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송지선 전 MBC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의 동료였던 전직 아나운서가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뒤늦게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가 됐다.

故 송지선 아나운서와 KBS N 재직 시절 동료 사이로 현재 농수산채널의 쇼핑 호스트로 활동중인 이지윤 씨는 지난 11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포츠 아나운서는 공인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냥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다. 유명하다고 다 공인은 아니지 않나"라고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들에 대한 세간의 시선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어 "스포츠 아나운서는 단지 유명해졌다는 착각에 빠져들기에는 좋은 자리에 있을 뿐"이라며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취해 이리 치고 저리 치이며 허우적대는 것이 여성 스포츠 아나운서의 현재 모습"이라고 토로했다.

이지윤씨는 글 말미에 "마치 야구장에 남녀평등이 도래했다고 착각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여성에게 너무도 폭력적인 곳"이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이지윤 씨는 왜 야구장을 여자 아나운서들에게 잔인한 곳이라고 했을까?

기자의 입장에서 야구경기장과 축구경기장을 비교해 보자면 야구장에서 훨신 많은 여성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관중의 입장이 아닌 경기의 일부로서 여성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볼때 축구보다는 야구쪽이 여성들의 참여가 더욱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일주일에 6일 열리는 프로야구장에는 여성 시구자들과 치어리더, 그리고 이른바 '배트걸'이라 불리는 경기진행 보조요원, 각종 미디어에 소속된 기자와 리포터, 장내 아나운서 등등 여성들의 모습과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구석이 많다.

이에 비한다면 축구 경기장에서는 상대적으로 관중과 구단 관계자, 경기진행 보조요원 등을 제외하면 여성의 모습이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구석이 적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분명 야구장은 축구장보다는 여성과 가까운 공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들에게 잔인한 공간일까?

이 부분에서 좀 나눠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야구장에 돈을 지불하고 야구를 즐기러 오는 여성들에게 야구는 낭만의 공간이요 추억의 공간이요 즐거움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장과 야구를 배경으로 돈을 벌고 일을 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야구장의 의미는 사뭇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들 가운데서도 '야구장 상근직'이랄 수 있는 치어리더나, '배트걸', 방송사의 리포터와 아나운서 등의 여성들은 구단의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구단 프런트들과 끊임없이 마주쳐야 한다는 점에서 성차별 내지 성적인 폭력의 위험에 언제고 노출되어 있다.

매 경기 관중들의 분위기를 고조시켜야 하는 치어리더들은 경기중 무대위에서 남성 관중들의 은밀한 시선과 항상 마주하게 된다. 의상과 안무에 '섹스 어필'이라는 단어가 빠질 수 없는 이들의 '몸'과 '일'은 음흉한 눈빛을 보내는 남성 관중 뿐 아니라 사진기자들에 의해 누리꾼들 사이에서 철저히 해부당한다.

필자는 일부 구단이 여성 경기진행 보조요원을 고용하면서 그들에게 배꼽이 드러나는 짧은 상의와 반바지를 입게 하는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 진짜 대답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지만 경기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고용했다는 이들의 또 다른 의무는 경기장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본론이다. 여자 아나운서 또는 리포터들에게 야구장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특종 내지 단독 리포트의 기회가 열려있는 공간이다.

남들이 모르는 그 어떤 에피소드를 취재하기 위해 평소 선수, 코칭스태프, 구단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들의 직업적 특성상 먼저 취재원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근함을 표시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 아나운서들을 대하는 야구장의 남성들의 태도는 '그라운드는 남성의 공간인 만큼 우리식대로 행동할 테니 이를 감안해서 받아들이라'는 식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야 하는 여성 아나운서들은 이와 같은 태도들을 일단 수용해야 하는 입장이 되는 셈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성 아나운서들은 다양한 상황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술자리가 될 수도 있고, 선수와 단 둘이 길을 걷거나 마주 앉거나 드라이브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취재를 하는 사람도 취재를 당하는 사람도 자칫 공(公)과 사(私)가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송지선 아나운서의 사고를 지켜보며, 그리고 송 아나운서의 '부고'를 클로징 멘트로 대신하면서 눈물을 흘리던 김민아 아나운서의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특히 송 아나운서와 함게 그라운드를 누빈 방송인들은 누구보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방송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 송 아나운서의 죽음을 슬퍼했다. 뒤늦은 생각이지만 야구장이 그리고 야구장의 남성들이 조금 더 그에게 친절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포츠 전문 블로거, 스포츠의 순수한 열정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 스포토픽 http://sportopic.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