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스페셜이 한국 록음악을 조명했다. 물론 그 실마리를 풀게 한 것은 나가수 신드롬의 가장 폭발적인 수혜자 임재범에 대한 관심이었다. 어떻게 그들은 80년대 록음악을 했고 또 왜 90년대 머리를 자르고 연예인의 길을 걷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다시 2010년을 맞아 록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록의 부활 조짐에는 전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티비 예능이 그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의 자격의 국민할매로 2년 그리고 위대한 멘토로의 몇 달이 김태원과 부활에게 다시 라이브 무대를 돌려주었고, 나는 가수다라는 예능을 통해 임재범은 고작 1만 2천 원짜리 중국집 배달세트를 일 년에 두 번이 아니라 지금은 언제라도 사랑하는 딸에게 사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들보다 먼저 예능을 통해서 록의 정신, 로커의 자존심을 (희화된 면도 있지만) 줄곧 외쳤던 이는 시나위 보컬 출신 김종서이다. 김종서 역시도 예능을 통해서 자신에게 노래할 무대가 보장됐었던 기억을 숨기지 않았다.

한편 시나위, 백두산 그리고 부활 등 80년대에 탄생한 밴드와는 달리 현재 홍대 클럽을 중심으로 인디밴드가 언더그라운드를 이끌고 있다. 또한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조용히 진행되고 있지만 밴드들의 서바이벌 TOP밴드가 방송되고 있다. 이쯤 되면 2011년을 록 음악이 부활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바는 없을 것이다. TOP밴드가 예선의 산만함을 극복할 본선무대로 접어들면 지금보다는 분명 화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 그래야만 록의 부활이 좀 더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백억 대의 가치라는 수식어로 기사에 등장하는 임재범, 다양한 예능 출연과 몇 개의 CF를 통해 가장 부유한 로커의 자리에 선 김태원 그러나 이런 모든 현상들이 단지 보컬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은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지미 핸드릭스,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백 등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들과 달리 한국의 기타리스트들은 보컬에만 쏠리는 대중의 편식성에 여전히 외롭고 배곯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태원의 예능 입성과 함께 보컬이 아니어도 아니 보컬이 아니기에 밴드 전체가 살아나는 계기를 삼을 수 있었다.

MBC 스페셜 취재에도 드러났지만 보컬이 주목받는 현상은 오히려 밴드에게는 위험한 일이었다. 이승철, 김종서, 임재범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밴드를 떠났고 그리고 대중과 록 음악과의 거리도 멀어졌다. 보컬이 떠나면 밴드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이승철이 떠나고 거의 십 년 부활과 김태원이 공황에 가까운 시기를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밴드를 떠난 보컬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해도 밴드에게는 아무 혜택도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 기타리스트인 김태원이 예능을 통해 주목을 받게 되자 그의 밴드 부활은 전국 순회공연을 모두 완판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결국 록음악 전반이 살기 위해서는 보컬보다는 연주자들이 떠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가능성은 예능을 통해서 확인됐다. 김태원이 그랬고 무한도전마저 정재형이라는 뮤지션을 예능 블루칩으로 띄워놓았다. 다만 그가 당장 예능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고 국내의 뜨거운 관심을 짐짓 모른척하며 파리로 훌쩍 떠나버렸지만 그가 없다고 해서 파리돼지앵에 대한 열망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구체적인 픽업 구도는 예능PD들의 몫이지만 어떻게든 그가 예능에 출연한다면 국민할매에 이은 예능스타의 자리를 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뮤지션의 예능행이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번 무한도전 가요제를 통해 많이 누그러지기는 했어도 리쌍으로는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인정받았지만 예능에 와서는 비호감 대표 캐릭터가 된 길의 경우도 존재한다. 현재는 무도 가요제의 여파로 길에 대한 시선이 부드러워졌지만 그 여운이 가실 즈음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이다. 그런 경우 때문에 정재형이 예능에 뛰어들기를 저어할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어쨌든 국민할매 김태원이나 무리수 길이나 모두가 예능이 가진 불가사의한 힘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불안하다. 그 점은 비아이돌 음악이 대세를 장악한 현상 역시도 마찬가지다. 임재범은 물론 나가수로 인한 실력 있는 가수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모든 찬사가 쏟아지고는 있어 정말로 대중이 음악적 취향이 진지한 쪽으로 변한 것만 같지만 딱히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나가수가 가수가 중심이고, 노래가 전부인 것 같아 보여도 음악프로가 아닌 예능 프로인 까닭이다.

그래서 임재범이 나가수에 아주 강한 인상만 남기고, 그의 콘서트에 사람이 몰릴 정도의 존재감만 보이고 하차한 것은 우연일지라도 대단히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가 말한 록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고, 더 이상 예능의 힘에 기대지 않고 오직 음악의 힘으로 대중을 설득하려는 각오도 엿볼 수 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이미 임재범은 록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에 그의 성공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거기다가 나가수에서는 로큰롤 베이비 윤도현이 여전히 활약하고 있고, 부활 역시 꾸준히 콘서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 록음악이 80년대 이후 다시 주류 장르로 인정받을 희망을 보게 됐다. 그 중심에 오랜 세월 배고픔과 고독에 쉽게 타협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한 끝까지 견뎌낸 록의 대부 임재범이 있어 다행이었다. 나가수가 분명 잘못하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장르 하나를 주류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굳이 칭찬을 아낄 필요는 없다. 많은 예능스타가 만들어졌다. 그들 중에는 본업을 포기하고 예능에 완전 흡수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예능에서 얻은 인기에 침식되지 않고 자신의 본연인 음악으로 승화하려는 노력은 역시나 로커들에서 더 강해보였다. 그만큼 더 절실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예능은 록음악이 아닌 로커 중 일부를 선택했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본능인 록을 잊지 않았기에 단순히 예능스타가 아닌 록음악의 부활이라는 화두를 만들어냈다. 수십 년 음악을 해도 무명인 사람을 스타로 만들어내는 예능은 정말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에 눌리지 않고 초심을 지켜낸 로커들의 흔들리지 않는 의지는 더욱 위대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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