흩어진 미션 조각들 중 취사선택을 하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겁니다. 그만큼 청춘 합창단의 구성 때부터 갑자기 투입된 조성수 PD, 그리고 총책임으로 조율하고 있는 이황선 PD에겐 남자의 자격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애초에 고작해야 여걸식스, 뮤직뱅크를 대표 연출 프로그램으로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이런 식의 리얼 버라이어티에 대한 경험 자체가 전무했으니까요.
그동안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방기되었던 남자의 자격 내부는 지금 엉망진창입니다. 김성민과 이정진의 하차 이후 양준혁과 전현무가 새로운 멤버로 투입되었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 맺기나 캐릭터 잡기는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합니다. 야구인으로서, 아나운서로서의 출발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 그 자체의 매력과 장점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최악의 꼭지였던 야구체험 특집으로 오히려 양준혁의 존재를 양신으로 제한하는 뒷걸음질만 치고 말았죠. 애초에 이경규에게도 대드는 말썽꾸러기 막내의 콘셉트를 의도했던 전현무 역시 다른 멤버와의 조화 없이 개인의 분발만 눈에 보일 뿐입니다. 새로운 두 멤버는 여전히 어울림을 통한 웃음을 만드는 데 아쉬운 모습이 큽니다.
그렇다보니 윤형빈의 부진, 아직도 야구선수인 양준혁, 치고나오다 조용해진 전현무의 구성된 영보이들의 침묵은 남자의 자격 전체의 활력을 잘나가는 멤버, 그나마 김태원, 믿을만한 김국진, 버팀목 이경규에게 의지해버립니다. 그런 큰 격차 사이에서 이윤석은 헤매고 있을 따름이구요. 지금 이 프로그램이 해야 하는 것은, 재정비를 위한 그 긴 시간동안에도 하지 못했던 가장 기본적인 것.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누가 하느냐의 문제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빵빵 터질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번 주 마지막 귀농특집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장면은 그들이 고구마를 엄청나게 수확하고, 거위들을 돌려주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잡으러 다니던 모습이 아니라, 그 약간의 빈틈에서 주고받는 농담, 덕구, 남순이와 노는 따스한 아저씨들의 표정, 이웃들과 나누는 따스한 정이었거든요. 즉 미션 수행을 위해서 고생하고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약간은 소박하게 보일지라도 지금 남자의 자격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쉼표, 토대 다지기입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 자세에서 출발해야 해요. 지금부터의 남자의 자격은 시즌2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