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가 울었다. 수많았던 감동의 시상식대에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강심장 김연아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연기를 마치고는 서있을 수도 없을 정도의 통증에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피겨로 완벽하게 연기한 김병만은 심사위원들과 짧은 몇 마디를 나누는 동안에도 통증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발목인대 부상으로 급기야 진통제 주사를 맞고 링크에 오른 김병만은 결국 마지막에 실수를 했지만 그의 연기와 열정은 즐거움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김병만은 어렵게 심사위원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키스 앤 크라이 존에 파트너 이수경과 나란히 앉아 점수를 기다렸다. 점수는 앞서 훌륭한 연기를 보인 유노윤호와 클라우디아, 크리스탈과 이동훈 팀을 훌쩍 넘어 1위에 당당히 올랐다. 점수가 발표되자 김병만은 그곳이 왜 키스 앤 크라이 존인지 실감나게 했다. 자신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수를 주어 오히려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에 파트너 이수경도, 심사를 하던 김연아는 물론 다른 사람 모두 따라 눈물을 보였다.

다른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로 김병만 역시 생전 피켜 스케이팅을 탄 적이 없다. 두세 달의 짧은 기간에 그의 별명이 된 달인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쏟았음은 충분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본격 경연을 위해 좋은 파트너를 만났지만 서로 바쁘고 게다가 스케줄을 맞추기도 어려워 연습 과정이 대단히 어려웠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상까지 입어 김병만은 이번 경연에 대한 부담이 대단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개그콘서트 달인코너를 통해서 세상 못할 것이 없어보였던 김병만이 사실은 평발이었다. 스케이팅에 평발은 정말 최악의 조건이다. 초보자가 천천히 단계를 밟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작단계를 뛰어넘어 바로 고난이도의 기술을 욕심내야 하는 경연이니 평발 스케이터 김병만의 고통은 남들보다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병만이 발목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참아야 했던 것은 경연에 대한 것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김병만은 개그맨이다. 개그맨으로서 조금 인기가 오르면 너도나도 리얼버라이어티로 떠나버리지만 그는 우직하게 예능인이 아니라 개그맨으로서 남아있다. 설혹 그렇지 않더라도 개그맨이라면 조상처럼 떠받게 되는 찰리 채플린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김병만은 인대가 끊어지더라도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달인 이전에 개그맨이기 때문이다. 그런 배경 설명이 없더라도 김병만의 찰리 채플린 연기는 훌륭했다.

김병만과 이수경이 연기하는 동안 김연아는 정말 어린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제가 봐왔던 피겨 연기 중에 정말 최고의 연기였습니다”라고 극찬을 선사했다. 김병만과 이수경의 연기는 기술로서는 분명 최고일 수 없겠지만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몸 사리지 않고 도전하는 달인 김병만의 투혼과 진정성은 최고의 피겨 스케이터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모습이라는 뜻일 것이다. 김병만은 놀라운 달인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리고 키스 앤 크라이를 통해서 달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위대한 투혼을 만들어가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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