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주의 남자>가 끝난 이후, 또 다른 사극 <무사 백동수>가 막을 내렸네요. 요즘 사극을 보면 여러 가지 트렌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최근 2년간 방영된 사극들의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모아봤습니다.

주인공이 빛나지 못하는 사극

요즘 사극의 트렌드는 이상하게 주인공이 그다지 빛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을 통해 왜 요즘에 사극이 예전보다 인기를 끌지 못하는지 알 수 있지요. 바로 극을 이끌어나가는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에요. 요즘 사극을 보면 대체로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의 적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주목받든가 아니면 그 주변 인물이 더 인기가 많아서 사실 주인공이 묻혀버리는 희한한 징크스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선덕여왕> 같은 경우, 첫 50부를 "미실세주"로 하고 그 뒤 12부를 "다크 비담" 내지 "비담의 난"이라고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덕여왕"의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덕만공주가 주인공이었지만 이상하게 주인공이 빛나지 못한 일이 있었지요.

어제 종료한 <무사 백동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반 관심은 검선 김광택 (전광렬)과 미친 카리스마 천(최민수)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서 모든 관심이 여운에게 집중되면서 이 드라마의 제목이 "검선 김광택", "살수 여운"으로 바뀌어야 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요. 본 드라마의 제목은 <무사 백동수>인데 백동수(지창욱)는 존재감이 없네요.

<공주의 남자>의 경우 주인공 박시후와 문채원의 인기는 많았지만, 여전히 연기대상은 수양대군을 맡은 김영철에게 가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을 정도로 김영철이 카리스마를 보여줬습니다. 또 오랜만에 사극연기를 한 정종 이민우와 홍수현 역시 김승유와 세령을 능가하는 인기와 주목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밖의 드라마의 주인공들 역시 <추노>를 제외하고는 주인공이 환영받지 못하는 사극들이 상당히 많았지요. 전체적으로 주인공들이 너무나 매력이 없는 게 아쉽게 다가오는 점입니다.

대체로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들을 많이 배출했던 KBS 대하드라마가 이 부분에서 철저히 무너지고 있는데 <광개토대왕>, <근초고왕> 그리고 <천추태후>로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융통성이 없고 한 방향만 추구하는 다소 지루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주인공을 바라보는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백>의 계백도 그냥 일편단심 캐릭터일 뿐입니다.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는 광개토대왕이나, "백제를 위한다"하면서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하는 근초고왕이나 비슷비슷한 게 문제라고나 할까요? 안타깝게도 캐릭터의 전체 말투 자체가 변하지 않는 게 그 점을 시사하지요.

이미지가 180도가 달라지는 배우들

아무래도 사극은 출연하던 사람들이 다시 출연하게 되는데, 특히 요즘 사극에서는 그 역할이 180도 바뀌어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한 드라마에서 찌질이로 출연했다면 다른 드라마에서는 완전 멋있는 역할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면 찌질이의 종결자라고 할 수 있었던 <선덕여왕> 하종 역의 김정현은 <광개토대왕>에서는 다혈질이며 의리 있는 "돌비수" 역할로, 전장을 누비는 명장으로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웅인은 선덕여왕에서는 "미생"으로 출연해서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근초고왕>에서는 야심차고 강한 남성미가 있는 "위비랑" 역할로 나오고 있지요.

말도 타지 못하고 칼 한 번 잡지 못했던 춘추 역할의 유승호가 한국 제일의 살수가 되어 있고, 비겁하게 승부했던 석품랑의 홍경인은 <광개토대왕>에서 자신의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정의로운 연살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빴던 캐릭터만 착한 캐릭터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반대로 의로웠던 캐릭터들이 나쁜 캐릭터로 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천추태후>에서 끝까지 충실하게 죽는 대도수를 맡았던 최동준은 <광개토대왕>에서는 담덕을 대적하는 "개연수"의 역할을 많아 비열하면서도 치밀한 악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천추태후>에서 충신이었던 "최항" 역할을 맡았던 김하균은 <광개토대왕>에서 악랄한 가렴 성주를 맡아서 열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바뀌지 않은 배우들도 많고, 사극에서 캐릭터가 바뀌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몇몇 캐릭터는 전작과 극적으로 변화하기도 하고 연기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니,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고나 할까요?

역사 왜곡이 심한 사극들

사극은 역사를 기초로 한 드라마입니다. 사실 역사적 사실 그대로 만들기에는 재미가 없는 부분도 있기에, 가공의 캐릭터를 만들고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창조해 재미를 추구하는 게 사극일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극을 보면 역사왜곡이 어느 정도의 선을 넘어서 심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흔히 "사극의 역사 왜곡" 이야기를 하면 "그냥 재미로 봐라"라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허나 TV의 영향은 상당히 큽니다. 요즘 사극은 단순히 어른들만 보는 게 아니고 나이 어린 아이들도 보는데, 어린 아이들은 그러한 사극을 보면서 잘못된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선덕여왕 다음 왕이 진덕여왕이 아닌 춘추가 되는 것이고, 선덕여왕은 실제로 쫓겨나서 중국에서 살다온 여왕이며, 광개토대왕은 고국양왕의 둘째 아들이고 형이 죽어서 왕이 된 것이라고 오해하기 쉽지요. 천추태후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천추태후가 거란과 싸운 여전사로 오해할 수 있고, 흔히 고려 성종은 완전 못난 왕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재미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은 틀에서 사극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 10년 전의 사극도 어느 정도 가공된 인물들과 이야기를 포함시키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뼈대는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허나 지금은 아예 뼈대를 꺾어버리는 사극들이 나오기 때문에 TV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의 사극들도 흥미가 있고 깨알 같은 재미가 있습니다만, 정통 사극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최고의 아쉬움이네요. 요즘 사극을 자주 접하다보니 가끔 <용의 눈물>의 영상을 찾아보고는 하는데, 그 영상을 볼 때마다 "이게 진짜 사극이다"라고 생각될 만큼 미친 연기내공들이 느껴집니다. 물론 모두 <용의 눈물> 같이 만들 수는 없겠지만 요즘 사극은 그러한 무게가 없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

체리블로거의 나만의 생각, 나만의 리뷰! ( http://kmc10314.tistory.com/ )
해외 거주자의 입장으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세상으로 사물을 바라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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