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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문해력’ 읽어도 뜻을 모르는 현대판 문맹, 어떻게 해야 할까?[미디어비평] 톺아보기
미디어평론가 이정희 | 승인 2021.03.17 20:41

[미디어스=이정희] 사흘, 이 단어의 뜻을 아시나요? 그렇다면 양성이나 음성은? 코로나19 상황, 많은 사람들이 포털사이트에 양성과 음성의 뜻을 물었다고 한다. 심지어 '사흘'은 지난해 ‘광복절 사흘간 연휴’라는 정부 발표 이후 실검에 올랐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하루, 이틀, 사흘'의 그 사흘인데 많은 사람들이 4일이라고 알았던 것이다. 심지어 기자들조차 '4흘'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단다.

'그 정도야' 한다면 이건 어떨까? 

EBS 특별기획 6부작 <당신의 문해력>

KTX 열차표 금액 계산 실례이다. 성인 남녀 880명을 대상으로 ‘복약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직장 휴가 일수 계산'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문장으로 시험을 봤다. 결과는 평균 54점이 나왔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문맹률이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위의 시험 결과에서 알 수 있듯 글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리고 글을 이용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문해력'에 있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EBS는 지난 1년간의 준비를 거쳐 6부작 문해력 프로젝트 <당신의 문해력>을 3월 8일부터 방영 중이다. 

문해가 안 돼서 공부를 포기하는 현실 

EBS 특별기획 6부작 <당신의 문해력>

<당신의 문해력>은 김구라, 이현이, 알베르토 몬디 등과 한양대 조병영 교수, 한겨레 김진철 기자 등이 패널로 참가하여 문해력의 문제를 집중 파고든다. 

'문해력'은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학교 현장에서는 심각하다. 영어 수업 중인 고등학교 교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들여다보면 학생들이 선생님이 해석해 주는 '한글 단어'를 몰라서 수업 진행이 안 된다. 모르는 뜻에 손을 들고 '몰라요'라고 하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아이들은 한 페이지 당 무려 14번 손을 들었다.

보모, 변호, 피의자, 출납원, 상업광고 등. 아이들이 모른다고 했던 한국어이다. 아이들은 캐셔는 알아도 캐셔의 뜻인 출납원은 모른다. 사회 수업은 한 술 더 뜬다. 영화 <기생충>을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는 선생님, 봉준호 감독이 애초 <기생충>이라는 제목 대신 가제로 '데칼코마니'라고 했던 설명에서부터 얹힌다. '가제'가 무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랍스터'라는 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체의 양분을 빨아먹는다는 문장에서 '양분'이나, 지배 집단과 피지배 집단 간의 '위화감'이란 단어를 알 리가 없다. 선생님은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나갈 수 없다. 그런데 이 진도를 나갈 수 없는 반이 제법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라는 것이다.

EBS 특별기획 6부작 <당신의 문해력>

중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문해력 테스트를 했다. 27%가 또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초등 수준 정도인 학생들도 11%나 됐다. 문해력 초등 수준의 학생들에게 중학교 교과서는 당연히 무리, 그러니 공부를 포기하게 된다. 

이는 공부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늘어난 비대면 수업, '연말 특별강화대책'처럼 글로 전달하는 내용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읽었다고 하는데 등교하는 날조차 인지하지 못해 일일이 전화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고 한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줄글, 검은 글씨, 긴 글 자체를 읽지 않으려는 경향도 문해력에 있어 지대한 저해 요소로 작용한다고 한다. 2000년 5.7%에서 2018년 15.1%로, 지난 10년 사이 읽기 능력이 부진한 학생들의 비율이 3배나 증가했다. 

영상시대, 문해력은 필요할까? 

EBS 특별기획 6부작 <당신의 문해력>

물론 문해력에 대한 우려에 대응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상의 시대, 과연 굳이 글을 읽어야 하는가란 문제제기이다. 카드뉴스나 포스터, 나아가 영상처럼 보다 쉬운 방식을 통해 전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최근의 경향성에 대해 프로그램은 공기업에 근무하는 염기철 씨의 사례를 든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입사한 기철 씨. 직장 내 진급 등을 위해 정보 관련 자격증 준비를 하는데 쉽지 않다.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나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간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신 상황이다. 그는 제작진이 준비한 문해력 테스트 11문제 중 겨우 5문제를 맞혔다. 그래서일까, 직장에서 기철 씨가 작성한 문서가 자주 반려된다고 한다. 32살, 남들이 보기엔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들어갔으니 다 끝이라고 하겠지만,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기철 씨에게 문해력은 인생의 걸림돌이 된다. 

실제 기업 10곳 중 6곳에서 젊은 세대의 국어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고서나 기획안 등 문서작성 능력이 부족하고 구두 보고나 이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이다. '수신, 발신, 참조'라는 단어도 모르는 젊은 세대, 아이러니하게도 신입사원을 뽑아놓고 다시 대학 국어학과 교수를 초빙하여 공부를 시키는 기업도 등장한다.

EBS 특별기획 6부작 <당신의 문해력>

OECD 조사에 따르면 언어 4.5등급과 1등급 사이에 연봉 2.7배, 취업률 2.2배, 그리고 건강마저도 두 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뇌의 상태를 조사해보았다. 평균 1년에 20권 정도를 읽는 사람들과 한 권이나 읽을까 하는 사람들의 전전두엽 활성화 정도를 검사한 결과 활성화 기능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똑같은 책을 읽어도 의미를 파악하는 인지적 능력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활성화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글자'만 읽고 있을 때, 인지적 능력이 높은 사람은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의미를 파악하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물론 읽기 능력은 후천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등이 문해력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문해력 시험을 보는 등 국가적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문해력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왔던 필자는 <당신의 문해력>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프로그램은 그저 단어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입말' 중심의 초등교육과정에서 '문어체'가 주를 이루는 중등교육과정으로 넘어가면서 다수 학생들이 문해력에 장애를 느낀다. 

EBS 특별기획 6부작 <당신의 문해력>

특히 우리나라는 '한자 문화권'에 포함되어 있기에 '한글'만으로 뜻을 해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거기에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언어 문화는 우리 사회 언어 체계에 혼란을 가져온다. 

결국 교육과정 근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다큐는 4부 <내 아이를 바꾸는 소리의 비밀>처럼 문제 해결을 다시 가정, 사교육으로 환원하는 듯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회사에서 돌아온 엄마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아이와 책을 읽고 말놀이를 하는 게 '해결책'이어서는 우리 사회 문해력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공교육이 해야 할 과제를 개인이 떠안아서는 문해력의 격차가 나날이 심해질 것이다. 저런 식의 해법이라면 조만간 문해력 학원이 등장할지 모른다. '문해력'의 중요성과 실태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당신의 문해력>은 유의미했지만 해결책 모색 과정에 있어서는 아직은 아쉬운 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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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평론가 이정희  5252-j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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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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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환 2021-03-18 16:55:19

    예시 문제에 "두 중학생 자녀를 둔 부부"라는 표현이 있는데, "두 중학생 자녀를 동반한 부부" 등의 표현으로 바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예시된 문제에서, 두 자녀를 두었다는 표현은 승차인원이 몇인지에 대한 의문(2 혹은 4?)이 생기게 한다고 보입니다. 혹시 문해력의 의미에 문제 자체의 신빙성이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이 포함된다면 상관없지만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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