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의 고민을 알고 있다. 임재범이 나오면서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 자체의 질이 확 올라가 버렸다. 김연우가 떨어졌다. 다음에 출연할 가수 중 한 명인 옥주현은 '아이돌 출신, 히트곡 없음, 뮤지컬 가수'라는 다양한 이유로 역풍이 거세다. 이젠 누가 들어오고 누가 나갈 때마다 호불호의 여론이 극명하게 생길 수밖에 없어졌다. 절대적일 수는 없지만 임재범에게 유일하게 노래를 하고 있다는 평을 받은 '김연우'가 탈락했다. 이제는 누가 들어오더라도 나가더라도 '나는 가수다'는 항상 화제몰이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에게도 무서운 방송이 되어가고 있다. 웬만해서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김건모가 손을 떨었고, 백지영이 쇼크를 먹었다. 박정현이 노래 말미에 눈을 파르르 떨어야 했고, 윤도현은 링거를 맞아야 했다. 임재범은 감기에 맹장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 이건 진짜 살벌한 전쟁터다.

여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전쟁터에 참가할 '가수'를 섭외하는 일, 그것만으로도 '나는 가수다'는 스태프들을 엄청나게 힘들게 할 프로그램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이미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영웅들은 어지간해서는 떨어질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새로 들어온 가수가 떨어질 확률은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결국 새로운 가수들만 들어왔다 몇 회만에 쫓겨날 상황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높다. '가수'들의 섭외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게다가 역전의 용사들이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각자의 작품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음반을 발매하고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은 가수들의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이다. 그런 활동을 '나는 가수다'와 계속 병행하기는 힘들다. 신정수PD의 2기 발언은 이런 고민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돌 버전'의 발언은 적절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왜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명확하다. '나는 가수다'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의 원천은 '가요계나 가요를 방송하는 프로그램들이 아이돌 그룹들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되어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밤늦게 찾아듣지 않아도 저녁시간대에 시청자들이 듣고 알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엽'의 소울에 놀라고 '임재범'의 호랑이 창법에 소름 돋고 'YB'의 무대에 신나하고 '이소라'의 감성을 후벼 파는 창법에 아파하는 등등의 열광적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전 세대를 아우르며 중장년층에게는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일요일 프라임시간대에 선사해 주었고, 젊은 층에게는 새로운 세상을 전파했다. 만약 나는 가수다가 아니었다면 일요일 프라임 시간대에 하림이 연주하는 아일랜드풍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아이돌 출신이자 뮤지컬 배우인 옥주현이 나온다 한들, 혹은 아이유가 나온다 한들, 트롯트의 신성인 장윤정이 나온다 한들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가요계가 가진 풍요로움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돌'만의 시즌2가 반영된다면 그것은 '아이돌'들의 장기자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의 입에서 '이소라'의 No.1 과 같은 편곡이 나올 리가 없다.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음악적 '깊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들 낯설었겠지만 '이소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음악을 해 왔었다. '정엽'의 첫사랑은 '정엽'의 음악적 '깊이'에서 온다. 아이돌 중에서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꾸준히 갈고 닦은 '아이돌'은 그다지 많이 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대한민국의 '다양한 음악'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음악 따라하기' 정도를 보여줄 가능성이 많다. 물론 아주 노래를 잘하는 '아이돌'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음악적 깊이를 가진 다양성은 나오지 못할 것은 확신한다.

따라서 '나는 가수다'의 아이돌 버전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미 '불후의 명곡2'가 노래하는 아이돌 컨셉의 방송을 하는 마당에 '나는 가수다'가 그것을 따라할 필요도 없다. 고로 신정수PD가 아이돌 중 한 명을 '나는 가수다'에 투입시킨다면 그건 다양성의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돌들만 나오는 아이돌 버전의 '나는 가수다'는 또 다시 전파낭비를 하겠다는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가수다'의 PD는 바뀌었지만 그 근본에 심어져 있는 가치가 변해선 안 된다. 신정수 PD가 이 부분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돌 판은 그저 많은 구상들 중에 스쳐 지나갔던 그래서 아예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런 구상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PD가 어떤 마음가짐을 지니고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를 다시 한 번 언급하고 싶다. 그는 '나는 가수다'의 기획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요즘 가요계나 가요를 하는 방송이 아이돌 그룹들과 댄스음악으로 편향됐다. 대한민국에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프라임 시간대에 보여주고 싶었다. 밤늦게 찾아듣지 않아도 저녁 시간대에 시청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 기획했다.'

기억하겠지만 위에서 나는 가수다가 시청자를 열광시킨 이유로 말했던 내용이다. 김영희 PD가 아이유나 옥주현을 섭외하려 했던 것은 그저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대중에게 보이고 싶어서였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기를 바라면서, 부디 아이돌 버전의 '나는 가수다'는 구상에서 지워주기를 부탁드린다.


문화칼럼니스트, 블로그 http://trjsee.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화 예찬론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