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은 케이블이 강하다? 대한민국을 오디션 열풍으로 뜨겁게 달군 엠넷의 슈퍼스타K는 이후 등장한 위대한 탄생이 열심히 쫓아갔으나 역부족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역시 원조의 힘은 건재하였다. 그리고 우후죽순 오디션 프로그램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러나 염치는 버려도 시청률은 버릴 수 없는 공중파가 선택한 것은 거의 노래에 관련된 것이다. 그런 속에서 TVN이 4일 시작한 코리아 갓 탤런트(아래 코갓탤)는 노래부터 온갖 엽기 재주까지를 총망라하는 오디션이라 우려와 기대를 함께 받았다.

우려대로 스타킹의 달랑 하나 코너에도 미달할 것 같은 참가자들이 줄을 이었다. 때로는 스타킹을 통해서 이미 익숙한 얼굴들도 보였다. 코갓탤에 대한 무성한 이야기들에 슈퍼스타K 말고는 케이블에 기웃거릴 일 없을 거란 편견을 보류한 것을 적이 후회할 즈음에 심상찮은 예고가 나왔다. 코갓탤 심사위원인 송윤아의 눈물이 슬쩍 보였기 때문이다. 송윤아의 눈물에 외면할 강심장은 아니기에 티비를 좀 더 켜두기로 했다.

예감은 할 수 있었다. 눈물이라면 분명 휴먼 스토리의 주인공이 등장할 것이고, 그것은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많이 봐왔던 터라 조금은 냉소적인 예견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스물두 살의 청년이 스스로를 어두운 환경에서 살아왔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됐다. 그러려니 했다. 스물둘의 푸르디푸른 청춘을 꿈과 행복보다 생존과 눈물로 보내고 있는 것이 특별한 일도 아닌 것이 현실이기도 한 탓이다.

노래를 하겠다고 했다. 그래 노래 한 소절까지는 들어보자는 생각뿐이었다. 그 청년이 부를 노래는 넬라판타지아. 마침 심사를 하고 있는 박칼린이 한국에 널리 알린 2010년의 히트상품. 노래를 듣기 전에 이미 통속적인 의도를 읽어버렸다. 그러나 이런저런 냉소적인 생각들은 전주가 끝나고 그의 목소리 한마디에 그만 바뀌고 말았다. 카메라는 객석 여기저기 눈물을 찍어내는 청중을 찾아냈고, 송윤아의 놀라고, 심각해지고 마침내 굵은 눈물을 떨어뜨리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칼린의 크고 동그란 눈까지 젖었다.

물론 이 노래의 주인공 최성봉은 스타킹이 발굴한 3대 테너 김태희, 김승일, 김호중 등에 비하면 실력 자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진다. 그렇지만 그들보다 더 불우하고, 더 아픈 세월을 보낸 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미성에 실린 넬라판타지아의 의미는 누구보다 더 깊었다. 의무교육마저도 받지 못한 최성봉은 당연히 누구에게 지도를 받아본 적도 없다고 했다. 어둡고 무거운 생활 속에서 넬라판타지아를 부르며 희미한 희망을 보고자 소망했을 것이다.

넬라판타지아는 본래 성악곡이 아니다. 영화 미션에 삽입된 오보에 연주곡이다. 이것을 세계적인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렀고, 남자의 자격을 최고의 예능으로 만들어주며 국민 애창곡이 됐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선율과 달리 이 노래의 배경인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 아름다움은 처절한 슬픔임을 알 수 있다. 원주민 생할 터전을 빼앗으려는 자본과 제국주의의 폭력에 짓밟힌 성직자와 원주민들의 죽음이 담긴 것이다.

3살에 부모로부터 버려져 불과 다섯 살에 고아원을 뛰쳐나와 스물둘의 나이까지 혈혈단신 어린 생명이 보내야 했던 세월의 아픔이라면 그 선율의 임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코갓탤의 독특한 우승 조건인 특별한 사연과 재주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코갓탤은 이제 시작이다. 총 6주에 걸쳐 방송될 지역예선에 또 어떤 사연과 멋진 소질을 가진 출연자가 기다리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첫 회에 넬라판타지아의 제대로 된 임자를 찾아낸 것은 코갓탤의 큰 수확이며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기다리게 해줄 희망이 되어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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