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한 나라에서 1박2일이 와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1박2일 제작진은 이에 대해서 스케줄 등의 문제로 어렵다는 뜻을 정한 것으로 보도됐다. 정말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1박2일 제작진에게 중앙아시아 특집을 재검토해주길 강력하게 요청하고 싶다. 남극도 간다는데 중앙아시아에 못 갈 이유는 없다. 중앙아시아의 의미를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이미 세계 유수의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볼만큼 다 본 남극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여행이 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해외에 산재된 동표들은 모두 자발적 이주라고는 할 수 없다. 모두가 고난의 역사가 만든 슬픈 역사이다. 재일동포, 연변 조선족 그리고 고려인(까레이스키) 누구 할 것이 모두 마찬가지다. 특히 고려인의 경우는 다른 해외동포와 달리 하나의 아픔을 더해야 했다. 간도지역에 살던 우리 민족이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척박한 땅 중앙아시아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민족의 끈기와 근면성을 살려 땀과 눈물로 신화를 이루게 된다.

▲ 김병화 동상과 타쉬켄트 시장의 고려인(출처. 네이버 블로그 비행청년)
그러나 소비에트 연방일 때도, 그 후 독립을 이룬 후에도 여전히 고려인들은 소수민족일 수밖에 없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 시절 김병화 농장으로 대표되는 고려인들이 만든 협동농장들은 이후 현지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고려인이 조선족처럼 대거 한국으로 돈 벌러 나온 것 때문이 아니라 다수 민족에게 애써 일군 신화를 빼앗긴 것이다. 몇 년 전 중앙아시아 몇 나라를 갔을 때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김병화 농장을 찾았으나 막상 현지 고려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자랑스러운 과거보다 현실의 상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재도 김병화 농장에 고려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저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일 뿐 대부분 우즈백인들로 채워졌다. 물론 당연히 우즈백 독립 후 젊은 세대들의 도시 탈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에 농장에 주어지던 각종 지원이 끊긴 데다가 농장의 작물도 국가가 강제로 매수하면서 고려인들이 농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구조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소련 시절 협동농장이었던 고려인 농장들이 장기임대방식으로 바뀌면서 고려인의 자치체제를 흔들었다.

또한 김병화 농장이라는 이름도 박물관으로만 남아 있을 뿐 현재의 농장이름은 전혀 다른 우즈백어로 바뀐 상태다. 황량한 동토를 일궈 젖과 꿀이 흐르는 농토로 바꿔버린 고려인의 위대한 노력이 점차 역사의 한 줄로 퇴락해버리고 있는 것이다. 방문 당시 고려인들의 가장 큰 걱정은 민족교육에 대한 어려움이었다. 외교부 산하 해외동포재단이 있기는 하지만 예산의 대부분을 일본 민단에 주고 있는 형편이어서 국내적으로 관심이 적은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에게까지 혜택이 닿지 않는다.

비록 고려인의 수가 재일동포나 연변 조선족만큼 되지 않는 소수라고 해도 그들은 엄연히 우리와 같은 동포이며, 강제이주의 수난사를 협동농장이라는 신화로 바꿔놓은 자랑스러운 전사들이다. 한민족 전부가 같은 땅에서 살 수 없는 아픔의 민족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동포애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이 요구된다. 그러나 신문에 잠시, 시청률 낮은 다큐멘터리에 잠깐 다뤄서는 그 효과를 얻기 힘들다.

1박2일이라면 지금까지의 어떤 노력보다 아니 모든 노력을 모두 합한 것 이상의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다. 1박2일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들이 지난 곳은 모두 명소가 되고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특히 이번 요청이 고려인 단체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국가관광청이 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려인들이 모국에 어떤 온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기에 1박2일이 고려인들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 사마르칸트.출처 위키미디어
1박2일 여행이 단지 경치 좋은 곳을 찾는 것만은 결코 아니다. 여행의 으뜸은 역시 사람이다. 1박2일이 그저 산과 강만 쫓아다녔다면 지금의 명성은 절대로 얻지 못했을 것이다. 1박2일의 소위 명작들에는 항상 사람 이여기가 있다. 한 세기 넘게 소외되었던 고려인들과 1박2일 멤버들이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다면 현재 고려인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중앙아시아의 동포들을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경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비한 사막의 도시 사마르칸트가 있다. 이곳 사마르칸트는 먼 신라인들의 실크로드의 중간지로서 역사적 의미도 있다. 또한 우즈배키스탄 수도 타쉬켄트 시장에 가면 한국 반찬을 파는 많은 고려인을 만날 수도 있다. 1박2일이 사할린과 우토로 역시도 여행지로 검토했었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물론 사할린이건 중앙아시아건 예능이 접근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능에 시사가 담기고, 다큐가 담길 때 시청자는 더욱 환호한다. 웃자고 가서 눈물 크게 한 바가지 담는 것도 국민예능 1박2일이 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닐까 싶다. 그로 인해 1박2일은 국민예능을 넘어 민족예능으로 성장하는 계기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해외에서도 1박2일은 안보고는 못 배기는 프로가 아닌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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