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수현 기자] JTBC가 조성길 전 주이탈리아 북한 대사대리의 입국 사실을 단독보도한 것과 관련해 경향신문·한겨레·동아일보 등 신문사들이 사설을 통해 일제히 비판을 가했다. 이들은 조 전 대리 딸이 북한에 송환된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입국 사실이 알려진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JTBC 보도를 에둘러 비판하면서도 “딸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을 범위에서 그의 이탈리아 내에서의 공작 활동 및 망명 경위 등 최소한의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JTBC는 6일 <2년 전 사라진 북한 외교관…"조성길 대사대리, 한국 정착"> 보도를 통해 조 전 대리의 한국행 소식을 전했다. JTBC는 “복수의 정보 관계자가 조성길 전 대사가 한국행을 선택해 국내에 정착했다고 확인해줬다”면서 “정보 당국은 신변 보호 등의 이유로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해주기는 어렵다고 했다”고 보도했다.
JTBC 보도가 나가자 당국은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사가 나와서 놀랐다”면서 “(보도) 경위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왜 기사화된 것인지 민감한 부분에 있어 평가할 바는 아니지만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8일 국정감사에서 “(조 대리의 한국행) 공개 여부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보도를 통해 접했다”고 밝혔다.
현재 조 전 대리 딸은 북한에 송환된 상태로, 조 전 대리 부부의 한국행 소식이 알려지면 가족들의 안위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주요 신문은 8일 사설을 통해 JTBC 보도를 비판했다.
한겨레는 <‘탈북 외교관’ 국내 입국 일방적 공개, 부적절하다> 사설에서 “조 전 대리대사가 한국에 들어온 사실이 1년 넘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북한에 있는 가족을 걱정한 본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서 “그의 동의 없이 입국 사실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것은 부적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을 정략적 관점이 아닌 인도주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조성길 북 대사 망명, 무분별한 정보 공개 안 된다> 사설에서 “조 전 대리 잠적 후 이탈리아에 있던 미성년 딸이 북한으로 송환됐다”면서 “이런 터에 조 전 대사대리의 한국 망명 사실이, 당사자 동의 없이 언론에 노출된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정보 관계자가 조 전 대리 한국행 사실을 의도적으로 유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경향신문은 “그의 한국 망명을 아는 것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국회 정보위원장 및 여야 간사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면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조성길 입국 공개, 보호돼야 할 정보 누설 경위 밝혀야> 사설을 통해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동아일보는 “정보가 노출된 것은 우리 정부가 탈북민 보호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면서 “정보가 노출된 경위부터 반드시 밝혀야 한다. 국민 알 권리와 탈북민 안전 사이에서 보도를 선택한 언론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근본적으론 그것을 최초로 누설한 자가 누군지 가려내 책임을 묻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조 전 대리의 입국 사실을 확인해준 국회 정보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국회 정보위 간사)은 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조성길 전 대사는 작년 7월 한국에 입국해서 당국이 보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동아일보는 “(국회 정보위 의원들에게) 탈북민과 가족의 안위가 걸린 사안을 사실로 확인해줄 자격은 없다”면서 “이번 기회에 국회 정보위원들의 비밀엄수 요건도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조성길 대사 망명, 최소한의 사실 공개가 바람직> 사설에서 JTBC 보도를 에둘러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안타까운 건 조 전 대사대리의 딸이 이탈리아에서 북한으로 끌려갔다는 대목”이라면서 “그가 대놓고 김정은 체제를 비난할 경우 딸이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른다. 망명 소식이 퍼지면 그를 노리는 북한의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썼다.
또한 중앙일보는 조 전 대리의 입국 사실이 공개됐기 때문에 정부가 최소한의 경위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딸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을 범위에서 그의 이탈리아 내에서의 공작 활동 및 망명 경위 등 최소한의 사실을 공개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망명과 관련된 중요한 뼈대는 이미 알려졌다. 망명 사실 자체를 숨겨봤자 남북관계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MBC 뉴스데스크는 7일 <함께 온 아내가 제보…"딸 있는 북한 돌려보내 달라"> 기사에서 “조씨 부부 귀순이 언론에 알려진 건 조씨 아내 측의 제보 때문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MBC 보도에 따르면 조 전 대사 부인은 지난달 초 ‘딸과 가족이 있는 북한에 보내달라’는 의사를 몇몇 언론사에 제보했다. JTBC가 조 전 대사 부인의 제보로 관련 사실을 인지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조 전 대사 부인은 JTBC 보도에 대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보도인지 모르겠다. 살기 힘들다. 조용히 있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