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다들 짐작하고 계셔서 새삼스럽지도 않겠지만, 5월 넷째 주의 미국 박스 오피스 정상은 가볍게 <캐리비안의 해적 4>가 차지했습니다. 조니 뎁, 아니 잭 스패로우의 귀환을 알린 <캐리비안의 해적 4>는 개봉 첫 주말에 9천만 불을 돌파하며 시리즈의 명성을 재확인했습니다. 2위와의 격차만 해도 무려 4배 이상! 게다가 개봉 첫 주말에 기록한 9천만 불은 올해 개봉한 영화들 중에서 최고의 오프닝 성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릅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4>가 기록한 9천만 불은 1편을 제외하면 최저의 성적입니다. 2편과 3편이 각각 2006년과 2007년에 개봉했으며, <캐리비안의 해적 4>는 최초로 3D 상영을 시행하고도 1억 불을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의 수입은 적잖이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직접 보신 분들은 동의하실 것 같은데, <캐리비안의 해적 4>는 3D 촬영으로 인해 생긴 제작비의 부담을 줄이고자 영화의 스케일을 현저하게 줄인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 결과로 순수 제작비가 2억 5천만 불에 머물렀습니다. 어쨌든 흥행수입은 성공적이지 못한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북미에서는 <캐리비안의 해적 4>의 흥행이 저조한 가운데, 놀랍게도 해외에서 2억 5천만 불이 넘는 수입을 긁어모았습니다. 이 금액은 3편이 기록했던 2억 1,600만 불을 꺾고 역대 시리즈 중 1위입니다. 그러니까 북미에서의 타격을 해외에서 메우고도 남을 지경이란 것이죠.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캐리비안의 해적은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외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 4>는 북미에서 3억 불을 달성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아 보이지만, 당연하게도, 덕분에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전 세계 흥행수입이 최소 8억 불은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 9천만 불을 돌파한 성적을 보고 이 글의 제목을 '좌초하는 캐리비안의 해적 4'라고 쓸 참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9천만 불이 그 정도로 실망스러운 건 아닌 듯해 '풍랑을 만난'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요!? 해외 수입을 확인하던 그 즉시 제목을 다시 바꿨습니다. 설마 해외시장에서 이만큼이나 흥행에 성공할 줄이야... 다음 주의 성적을 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캐리비안의 해적 4>는 적어도 흥행에서는 성공작으로 남을 것이 확실합니다. 아울러 5편의 제작도 순탄하게 흘러갈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고 디즈니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매우 곤란합니다.

<토르>에 이어 2위로 데뷔했던 <Bridesmaids>는 제자리를 지켰습니다. 지난주 미국 박스 오피스 소식에서 이 영화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내심 불안했는데, 다행히 예상을 벗어난 흥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수입은 여전히 2천만 불을 넘어섰고 변동치가 불과 -19.8%입니다. 이걸로 봐서는 롱런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토르>는 3주차에 이르러 3위로 떨어졌습니다. 안타깝지만 흥행은 역시 기대만큼 뛰어나지는 않네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히어로가 아니긴 하지만 동기간의 성적이 <분노의 질주 5>에도 밀리고 있습니다. 다만 <토르>도 해외에서의 수입을 합하면 4억 불에 가까워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더라도 적자는 면할 것 같습니다.

초반에 돌풍을 일으켰던 <분노의 질주 5>는 예상했던 대로 2억 불이 멀지 않았습니다. 일찌감치 시리즈 사상 최고의 수입을 올렸으니 2억 불도 돌파하면 겹경사가 터지는 셈입니다. 전 세계 흥행수입은 5억 불을 돌파했습니다.

순위 변동이 없는 <리오>의 열연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의 수입까지 합치면 <리오>의 그것은 열연 정도가 아니라 명연입니다. 북미에서도 1억 3천만을 돌파했지만 해외에서는 3억 불 이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니 뎁이 목소리 연기를 했던 <랭고>를 가볍게 꺾어버린 수준입니다. 이 정도의 흥행을 기록하다니 상당히 의외인 결과군요.

아... 마침내 지난주에 개봉했던 <프리스트>는 점점 더 바닥을 향하고 있습니다. 4위로 데뷔한 것도 신통치 않았는데 일주일 만에 두 계단을 더 하락했고, 2주차 주말의 흥행수입은 채 5백만 불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현재까지의 전 세계 수입은 간신히 6천만 불을 넘어섰습니다만, 해외에서의 흥행에 큰 기대를 걸 수 있는 작품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7위의 <Jumping the Broom>은 3천만 불을 돌파했습니다. 제작비가 워낙 낮아 5배 가까운 수입을 올리게 됐습니다.

8위의 <Something Borrowed>는 갈수록 <Jumping the Broom>과의 격차가 벌어지네요. 수입은 엇비슷하지만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높아서 두드러지는 결과를 보이고 있진 못합니다. 이번 주가 지나면 3,500만 불을 넘어설까요?

9위는 리즈 위더스푼, 크리스토퍼 발츠, 로버트 패틴슨의 <워터 포 엘리펀트>입니다. 출연진이 꽤 돋보이고 개봉 극장수도 적지 않은데 흥행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이번 주가 지나면 10위권 밖으로 떨어지겠네요.

타일러 페리의 영화가 5주차까지 굳건히 버텼습니다. 총 수입도 5천만 불을 돌파했으니 아쉬울 게 전혀 없을 듯합니다.


영화가 삶의 전부이며 운이 좋아 유럽여행기 두 권을 출판했다. 하지만 작가라는 호칭은 질색이다. 그보다는 좋아하고 관심 있는 모든 분야에 대해 주절거리는 수다쟁이가 더 잘 어울린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nofeet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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