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 1위로서 전통적 뉴스 강자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받는 평가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싸늘한 상황입니다. KBS가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단체가 편향성 논란을 제기했다’며 귀를 닫고 있는 가운데, KBS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선 KBS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디어스>는 익명의 KBS 기자로부터 직접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신랄한 비평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익명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즐감’ 부탁드립니다!

익명으로 글을 쓴다는 것이 자유로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역시 괴로운 일이다. 이 연재를 청탁 받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런저런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익명으로 연재를 하기로 했다. 딴에는 익명으로 쓰면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이해관계’나 ‘나라는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선입견’ 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다는 계산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내 계산은 틀렸다.

▲ 7월 6일자 <한 KBS기자의 찌질한 생존기 3편- 도청을 파헤친 기자, 도청을 한 기자>에 대해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답장 형식의 글을 19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했다.

저번에 쓴 도청과 관련된 글은 타이밍이 비교적 핫하게 맞아 떨어져서 여기저기 언론에서 인용이 됐다. 정연주 KBS 전 사장은 오마이뉴스에 ‘익명의 후배에게’라는 편지글까지 썼다. 이러다보니 KBS 보도국 편집회의 시간에 “이런 식의 익명의 글은 현 상황에서 KBS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물론 내 글이 ‘현 상황에서 KBS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는 반대하지만 역시 부끄러운 일이었다. 기자라는 者가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글을 쓰고, 그 글이 마치 KBS의 양심 있는 기자를 대변하는 식으로 재인용이 되는 우스운 상황이 됐다. 쯧쯧쯧. 기자가 할 짓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이름을 밝히는 것도 우습게 됐다. 무슨 대~단한 독립투사 나신 것 마냥 내가 이 사람입네하고 떠드는 것도 자존심이 상한다. 딜레마다.

어쩔까 고민을 해본다. 딱히 답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다만 스스로 약속을 해본다. 익명으로 쓰지만 실명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팩트를 기술할 것. ‘자유롭게’ 쓰는 만큼 KBS와 KBS 기자 사회에 대해서 더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가질 것, 그리고 이 글들의 책임은 결국 실명인 ‘나’라는 것. 그래 이 정도로 자기 합리화를 빙자한 넋두리는 마무리한다.

요즘 도청 사태와 관련해서 KBS 보도본부와 정치부는 대외적인 입장을 내면서 ‘언론 자유 수호’와 ‘취재원 보호’라는 고상한 말을 사용했다. 두 개념 모두 학교 다닐 때 학점 받기 위해 들었던 언론학 개론 수업에서 여러 차례 들었던 말이다. 입사 시험을 위해서 주입식으로 암기했던 개념들이다. 물론 기자 생활을 하면서는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뭔가 좀 어색하다. ‘고상한’ 말이긴 한데 지금 상황과 어울릴까. 먼저 ‘언론의 자유’. 이 개념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언론·출판의 자유는 개인의 의견이나 사상을 외부에 발표하는 자유”(네이버 백과사전) 라고 나온다.

지금 KBS가 도청 의혹에 휘말릴 당시 국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뒤돌아보자. KBS가 6월 30일 <긴급 입장>에서 밝혔듯이 “KBS는 수신료 문제의 당사자로서 이와 관련된 국회 논의를 적극적으로 파악”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밖으로 샜고 (도청의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KBS는 적어도 ‘제3자의 도움으로 이 내용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한선교 의원은 이 내용을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입수했는지는 모르지만) 공표했다.

KBS가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취재한 이유는 이미 밝힌 대로 ‘수신료 문제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최고위원회는 비공개 회의였기 때문에 여기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는 방송에서 보도할 수 없었다. 이 취재는 이른바 ‘정보보고’用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민주당이 수신료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는가를 미리 알아서 대응하려는 것이었다. 결국 보도가 아니라 수신료 인상이라는 KBS의 이익을 위해서 취재를 한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자유’라는 말이 들어갈 틈은 없다. 흔히들 하는 말로 언론의 자유가 곧 언론사의 자유, 언론인의 자유와 등가로 취급될 수는 없다.

