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소셜테이너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한 가지는 그들의 스타성을 ‘활용’하여 최대한 클릭수를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봤자 ‘연예인’에 불과하니 ‘쇼’ 이상의 무언가는 하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를 늘어놓는 일이다. 당연히 그 둘 어디에서도 소셜테이너가 목 놓아 외치는 무언가에 대한 심층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김여진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가 울먹이며 외치는 한진 중공업에 대한 이야기, 고공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진숙님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정황을 소개하기 위한 곁가지일 뿐 언론이 주목하는 건 그저 그녀가 ‘배우’라는 점이다.

▲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의 모습. ⓒ 김둘례 오마이뉴스
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진보 언론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진숙님이 이토록 오랫동안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진보 언론의 1면에 그녀의 이야기가 올라가는 것을 본 기억이 나는 없다. 모든 신문을 매일 일일이 찾아보지는 않았기에 어쩌면 한두 번은 1면에 등장한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현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보다 그녀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다뤄졌던 기억이 내겐 없다.

그러나 김여진님이 그녀에게 주목하자 갑자기 한진 중공업 이야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러한 언론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가 굳이 직접 그곳까지 가서 마이크를 잡고 호소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포커스는 김여진에게 있고, 과연 그녀가 향후 어떠한 법적 처리를 받게 될 것인지, 받는다면 그녀는 어떠한 입장을 취한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오래전부터 생각하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언론은 ‘정상’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자본으로부터 종속되거나, 포털로부터 종속되는 식의 구조적 문제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거의 모든 언론이 어떠한 일이 벌어졌을 때 가장 핵심적인 것이 무엇인지, 어떠한 것을 포인트로 삼아야할지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데 있다. 수구언론의 경우야 그럴만한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외의 언론 특히 진보언론의 경우엔 수구언론의 의도를 반박하기 위한 것 이외에 딱히 어떠한 철학이나 방향성이 읽히질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억울해 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과연 사람들이 ‘김여진’에 대해서 더 많은 기사를 접하는지, 아니면 ‘한진 중공업’에 대해 더 많은 기사를 접하는지 말이다. 김여진에 대해 더 많은 ‘감정 이입’을 하는지, 아니면 김진숙에 대해 더 많은 감정이입을 하는지 한번 냉정하게 따져 보자. 그리고 과연 거기에 대해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광우병 촛불 집회 때도 그랬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국산 소고기’지 ‘미국산 소고기 반대 촛불집회’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촛불 집회가 지속되고 지속되지 않고와 상관없이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이 되고 있는 한 끊임없이 관련 기사가 비중 있게 나와야 한다. 등록금 촛불 집회 역시 마찬가지다. 핵심 문제는 과도한 등록금이지 거기에 대해 반대하며 나온 대학생이나 소셜테이너들이 아니다. 물론 용기 있게 나온 학생들과 소셜테이너들은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그들이 나온 이유 역시 ‘등록금’ 그 자체가 아니던가?

▲ 배우 김여진씨가 15일 오후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열린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서 161일째 농성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무사히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게 해달라며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향해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노동과세계 이명익 제공)
아마 김여진님이 법적인 절차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게 되면 한진 중공업 관련 기사는 줄어들고 김여진님 이야기만 졸졸 따라가는 식으로 기사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오히려 수구 언론들이 사측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기사들로 채워 넣을 것이기도 하고…

조금만 생각을 바꿔 보면, 그러니까 언론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아젠다 세팅’이란 것에 즉자적으로 충실하려고만 마음먹으면, 그래서 ‘무엇이 뉴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서 원론적으로 생각을 해 보면 ‘기사가 되는’ 무언가가 아니라 ‘되는 기사’에 매몰되어 있는 언론의 일그러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너무나 젖어 있는 모습, 그래서 이제 그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모습, 거기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에 발끈하는 모습 말이다.

그래서 정작 자기 자신이 ‘냄비’인 줄은 모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금세 중요한 사실을 잊는 ‘냄비 근성’이 있다며 혀를 끌끌 차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어떠한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그거야말로 우리나라 ‘모든 언론을 부담 없이 매도하며’ 말할 수 있는 일반론이다. 아마 그래서 김여진님이 인터뷰 때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트위터를 보니까, 정말 세상의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 올라와요. 힘들고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올라오고… 그게 기사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목소리로 바로 들려요”

나는 ‘기사가 아니라…’는 말이 자꾸 귀에서 맴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직무 유기’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고 나 역시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의감도, 이념도, 정치 성향도 아닌 그저 ‘직무 유기’ 말이다. 밥값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말이다.

http://mongu.net/801 옆의 링크에 가면 위 내용 이외에도 왜 그녀가 사회 참여 활동을 하게 됐는지 그 이야기가 자세하게 인터뷰로 나와 있다. 그나마 미디어몽구라는 개인 블로거가 그 어떤 언론도 제대로 다루지 않은 그녀의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담아 낸 것이다. 물론 그녀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언론이 서로 다른 입장으로 나눠 다투는, 그러니까 ‘투사’나 ‘쇼’ 어느 쪽도 아니다. 그녀는 스스로 외롭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임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한진 중공업 이야기는 정 메인으로 못 다루겠고 어쨌거나 ‘되는 기사’인 김여진님 이야기를 꼭 해야겠다면 그거라도 좀 제대로 담아냈으면 좋겠다. 황의건이니 뭐니 따위가 아니라 ‘외롭기 싫어 시작한 사회 활동’이란 제목이나, ‘다른 이들의 고통을 보니 나의 고민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라는 제목이 달린 1면 기사를 부디 트위터가 아닌 ‘언론’에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EBS <지식채널e> 전 담당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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