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방송 3사 가운데 시청률 1위로서 전통적 뉴스 강자지만, 시민사회로부터 받는 평가는 방송 3사 가운데 가장 싸늘한 상황입니다. KBS가 시민사회의 비판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보수단체가 편향성 논란을 제기했다’며 귀를 닫고 있는 가운데, KBS 기자는 논란의 중심에 선 자사 뉴스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미디어스>는 익명의 KBS 기자로부터 직접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보다 자유롭고 신랄한 비평을 위하여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익명 형식으로 내보냅니다. ‘즐감’ 부탁드립니다!

2007년 미국의 공영방송사 PBS의 유명한 시사 다큐멘터리인 ‘프론트라인(Frontline)’에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특집 시리즈를 제작했다. 제목이 ’뉴스워(News War)’라고 기억 하는데, 5부작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똑같은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한 인터넷 뉴스 진행자가 “아직도 TV뉴스를 보십니까?”라고 묻는 장면이다.

나야 ‘뉴스 공장’에서 밥을 먹고 있으니 당연히 이 질문에 “네, 어쩔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외부의 친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TV뉴스는 거의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긴 모두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에 ‘공중파 TV뉴스’ 그것도 ‘올드한 스탈’로 악명이 높은 KBS 뉴스를 도대체 누가 본단 말인가.

하지만 ‘그놈의’ 시청률은 다른 말을 한다. KBS 9시뉴스는 주간, 일간 시청률 톱 10에 거의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최근 KBS 9시뉴스의 시청률 고공행진은 (거의 매일 20%를 넘겼다.) ‘웃어라 동해야’라는 ‘막장 홈드라마’의 지원 사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드라마의 지원이 없어도 10%대 후반 정도는 ‘아직도’ 너끈히 기록한다. 보는 사람 숫자로만 따지면 일요일날 하는 ‘1박2일’이나, ‘나가수’에도 KBS 9시뉴스는 꿀리지 않는다.

물론 시청자 층이 대부분 4-5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는 사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시청률 자체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 결정적으로 시청률은 ‘공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9시뉴스의 이 같은 높은 시청률에 대해서 크게 의미부여를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내가 KBS에 들어온 십 수 년 전부터 계속돼 왔다. 하지만 TV매체는 아직도 각종 지표에서 높은 영향력을 기록하고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KBS는 이 가운데서도 1위를 내주지 않고 있다.

▲ MB 특보 출신 김인규씨가 KBS 사장으로 선임된 이후 처음으로 서울 여의도 KBS본관에 출근하던 2009년 11월 24일 오전의 모습. KBS노동조합(당시 위원장 강동구)의 출근저지 투쟁으로 김인규 사장은 10분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으나, 이날 오후 본관 정문이 아닌 시청자상담실 문을 통해 ‘KBS 입성’에 성공했다.
2008년 MB정권은 들어오자마자 KBS사장을 교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사장을 포함한 이사들을 교체하고 감사원과 검찰을 동원해 당시 정연주 사장을 압박했다. 결국은 경찰력까지 KBS에 투입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그렇게 사장을 바꾼 뒤 KBS에서 벌어진 일들은 더 끔찍하다. 맘에 안 드는 프로그램을 강제로 폐지하고, 맘에 안 드는 직원들을 지방으로 유배시켰다. 인사와 편성을 무기로 정권에 부담스러운 부분들을 정으로 쳐서 평평하게 다져나갔다. 마지막으로 한나라당 선거운동원 김인규를 사장 자리에 앉히면서 화룡에 점정을 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철저하고 신속하고 악랄했던지 이 과정을 KBS 내부에서 지켜보는 필자는 무기력감에 혀만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KBS를 장악하는 게 이 정권에도 부담스럽지 않을까. 시간이 걸려도 좀 세련되게 할 수 없었나.” 순진하고 멍청한 생각이었다. 당시 신문에는 조중동이라는 ‘비교적’ 우군이 버티고 있지만 방송에는 없었다. MBC가 ‘미친소’ 문제로 정권과 날을 세울 때, KBS마저 적극적인 우군이 돼 주지 않았다. 정말 미치고 싶었을 거다. 마음이 급했을 거다. 만약 현재 KBS가 4대강 문제를 파헤치는 탐사보도를 하고, 뉴스에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자. 정권이 지금처럼 할 수 있었을까.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결국 “미친 거 아냐?”라는 욕을 먹더라도 일단 KBS는 장악해야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정권 입장에서는 옳은 판단을 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보다는 중요한 KBS’를 놓고 벌인 정권의 작전은 형식적으로 완료했다. 그럼 그 뒤 KBS뉴스는 얼마나 망가졌을까. 물론 지금 KBS뉴스는 과거의 땡전뉴스는 결코 아니다. 구성원들도 건강한 기자들이 꽤 많다. KBS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오늘 이명박 대통령은 전방 00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위로했습니다.’라는 뉴스(?)를 지금 KBS는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을까.

옛날처럼 촌스럽게 9시뉴스 톱으로 올리지는 않는다. 중간에 살짝 꼽아 넣던지, 그것도 민망한 내용이면 단신으로 티 안 나게 밀어 넣는다. ‘이게 무슨 뉴스 가치가 있느냐’라고 누군가 질문하면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의 대표이기 때문에 가장 뉴스 가치가 높은 사람이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평소 전가의 보도였던 ‘생활 밀착형’ 뉴스 가치는 잠깐 사라진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는 뜻. KBS뉴스는 여기까지 발전(?)했다.

물론 KBS뉴스의 여러 오류가 모두 정권 때문이라고 단순화 할 수는 없다. 낡은 관행과 잘못된 프레임에 기자와 기사와 뉴스가 갇혀버린 경우도 상당하다. 물론 이런 관행과 프레임은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 더욱 강화되는 측면이 있지만 말이다. 파업 관련 뉴스가 대표적이다. ‘파업→경제적 파급효과→시민 불편→그래서 국가 권력의 개입→해결’이라는 낡은 문법은 여전히 KBS 뉴스에서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은 KBS뉴스에서는 극단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인 것처럼 (명시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려진다. 왜 파업을 했는지 누가 잘못하고 있는 건지는 단 한 줄도 들어가지 않는 파업 뉴스가 많다. 친정권과 친자본은 이란성 쌍둥이와 같아서 이 같은 경향은 근래 들어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시대가 변했고,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TV뉴스를 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KBS뉴스를 보고 살아간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비하고 있는 상품, KBS뉴스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KBS뉴스라는 물건이 온갖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이해관계를 ‘저널리즘’이라는 고상한 말로 포장해서 내 놓는다.

좀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정권이 KBS를 장악한 이후 KBS뉴스를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지 정리를 할 필요가 있겠다. 앞으로 연재될 글은 KBS라는 작은 지옥에서 살아가는 한 기자의 찌질한 생존기쯤으로 봐 주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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