다음, ‘취재원 보호’. KBS 정치부는 지난 7월11일 낸 공식 입장에서 “언론자유 수호와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의 대원칙을 지키기 위해” 민주당 회의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 제 3자를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취재원 보호’. 참 가슴 벅찬 말이다. 기자들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감옥에 갈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취재원 보호는 고해성사를 받은 신부의 의무와 같은 것이다 등등. 기자들의 겉멋은 좀 포함돼 있을지 모르지만 취재원 보호에 대한 믿음은 진지하게 신성에 가깝다.

KBS 정치부도 여기에 해당될까? 여기서도 백과사전의 도움을 좀 받아보자. “취재원의 비밀이 언론인의 직업윤리로서 일반적으로 승인되는 것은 취재대상이 되는 사람이 기자의 윤리적 의무의 보증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기자에게 진실을 말하고 그 취재활동에 협력할 수 있으며, 반대로 기자는 자유로운 취재가 보장되어 진실하고 정확한 보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핵심은 ‘진실하고 정확한 보도’이다. 진실하고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 취재원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취재원 보호는 결코 천부‘기자’권이 아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날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정확하게’ 취재하는 것이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것이었나? 아니면 수신료 인상을 위해 ‘적군’의 동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스파이 활동이었나?

결국 지금 KBS는 수신료 인상을 위한 ‘회사조직원’의 활동을 ‘기자의 취재와 보도 활동’으로 포장해 이 난국을 돌파하려는 꼼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부르고 꼼수는 꼼수를 재생산한다. 4차례나 낸 회사의 입장은 오히려 불신과 의혹만 증폭했고, 경영진 자신들과 정치부뿐만 아니라 KBS 전체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고대영 KBS 보도본부장이라는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우리 기자를 믿는다”고만 되풀이한다. 아니, 자기가 기자들을 믿으면 문제가 해결이 되나. “나는 우리 기자를 믿는다”는 문장이 시청자들을,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가. 여성들이 남자 친구에게 흔히들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너의 가장 큰 잘못은 네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회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언제나 수사 중이니 기다리자고 한다. 뭘 기다리나. 경찰이 면죄부를 줄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인가. 설령 경찰이 면죄부를 준다 하더라도 KBS 로고 바로 위에 빨갛게 찍힌 ‘도청 방송국’이라는 주홍글씨가 지워질 성 싶은가. KBS 경영진이 기자들을 믿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고 있는) 동안, 경찰 수사를 기다리는 (척하면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동안 KBS라는 조직은 ‘신뢰’라고 부르는 가장 기초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언론사로서 금치산자 선고를 받기 일보 직전이다.

하지만 KBS 기자들은 여전히 무력하다. 얼마 전에 기자들이 등장하는 ‘모비딕’이라는 영화를 봤다. 기자들이 거악과 맞서 싸우는 전형적인 음모론 영화다. 경찰들에게 돈까지 먹여가며 취재를 하는 이른바 ‘구악’ 기자가 주인공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 기자는 기자가 뭘 해야 하고 뭘 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고 있다. “기자는 결국 기사를 쓰는 사람”이라는 아주 당연하지만 쉽게 잊고 사는 어구를 몸으로 아는 기자다. 마음이 불편해서 몰입이 안 된다. 물론 영화지만 저들은 저렇게 치열하게 사는데 현실은 이게 뭔가. 영화가 끝날 무렵 배우 김민희가 역할을 맡은 (딴 소리지만 김민희 연기 참 잘한다.) 신참 기자가 취재를 하다하다 넘을 수 없는 벽에 부딪히자 이렇게 말한다. “우리 기자잖아요.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요?” 아무 맥락도 없이 눈물이 왈칵 흘렀다.

KBS라는 언론사가, 그래도 한 때 신뢰도와 영향력으로, 혹은 권력에 대한 날선 칼날로 각인됐던 방송사가 이렇게 무너지는 꼴을 그대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젊다는 이유로 혹은 젊다는 책임으로 기자들과 피디들이 성명을 썼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KBS는 작은 미래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그래서 반드시 내부에서 마무리해야한다. 결자해지라는 상투적인 사자성어는 이럴 때 쓸 수밖에 없는 말이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경찰 수사에서 하나씩 하나씩 뭔가가 나오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더 가관은 이번 사태를 개인 기자에 대한 의혹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결코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에서 취재가 아닌 스파이 활동과 협박을 지시한 경영진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KBS가 죽느냐 사느냐 이제 그 갈림길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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