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설마 했지만 전혀 짐작하지 못할 반전은 아니었습니다. 세종 이도에게 가장 충직해 보였던 가리온이 실상은 밀본의 3대 본주 정기준이었다는 뒤엎음은 이미 제작진이 친절하게 제공해준 힌트들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의심했던 바이니까요.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황당함이 아닌,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는, 조금은 예측 가능한 그런 반전이야말로 시청자들에게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을 주는 반전이죠. 뒤통수가 조금 얼얼하기는 하지만 그 근거들을 차근차근 곱씹다보면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반전이었으니까요.

가리온이 수시로 언급했던, 자신이 작은 재주를 뽐내려던 객기 때문에 화살로 고슴도치가 되어 죽은 아버지에 대한 토로, 그야말로 땅바닥을 기면서 자신을 숨기겠다는 다짐, 밀본과 반촌과의 긴밀한 관계 등등 눈치를 챌 수 있는 거리들은 많았습니다. 다만 그 내비침이 조금은 노골적이어서 절대 그럴 리 없다는, 이런 힌트들도 연막작전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심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을 뿐이죠. 조금 더 복잡한 심리싸움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높은 기대와 궁금증의 난이도를 조금은 낮춘 셈이긴 하지만 분명 훌륭하고 적절한 내용 전개입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정기준보다 훨씬 더 소름끼치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거든요.

그래서 이런 반전보다 앞으로 다가올 내용 전개를 짐작하는 것이 훨씬 더 충격적이고 무섭습니다. 무엇보다도 정기준이 가리온이라는 설정은 이제 이 드라마의 흐름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대강의 짐작을 하게 해주던 원작과 확실하게 결별할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이 드라마는 원작과 다른 길을 간지 오래입니다. 아버지 태종 이방원에 대한 이도의 반발과 트라우마, 신본주의를 꿈꾸는 비밀결사 밀본, 이도를 암살하고자 하는 똘복이의 과거, 똘복이와 소이와의 인연 등등 이 드라마의 여러 설정들은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장치들입니다. 세종의 한글 반포 이전에 집현전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소재와 배경만을 가져 왔을 뿐, 완전한 재창조라고 봐도 무리가 없어요.

하지만 정기준의 실체가 드러나는 반전은 그 의미가 또 다릅니다. 원작소설에서는 벙어리 궁녀 소이와 함께 끝까지 세종의 한글 창제를 위한 힘이 되어 주었던, 그래서 궁녀, 백정까지도 보듬어주고자 했던 세종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해주던 인물을 밀본의 수장으로 바꾸면서 드라마의 방향이 크게 전환되기 때문이에요. 이제 누가 적이고 같은 편인지의 흐릿함, 혹은 어수선함으로 가득했던 내용 줄기는 세종과 밀본이라는 뚜렷한 구분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아직 명나라 세력이라는 변수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제 등장인물들은 두 세력의 대결구도 중에 어느 편에 설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의 흐름은 결국 뿌리깊은 나무의 결론을 똘복이 장혁의 손에 넘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종 이도의 제거를 위해 살아온 똘복이의 목표는 밀본과 정기준의 뜻과 부합합니다. 하지만 천한 죽음은 없다는 그의 소신은 성리학적 질서를 신봉하는 밀본이 아닌 백성을 아우르고자 하는 세종의 것과 같습니다. 세종과 정기준, 집현전과 밀본 사이에서 똘복이가 어떻게 갈등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지가 이야기의 큰 축으로 이어질 것이란거죠.

사실 뻔한 결과이기는 합니다. 자신의 원수까지도 변화시키는 세종의 승리가 이미 원작에서도,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한 것도, 편안한 것도 아닐 것이란 것 역시도 알 수 있거든요. 당연히 밀본은 각종 암살과 모략으로 반대할 것이고, 다른 신료들 역시 반발할 것이 뻔하고, 명나라가 세종의 편을 들어줄리 만무합니다. 심지어 그가 구하고자 했던 백성들이 모여 살고 있는 반촌마저도 밀본의 편이죠. 그런 수많은 적들 앞에서 세종이 기댈 곳은 그의 뜻을 알아주는 몇몇 젊은 집현전 학사들, 호위무사 몇 명, 말 못하는 궁녀와 자신을 죽이려 살아온 똘복이 정도입니다. 이 모든 상황을 아버지 이방원처럼 피로 물들이며 힘으로 밀어붙여 일거에 역전시킬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참고 또 참으면서 말이죠.

이제 대립구도가 확실하게 드러난 이상 정기준의 정체처럼 더 이상의 깜짝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이 드라마는 이제 좀 더 근본적인 주제로, 성리학과 신권주의의 완고함에 맞서는 외로웠던 천재군주 세종에게로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소소한 반전들보다, 이 드라마가 주는 가장 큰 충격은 바로 이 세종이란 인물 자체. 이런 숱한 배신과 공격, 반전과 위협 속에서도 고고하게 빛나는 위대한 군주의 진정한 면모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정기준의 정체가 밝혀지는 바로 그 순간보다, 오히려 성삼문과 박팽년의 앞에서 목이 터져라 한글을 소개하는 세종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놀랄만한 반전이 이어진다고 해도,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없어요. 스티븐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보는 것처럼 한글을 자랑하며 설명하는, 아니 그의 수많은 발명품보다 훨씬 더 획기적이었던 위대한 업적 한글을 그토록 아이처럼 좋아하며 신하들에게 자랑하는 왕이라니. 그러면서도 백성의 평가에 따라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다고 하는 왕이라니. 우리에게도 이런 왕이 있었습니다. 지도자에게 절망하고, 누굴 믿고 따라야 할지 암담한 지금, 이런 왕이 있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소름끼치고 충격적이지 않나요? 몹시도 그립고 아쉽지 않나요?

'사람들의 마음, 시간과 공간을 공부하는 인문학도. 그런 사람이 운영하는 민심이 제일 직접적이고 빠르게 전달되는 장소인 TV속 세상을 말하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는 통로' - '들까마귀의 통로' raven1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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