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재인 첫 회를 보면서 제빵왕 김탁구를 떠올린 사람들이 많았다. 영광의 재인은 그때의 작가와 PD가 다시 뭉쳤으며 촬영지까지 같다. 영광의 재인 제작사로서는 제빵왕 김탁구를 연상케 하는 작가의 자기 복제가 싫지 않은 모습이다. 아니 그보다는 시청률 50%에 육박하는 초대박 드라마였던 제빵왕 김탁구의 영광을 재연하고 싶은 간곡한 바람을 엿볼 수 있는 것이 타이틀 영광의 재인에서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한다.

전작의 후광을 받아서인지 첫 회에 대한 호평이 주를 이루지만 이 드라마의 초반 분위기 잡기를 불안케 하는 요소 두 가지가 존재한다. 첫째는 드라마의 시작에서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 프로야구가 배경이라는 것이 호재일지 악재일지 두고 볼 일이다. 둘째는 시작부터 선과 악을 선명하게 그어놓은 흑백드라마에 천정명의 여전히 불안한 연기와 대사가 얼마나 해결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일단 영광의 재인은 영리했다. 많은 스포츠 드라마가 해결하지 못하고 시청자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 경기 재연이다. 경기 장면을 잘 그리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실제로 가장 큰 문제는 매번 관중석을 채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광의 재인은 관중이 없는 프로야구 2군을 무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중석을 텅 비워놓을 수 있다. 게다가 전보다 확실히 발전한 CG 덕분에 시원한 타구 장면을 보여줄 수 있어 야구광들에게도 흠 잡힐 일은 적어 보인다.

두 번째 문제는 아직 미지수다. 분노할 일이 무척 많을 것으로 보이는 천정명이지만 아직도 그의 눈빛엔 독한 무엇이 잘 잡히지 않았다. 로맨틱한 대사를 하기에는 별 무리가 없겠지만 재인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아간 손창민(서재명)과 이장우(서인우)를 향해 복수의 칼날을 품기에는 많이 느슨해 보였던 것이 천정명의 모습이었다. 다행히 전작인 신데렐라 언니에서 보였던 답답한 모습은 아니어서 영광의 재인을 통해 달라진 천정명의 불꽃 연기에 대한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그러나 첫 회를 통해 드러난 작지만 따지자면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혀 다른 데서 발견됐다. 작가가 야구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첫 회에 김영광과 관련해서 빈볼이라는 단어가 두 번 사용됐다. 그런데 정확히는 사구 혹은 데드볼이라고 해야 한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를 맞추는 결과는 빈볼이나 데드볼이나 마찬가지지만 이 둘을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니다. 빈볼은 단순히 타자가 1루로 걸어 나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최근 한화와 롯데전에서 빈볼로 투수가 퇴장당했던 일이 있었던 것처럼 빈볼이란 투수가 고의적으로 타자를 맞추는 행위이기 때문에 대부분 실투의 결과인 데드볼과는 엄격하게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인우가 김영광에게 “3게임 열타석 연속 삼진아웃에 유일한 출루가 빈볼?”하는 대사는 야구선수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 장면은 어린 시절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광이 생전 처음 야구를 하게 되는데 재명은 고의로 공을 맞추고는 “빈볼이니 1루로 걸어가라”고 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선악대결이 야구장에서 승부를 보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빼앗긴 재인의 회사를 되찾는 내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야구장을 떠나게 되겠지만 어쨌든 프로야구 선수를 배경으로 시작되는 드라마에 빈볼과 데드볼조차 구분 못하는 얄팍한 야구지식은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배우들은 몇 달씩 프로야구 선수로 보이기 위해서 특훈을 받았는데 작가도 그 정도의 열의를 갖고 야구를 공부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빵왕 김탁구가 느껴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 드라마에는 막장코드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결말에 가서 포장해줄 권선징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손이 오그라드는 이 단순한 공식에 한국 시청자는 항상 열광하는 편이다. 게다가 영광과 재인이 거대상사에 입사하여 근무할 허영도 팀을 구성하는 조연들의 포진이 웃기려고 작정한 캐스팅이다. 허영도 팀의 이문식, 김성오, 최승경 등의 이름만 봐도 의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허영도 팀은 주제의 무거움을 희석시킬 유쾌한 중재자 역할을 해줄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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