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우남 이승만박사 45주기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이 분향후 고개숙여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의 여의도동 18번지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놓고 갑론을박 말이 많다. 아직 방송 조차 안 된 다큐멘터리다. 바로 '이승만'이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어디에겐 건국의 아버지고, 어디에겐 반민주 반민족 독재자에 불과하다. 나로선 후자다.

KBS가 직접 꾸린 자문단에서 "이승만 다큐는 A플러스"란 결론을 내렸단다. 보도에 따르면 자문단은 김규 전 서강대 교수(한국방송학회 초대회장),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송해룡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차기 한국방송학회장), 강대영 전 한국방송 부사장(다큐멘터리 10부작 한국전쟁 제작), 김옥영(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 등으로 구성됐다.

나는 저 자문단 가운데, 단 한 사람 정도 알 뿐이다. 그것은 '뜨악'할 정도의 의외다. 그가 어떤 식으로 자문단에 들어가게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아는 그가 이승만 다큐에서 '균형'을 읽었다면 나는 그의 판단을 신뢰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사건의 내러티브나 줄거리 또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의미들이 물질 내용이라면, 진리내용은 이런 표면적인 상황들이 숨기고 있는 '심미적 진실'을 의미한다. 이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경험에, <독일 애도극의 기원>을 쓴 발터 벤야민의 알레고리론을 얹어 본 것이다. 벤야민은 '저기'보다 '여기'에 주목한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진리내용이나 물질내용중 어느 한 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진리내용과 물질내용 그 사이에 조성되는 '긴장' 그 자체가 된다.

하여, 비평은 주석이나 비판이 아니다. 긴장 자체를 일체의 첨삭 없이 그대로 '그려내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승만에 대한 내 관점은 분명 '반민족 반민주 독재자'다. 그렇다 하여 이승만에 대한 다른 관점을 들어줄 귀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이승만 다큐에 대한 비판의 시점은 분명 이해하고 또한 공감한다. 허나 우리는 지나친 진영논리의 늪에 빠진 건 아닐까?

'저기'보다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승만이란 다큐 시리즈에 표면적으로 드러난 물질 내용 보다는, 표면적인 것들이 숨기고 있는 '심미적 진실'을 읽어내는 서늘함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항일운동 단체에서 반대 집회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근데 학계와 언론계에서 이를 놓고 자신의 정치적 입장만 견지한 채 왈가왈부하는, 혹은 선동가적 자세로 말을 던지는 것은 가히 저들(신서북청년단과 어버이연합)과 다를 게 하나 없어 보인다.

이번 이승만 다큐에 대한 자문단 관련 기사에서, 우리가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자문단이 아니다. 'KBS가 직접 꾸린'에 있다. 이는 다른 쪽에 있는 이들이 지닌 현 KBS 경영진과 제작 실무진에 대한 불신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자문단을 꾸린 KBS를 믿는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연'에 의한 인간적 신뢰란 비과학적인 배경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것은 자문단을 꾸린 주체였을 조인석 다큐제작국장과 자문단의 일원인 김옥영 방송작가 협회 이사장에 대한 신뢰다. 최소한 방송 실무자라면 이 두사람에 대해선 정치적 입장을 떠나 상당한 존경과 신뢰를 보낼 것이다. 이는 올바르지 못한 대인논증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지점이다.

방송학자인 전규찬은 자신의 페북 덧글에 이렇게 썼다. "너무나 의외의 사람도 거기 한테 있어, 대체 어떤 뜻으로 참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문가'의 냉정함으로 제도의 포섭망조차 뚫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인지.."

나로서도 의외의 사람이 있었듯이 전규찬에게도 의외의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그 의외의 사람에게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전규찬은 의외라고 여긴 인물에 대해선 '전문가의 냉정함'이란데 비판의 방점을 찍고 있다.

즉 '나'는 비과학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고 '전규찬'은 그 지나친 전문가적 합리성(냉정함)에 비판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나'나 '전규찬'이나 과학적이지 못하다. 그런데 두 사람의 결론은 다를 것이다. 나는 이렇다. "이승만 다큐를 틀어라. 그리고 비판하자. 아니 비평하자."

아직 나오지도 않은 태아를 기형이니 정상이니를 놓고, 큰 주사를 임신부의 배에 꽂아 '양수'를 뽑아내는 것과 뭐가 다른가? 양수 검사를 통해 정상으로 나오면 임신을 유지하는 것이고, 기형이면 중절 수술을 하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우리는 '기형'도 생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마찬가지다. 아직 방영되지도 않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공포의 에이리언이 나오든 아니면 어설픈 기형이 나오든 그냥 놔둬라.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면 치료하자. 태어나기도 전에 양수 검사를 하여, 기형이란 진단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관심법으로 확신범 잡듯, 우리 스스로 그 아이를 괴물이라 여기는 것은 또 다른 살인행위다.

고백하지만 나는 '기형'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낳자'가 내 주장이다. 그리고 자문단 가운데 내가 아는 단 한사람이 '균형'이라 자문을 했다면, 나는 그가 언급한 '균형'을 이승만 다큐에서 기대한다. 서늘해지자.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