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중국 광저우에서 개최된 제16회 아시안게임에서 프로 선수들이 주축이 된 야구 대표팀은 19일 벌어진 결승전에서 대만에 9:3으로 완승을 거두며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2006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대만과 일본에 연패하며 동메달에 머물렀던 수모를 설욕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 WBC 준우승을 거둔 야구 대표팀의 호성적을 이어갔습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투수
류현진, 봉중근, 윤석민, 송은범(*), 안지만(*),
임태훈(*), 양현종(*), 고창성(*), 김명성(*), 정대현

포수
박경완, 강민호

야수
김태균, 이대호, 정근우, 조동찬(*), 손시헌, 최정(*)
강정호(*), 김현수, 이종욱, 이용규, 추신수(*), 김강민(*)

24명의 선수 중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통해 병역 특례의 혜택을 받은 대상자는 이름 뒤에 (*)표로 표시한 11명입니다. 프로 선수로서는 부담스러운 병역 의무에서 벗어나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게 된 것이지만 흥미롭게도 11명의 선수들 대부분이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2010 시즌에 비해 2011 시즌의 성적이 저조합니다.

SK 송은범은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작년과 비교했을 때 승수는 8승으로 동일하지만 소화 이닝이 크게 감소(125이닝 → 78.2이닝)하고 평균자책점이 올라가며(2.30 → 3.43) 패전이 증가(5패 → 8패)했습니다. 만일 송은범이 정상 가동되었다면 SK는 한국시리즈에서 허망하게 패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010년 16승을 거두며 좌완 투수 계보를 이을 것만 같았던 KIA의 파이어볼러 양현종은 올 시즌 단 7승에 그쳤습니다. 소화 이닝 감소(169.1이닝 → 106.1이닝)와 평균자책점 증가(4.25 → 6.18)는 물론입니다. 부상 선수가 속출해 고전한 KIA가 준플레이오프에서 무기력하게 SK에 밀린 이유 중 하나로 양현종의 부진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산 마운드의 허리를 책임지던 고창성 역시 모든 면에서 작년만 못했습니다.

중앙대 졸업을 앞두고 유일하게 아마추어 선수로 대표팀에 발탁된 김명성은 프로 데뷔 첫해인 2011 시즌에 고작 4경기에 등판해 7.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9.39의 부진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작년 8월 1라운드에 지명한 뒤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특례 혜택을 받아 기대를 걸었던 롯데의 마운드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 두산 임태훈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특례 혜택 대상자가 되었으나 2011 시즌 최악의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고 두산 김경문 감독은 성적 부진까지 겹쳐 자진 사퇴했습니다. 잠실야구장의 두산의 공식 매장을 장식하던 대형 걸개 사진은 6월말 철거되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었으나 평가전에서의 부진으로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던 두산 임태훈은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와병으로 인해 대표팀에서 제외된 SK 김광현을 대신해 승선하며 병역 특례의 행운을 누렸지만 올 시즌 최악의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전락했습니다.

MBC ESPN의 송지선 아나운서와의 교제설이 불거진 후 임태훈이 부인하자 송지선 아나운서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입니다. 교제설이 불거지기 이전부터 부진했던 임태훈은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 이후 1군에서 장기간 제외되었으며 김경문 감독은 최악의 팀 분위기 속에서 성적마저 하락하자 자진 사퇴했습니다. 시즌 종료 직전 임태훈은 1군에 올라왔으나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은커녕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임태훈의 복귀가 온당한 것인지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병역 특례 혜택을 받은 6명의 투수 중 올 시즌 제몫을 다한 것은 삼성의 페넌트 레이스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인 안지만 밖에 없습니다.

야수들도 비슷합니다. 삼성 조동찬은 작년에 타율 0.292의 커리어 하이로 대표팀에 선발되어 병역 특례 대상자가 되었지만 올 시즌에는 0.216에 그쳤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외국인 타자 가코에 밀려 교체 출장하는 일이 잦았지만 삼성이 가코를 퇴출한 이후에도 조동찬은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2010 시즌에 0.317의 타율로 역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SK 김강민 역시 2011 시즌에는 부상에 시달렸고 포스트시즌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0.301의 타율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넘어선 넥센의 강정호도 0.282로 타율이 하락했습니다.

2009년 이후 2년 연속 3할 20홈런 - 20도루를 기록한 대표팀의 유일한 메이저 리거이자 누구보다 병역 혜택이 간절했던 클리블랜드의 추신수는 2011년 임태훈에 버금가는 추문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지난 5월 2일 오하이오주에서 음주 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된 것입니다. 아울러 손가락 부상 등으로 인해 두 번이나 부상자 명단에 오르며 모든 기록은 하락했습니다. 병역 혜택을 얻은 야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 기량을 발휘한 것은 2년 연속 20홈런을 돌파한 SK 최정 밖에 없습니다.

이밖에 광저우 아시안게임의 병역 혜택과는 무관했던 LG 봉중근과 한화 류현진은 페넌트 레이스에서 많은 이닝을 소화한 뒤 다시 아시안게임에서도 차출되어 피로가 겹치면서 올 시즌에 낭패를 보았습니다. 봉중근은 고작 4경기에 등판한 뒤 미국에서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으며 전력에서 이탈해 LG의 9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 실패를 구경하는 입장으로 전락했습니다. 역시 부상으로 1군과 2군을 들락날락한 류현진은 11승으로 데뷔 이후 최소 승수에 머물렀습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가 소속된 LG와 한화는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병역 특례 혜택을 단 한 명의 선수도 누리지 못해 아시안게임에 차출된 에이스의 부상에 속 쓰릴 만합니다.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가장 많은 3명의 병역 특례 대상자를 배출한 SK 역시 속이 쓰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주전 포수 박경완이 아시안게임 참가를 위해 아킬레스건 수술을 미루었지만 결국 2011 시즌에서 긴 재활을 거치며 전력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시즌 중반 이후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파란만장했던 SK로서는 박경완의 공백이 뼈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참혹한 실패를 거울삼아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의 감독으로서 금메달이라는 기대했던 성과를 얻은 조범현 감독은 2011 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KIA가 SK에 1승 3패로 밀려 탈락하자 계약 기간 1년을 남기고 경질되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감독이 1년도 못되어 소속팀에서 내몰리는 신세가 된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아니었다면 2010 시즌 KIA의 16연패 불명예 기록으로 인해 아시안게임 직후 경질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야구가 퇴출된 이후 아시안게임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병역 특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제대회에서의 입상을 통한 병역 특례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 안방에서 개최되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프로야구 선수들이 금메달 획득을 통해 혜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대표팀에 승선하기 위해 부상을 무릅쓰고 최선을 다하던 선수들 대부분이 금메달 획득으로 병역 특례를 누리게 된 이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음 시즌에 부진하거나 추문의 주인공이 된 것은 차후 병역 특례 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야구 평론가. 블로그 http://tomino.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MBC 청룡의 푸른 유니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적시타와 진루타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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