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의 등장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남자의 자격이다. 작년 박칼린 충격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데다가 김성민의 악재까지 겹쳐서 한때 1박2일의 시청률까지 넘볼 정도였던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나가수가 등장해서 남자의 자격이 분명 큰 타격을 입은 것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찾아올 위기였다. 전 국민을 넬라판타지아와 박칼린 열풍으로 몰아간 합창편은 분명 남자의 자격의 히트상품이다.

그러나 합창편에 남자의 자격은 극히 작은 일부분이었다. 마라톤 편처럼 남자의 자격 멤버들이 땀과 눈물로 만든 것도 아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넬라판타지아 열풍의 작은 조연도 차지하지 못했다. 박칼린을 위시해서 배다해, 선우 등의 남자의 자격이 배출한 스타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정작 주연들이 아무것도 못했다. 합창편이 순항하는 동안 시청률과 호감도는 올라갔지만 정작 남자의 자격의 존재감은 작아지기만 했다.

더 안 좋은 것은 이후 한국은 더욱 본격적으로 오디션, 서바이벌 열풍에 휩쓸리고 있다는 점이다. 남자의 자격 정도 성장했으면 새로운 트렌드에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데, 유독 타격이 크고 흔들림이 현저하다. 그리고는 뭘 해도 먹히지 않는 지루한 예능으로 전락하고 있다. 김성민 대신 양준혁을, 자진 하차한 이정진 대신에 전현무를 긴급 투입했지만 균열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자의 자격으로서는 침체 국면을 전화하기 위해 큰마음을 먹고 호주로 떠났다. 그러나 쫓기는 마음에 준비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은 지난 몇 주간의 화면을 통해서 여실히 드러났다. 제목은 배낭여행인데 실제로는 그냥 자동차 여행이다. 배낭여행이건 자동차여행이건 재미가 있거나 아니면 감동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재미도, 감동도 전해주지 못하고 있다.

역시나 애초의 계획대로 배낭여행을 했어야 했다. 12일 방송분에서 그나마 재미를 주었던 팀은 김태원 쪽이었다. 예능대부 이경규보다 예능을 잘 하는 누가 있지도 않은데 김태원, 양준혁 예능 초보들이 보여준 것은 예능보다는 여행의 재미였다. 굳이 배낭여행이 아니더라도 여행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낯선 곳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잠깐 동안의 인연이 여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의 자격은 배낭여행을 빙자한 자동차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었다.

반명 이경규, 김국진이 있는 벙글벙글 팀은 PD 말처럼 글썽글썽 팀이 되고 말았다. 좁은 차 안에서 그들의 별로 재미없는 대화 말고는 건질 것이 없다. 급기야 깊은 물을 지나다 생긴 작은 사고에 이경규, 김국진의 감정적 대립을 여행의 필수 요소라고 크게 다뤘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반드시 담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날 밤 두 사람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에도 역시 덤덤했다. 갈등을 보였으면 화해는 필수적이었다. 결국 김국진을 못된 후배로 만들기만 했다.

그토록 화해의 장면이 급하게 필요한 것은 남자의 자격이 가진 특징 때문이다. 이경규가 승승장구에 나와서 예능의 끝은 다큐라고 말할 수 있었던 배경은 남자의 자격에서의 경험이 컸을 것이다. 남자의 자격은 무한도전이나 1박2일 식의 재미가 아닌 거의 다큐적인 감동의 재미가 컸다. 마라톤이 그랬고, 지리산 종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합창편이 그렇게 성공하게 된 것은 역시나 웃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만일 좁은 차 안에 갇힌 여행이 아니라 짧은 거리라도 진짜 배낭여행을 했다면 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짜증을 낼 새도 없이 아주 많은 이야깃거리와 재미를 주었을 것이다.

지난 강의 편에서 이경규와 김국진의 이야기가 어떤 명강사들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처럼 4,50대의 두 개그맨이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면서 맞는 상황들은 여행의 참맛은 물론이고 재미도 200% 보장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자동차 안에 가둔 것이 이번 여행의 근본 실수이고, 침체를 모면하러 갔다가 오히려 팀워크만 해친 꼴이 되고 말았다. 연예인들이 9박10일의 스케줄을 잡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너무 많은 투자에 비해 남자의 자격이 호주에서 얻어올 것은 너무 작아 보인다. 그 좋은 기회도 살리지 못한 제작진의 무능이 안타깝다. 벙글벙글 팀이 빠진 곳은 대형물길이 아니라 실패한 기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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