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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촛불혁명’과 칠레 제헌 국민투표[강남규 칼럼]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 승인 2020.11.04 08:27

[미디어스=강남규 칼럼] 지난 10월 29일이 ‘촛불혁명 기념일’이었다고 한다. 10월 29일은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된 날이다. 한국 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촛불집회도 어느덧 4년이 지난 셈이다. 2016년 10월에 중학교 3학년이었을 학생이 성인이 될 만큼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촛불정신’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소환돼 왔다.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그렇다. 문 대통령에게 촛불은 “풀뿌리 민주주의”(2017년 10월)의 구현이거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2008년 1월) 요구였거나 “결과를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2008년 1월)에 대한 염원이었거나 “선거제도 개혁”을 소명으로 하거나(2019년 7월) “공정”(2020년 9월)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범위를 다른 정치인이나 언론으로 넓히면 촛불의 해석은 더 다양해진다. 좀 더 진보적인 판본도 물론 있고, 심지어 보수적인 판본도 존재한다(미디어오늘, “보수언론의 ‘촛불 보수화’ 프레임”)

무엇이건 쟁점이 뚜렷한 이슈를 주장할 때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명분으로 촛불이 동원돼 온 셈이다. 거대한 대중운동이 일어난 뒤에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저마다의 해석을 시도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지난 촛불집회는 이상할 정도로 그 해석의 스펙트럼이 넓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한 가지 가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의 주장처럼 촛불이 무언가(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보다, 오히려 주장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방향으로 전개됐기 때문은 아닐까. 촛불집회의 응집력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됐다. 단일하고 논쟁적이지 않은 주장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다. 촛불집회에서 유일하게 허용된 구호는 ‘박근혜 퇴진’이었다. 그 외에는 어떤 주장도 허락되지 않았다.

광장에서 촛불의 의미를 넓히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집회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다른 시민들의 손가락질에 부딪혀 빠르게 배제됐다. 촛불이 꺼진 주중에 ‘촛불 이후’를 준비하려던 시도들도 있었다. 예컨대 촛불의 성과가 대의민주주의 강화로 귀결되는 걸 우려한 한 단체에서 ‘시민의회’라는 대안적 기획을 내놓았는데, 이 기획은 “숟가락 얹지 말라”는 성난 목소리에 휩쓸려 금세 무효화됐다. 촛불집회에 개근하면서 바라본 그해 겨울은 늘 그런 식이었다.

새 헌법 제정에 찬성하는 칠레 시위대(연합뉴스)

이처럼 명확하게 어떤 가치 지향을 드러내지 못했으니 역설적으로 사후 해석의 공간은 활짝 열렸다. 집회의 성격을 확고하게 규정할 만한 구호가 없었으므로 특정한 해석을 부정할 만한 근거도 마땅히 없었다. ‘대표자 없는 시위’는 또한 역설적으로 모두가 주인행세를 해도 누가 나서서 그게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촛불집회에 대한 해석의 스펙트럼이 이토록 넓은 이유다.

어쨌거나 촛불집회는 자연스럽게 대선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촛불혁명’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아주 합법적이며 순조로운 권력 이양으로 일단락됐다. 문재인 정부가 종종 헛발질을 할 때마다 이러려고 촛불 들었냐는 원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것 외에 100만 시민이 촛불을 든 또 다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 겨울 광장에서 ‘또 다른 이유’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흐름의 정반대에 2019년 칠레의 반정부 시위가 있다. 흔히 지하철 요금 30페소(한화로 약 50원) 인상 정책에 반대하면서 터져나왔다고 알려진 이 시위는 요구의 폭을 넓혀가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지하철 요금’으로 시작된 시위는 결국 ‘칠레식 신자유주의’에 대한 전면 반대로 확대됐다. 상징적인 장면이 있다. 매일 의제를 바꿔가며 열린 릴레이 시위다. “29일은 연금, 30일은 세제, 31일은 통행료, 다음달 1일은 교육 개혁, 2일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한겨레신문, ‘양극화 분노’ 불타는 산티아고…“칠레는 깨어났다!”)한 것이다. 

그 결과 칠레 시민들은 ‘제헌의회’ 요구로까지 나아갔고, 시위로부터 1년여가 흐른 지난 10월 25일에 결실을 맺었다. 새 헌법 제정을 의제로 한 국민투표를 실시한 것이다. 투표 결과 78%의 찬성률로 제헌이 결정됐고, 79%의 찬성률로 시민대표로만 꾸려진 제헌의회를 구성하게 됐다(제헌의회를 기존 의원과 시민대표로 구성할 것인지, 시민대표로만 구성할 것인지를 물었다). 제헌의회는 남녀동수로 구성하고, 원주민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로써 칠레 시민들은 1980년 제정된 군부 헌법을 40년 만에 폐기하고 그들의 손으로 새로운 사회의 밑그림을 직접 그려나갈 수 있게 됐다.

새로 제정될 헌법의 내용은 아직 나온 것이 없지만 방향성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40년간 지배적인 방향이었던 신자유주의의 반대 방향으로, 불평등을 완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칠레 시민들이 지난 시위에서 그러한 가치 지향을 거침없이 드러냈기에 가능한 예측이다. 칠레 국민투표를 다룬 여러 기사들 역시 제헌의 방향성에 대해 일관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촛불의 의미’를 두고 4년째 설왕설래 중인 한국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결국 대중운동이란 어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쟁취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 사회에 또렷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촛불은 앞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했다. 하지만 뒤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다. 정치인들은 촛불의 의미를 제멋대로 해석해왔고 지난 4년간 우리 사회의 방향은 갈팡질팡했다. 촛불집회와 같은 거대한 대중운동이 다시 등장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그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칠레의 경험을 떠올릴 필요가 있을 것이다. 메시지를 남기는 데 성공한 운동은 오래 남아 한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씨앗이 된다는 소중한 경험 말이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운영위원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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