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자의 자격은 방황중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재정비를 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해답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죠. 그만큼 쉽게 풀기 어려운 난제입니다. 단순히 하나의 에피소드가 문제여서, 아니면 한두 명 멤버의 부진이나 실수 때문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에요. 낙숫물이 떨어지면서 생긴 구멍처럼 오랜 시간동안 서서히 만들어진 문제거든요. 그렇기에 해결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은 시간, 결국 시간입니다.

출발은 역시 제작진의 교체입니다. 남자의 자격을 만든 신원호 PD가 종편행을 선택한 이후, 그가 멤버들과 함께 구상했던 모든 기획들, 진행하고 있던 장기 프로젝트들의 뒤처리가 몹시도 애매해져 버렸거든요. 애초에 무리라는 우려가 많았던 하모니 두 번째 편, 청춘 합창단의 방송을 늦봄부터 무려 가을 초까지 무려 9회에 걸쳐 끌었던 이유 중에는 어찌 보면 흐트러진 전열을 가다듬고 여기저기 흩어진 미션 조각들 중 취사선택을 하기 위한 것도 있었을 겁니다. 그만큼 청춘 합창단의 구성 때부터 갑자기 투입된 조성수 PD, 그리고 총책임으로 조율하고 있는 이황선 PD에겐 남자의 자격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애초에 고작해야 여걸식스, 뮤직뱅크를 대표 연출 프로그램으로 가지고 있던 이들은 이런 식의 리얼 버라이어티에 대한 경험 자체가 전무했으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남자의 자격의 미션들은 대부분이 신원호 PD가 만들어 놓은 포맷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청춘합창단 자체가 하모니의 시즌2편이었고, 그 사이 잠깐 삽입되었던 장기 프로젝트 진행 사항 보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주에 방송되었던 귀농일기의 마지막 역시도 그러하죠. 제작진 교체는 지난 4월에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실제로 우리가 신입 PD의 기획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시를 만들었던 방송과 야구 체험 방송, 이 두 가지 꼭지에 불과해요. 신임 제작진들이 열중했던 것은 선임들이 벌려놓은 것들의 미숙한 마무리가 대부분입니다. 태권도나 자격증 따기의 성과 같은 장기 프로젝트들은 실행 멤버들을 대폭 줄이며 그 성과가 무엇인지 여전히 묘연하고, 야심차게 시작했던 귀농일기는 임대기간 종료와 함께 느닷없이 끝나버렸죠. 실제로 이들 손에서 시작되어 길게 내다보는 장기 프로젝트는 하나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동안 정리되지 못한 상태로 방기되었던 남자의 자격 내부는 지금 엉망진창입니다. 김성민과 이정진의 하차 이후 양준혁과 전현무가 새로운 멤버로 투입되었지만 이들 사이의 관계 맺기나 캐릭터 잡기는 전혀 진척을 보이지 못합니다. 야구인으로서, 아나운서로서의 출발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인간 그 자체의 매력과 장점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최악의 꼭지였던 야구체험 특집으로 오히려 양준혁의 존재를 양신으로 제한하는 뒷걸음질만 치고 말았죠. 애초에 이경규에게도 대드는 말썽꾸러기 막내의 콘셉트를 의도했던 전현무 역시 다른 멤버와의 조화 없이 개인의 분발만 눈에 보일 뿐입니다. 새로운 두 멤버는 여전히 어울림을 통한 웃음을 만드는 데 아쉬운 모습이 큽니다.

그리고 이런 깨어진 관계는 이경규-김국진-김태원 올드보이들의 탄탄함에 비해 이윤석과 윤형빈의 라인이 몹시 빈약해지는 문제를 만들어 버립니다. 특히 자신의 파트너였던 이정진을 잃어버린 윤형빈의 자리잡기는 여전히 쉬워 보이지 않아요. 이번 귀농특집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책임지기도 했지만, 그가 만들었던 웃음 포인트가 별반 보이지 않았다는 것. 성실한 막내 이외에 스스로의 캐릭터가 무엇인지 아직도 자신도 시청자도 모르고 있다는 거죠. 결국인 캐릭터 게임인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이런 미아가 되어 버린 윤형빈 살리기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결국 영보이 그룹의 구심점이 되어주어야 하는 사람은 윤형빈이 되어야 하거든요.

그렇다보니 윤형빈의 부진, 아직도 야구선수인 양준혁, 치고나오다 조용해진 전현무의 구성된 영보이들의 침묵은 남자의 자격 전체의 활력을 잘나가는 멤버, 그나마 김태원, 믿을만한 김국진, 버팀목 이경규에게 의지해버립니다. 그런 큰 격차 사이에서 이윤석은 헤매고 있을 따름이구요. 지금 이 프로그램이 해야 하는 것은, 재정비를 위한 그 긴 시간동안에도 하지 못했던 가장 기본적인 것.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누가 하느냐의 문제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죠. 어떤 그럴듯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지 빵빵 터질 수 있는 기본 토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에요.

실질적으로 새로운 제작진의 첫 장기 프로젝트인 바이크 면허증 따기가 그리 탐탁해 보이지 않는, 제작진의 엄청난 착각처럼 보이는 이유입니다. 시청률이 조금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남자의 자격이 불안불안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이들에게는 거창한 주제, 반드시 실적과 결과를 만들어 내야하는 숙제보다는 멤버들 스스로가 보다 많은 여유를 가지고 자유롭게 관계를 맺어갈 쉼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전의 아날로그 특집처럼 옛날 정서를 공유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거나, 유기견 특집처럼 멤버들의 의외의 면을 재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좋구요.

이번 주 마지막 귀농특집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장면은 그들이 고구마를 엄청나게 수확하고, 거위들을 돌려주기 위해 좌충우돌하며 잡으러 다니던 모습이 아니라, 그 약간의 빈틈에서 주고받는 농담, 덕구, 남순이와 노는 따스한 아저씨들의 표정, 이웃들과 나누는 따스한 정이었거든요. 즉 미션 수행을 위해서 고생하고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고, 약간은 소박하게 보일지라도 지금 남자의 자격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쉼표, 토대 다지기입니다. 그들은 아예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 자세에서 출발해야 해요. 지금부터의 남자의 자격은 시즌2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습니다.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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